검은 숲에 햇살이

# 10일째 - 프라이부르크( 검은 숲, 티티제 마을)

by 여름지이

천장에 달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결을 느꼈던 밤을 지나, 설레는? 아침이 되었다.

과연 가방이 돌아올 것인가?

오전에 가방을 찾으면 차를 렌트 해 검은 숲길 드라이브를 하고 티티제 마을까지 편하게 다녀오면 여행 끝~.

편하고 기분 좋게 마무리가 될 것인지 찝찝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가게 될지 2시간 후면 판가름 난다. 어제 못 만난 집 주인장이랑 아침에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가방 잃어버린 일을 말했더니 검은 숲은 케이블카를 이용해도 되고 가방을 못 찾으면 자기한테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오래된 찬장에 준비되어 있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운명의 버스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제 들어오며 봐 둔 마을 입구 구제 생활용품점에 잠깐 들러 구경하다가 특이하게 뿌리까지 그려져 있는 꽃 접시를 발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꽃향기가 얼마나 진했으면 '백리향'으로 부르는 허브 꽃이었다. 꽃그림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살까 말까 고민이 되어 더 둘러보며 결정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싶어 결국 못 사고 바삐 발걸음을 역 쪽으로 돌렸다.

걸음보다 바쁜 마음으로 정류소에 갔더니 콘스탄츠에서 오는 그 버스가 아직 도착 전이다. 언제나 오나... 버스 오는 방향으로 시선이 자꾸 돌아가는데,... 드디어 도착했다!

빛의 속도로 달려가 운전기사를 다잡았다.

그 기사,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다.

몰려오는 절망감... 우리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그럼 직접 버스 안을 찾아보란다. 좌석 위 사물함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가방은 없었다. 막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참고, 유난히 하얀 남방과 청바지를 멋스럽게 입은 잘 생긴 기사에게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제 기사처럼 또 어디 전화를 해본다. 어제 기사가 가방을 챙겨놨는데 오늘 자기로 바뀌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서 내일은 자기가 또 오니 챙겨 오겠단다. 이런! 내일은 공항 가는 날... 다행히 출국시간이 늦은 오후라 오전에 돌아오기만 한다면 정말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당장 콘스탄츠라는 곳으로 달려가 쥐 잡듯이 뒤져 어디엔가 방치되어 있을 불쌍한 우리 가방을 챙겨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모르는 곳에 가 헤매는 것보다... 그래, 어제 자면서 안 되면 포기하겠다는 마음까지 먹었었는데, 또 한 번 믿어 보지 뭐...

그냥 여기 일정대로 하기로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혹시나 예약한 렌터카 업체에 사정을 말하면 차를 빌려주지 않을까 싶어 먼저 그쪽으로 갔다. 독일 사람들이 면허증 없는 외국인에게 차를 빌려 준다? 아들은 어리고 난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점철된 인간이라, 지나고 보니 물색없는 모자의 극치를 보여주는 발상이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환불해주며 'no' 다.

아들을 기다리며 바깥 벤치에 앉아있는데 차를 렌트 해 가는 시끄러운 중국인 가족이 어찌나 부럽던지...


트램을 타고 숲 입구까지 가서 집 주인장 말대로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낭만적이었던, 창문으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에어컨 없는 트램이 살짝 짜증이 났다.

이 더운 여름에 세상에! 여기 사람들은 덥지도 않은가! 참, 희한해...

제법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곳곳에 마을이 있어 사람들을 내려준다.

케이블카를 타고 광활한 검은 숲 자락을 내려다보니 어지러웠던 마음이 정리되는 듯했다.

마치 공중에 낭창낭창 굽이치는 오랏줄 모양 같은 숲길을 음악 들으며 드라이브한다면...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기는 했지만.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진다.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라 일단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향했다. 한여름에도 두꺼운 파카를 입고 들어가는 광산 체험하는 곳을 지나, 계속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는 모양이다. 이쯤 되니 굳이 전망대까지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가보고 싶다고 올라갔고 난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는 산림욕 삼아 쉬었다.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새소리, 가끔씩 나타나는 청설모들 뿐이다.

앉은 곳이 깊은 산속이 아니라서 그런지 검은 숲이 될 정도로 햇빛이 안 들어 오진 않았다.

검은 숲을 찾아왔지만 검은 숲은 아니고.... 헨젤과 그레텔 또래의 아이들은 즐겁게 조잘거리며 부모와 산길을 걷는다. 세상은 변해 아이들은 존중받고 비밀의 숲은 길이 나고 케이블카가 다니는 공원이 되어 버렸다.

이야기는 이제 어디서 탄생할까?

케이블카를 타기 전 카페테리아에서 먹은 조그만 아이스케키가 정말 시원하게 달고 맛있었다.


검은 숲 자락에 있는 티티제라는 호수 마을은 프라이부르크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갔다.

바다가 없는 내륙 나라들은 호수를 굉장히 즐기는 것 같다.

작은 시골역 같은 곳에 내렸는데 완전 휴양지 모습이다.

마침 여기도 여름휴가 기간인지 가족단위로 많이 왔다.

놀이동산처럼 관람차도 있고 예쁜 물건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근처에 뻐꾸기시계마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상점마다 있는 각양각색의 뻐꾸기시계가 '하나 가져가시죠' 말을 건네는 듯하다.

검은 숲 나무로 만든 토산품이라 그런지 큰 사이즈는 상당히 비쌌다. 마음 같아서는 기념으로 사가고 싶었지만... 마음과 현실 사이를 극복 못하고 구경으로 만족~

해가 떨어지고 차분해진 호수마을을 즐기다 9시 30분 기차를 타고 프라이부르크로 돌아왔다.

정치에만 '레임덕' 현상이 있는 게 아니라 여행에도 있나 보다.

기운도 감성도 떨어져 막바지인 오늘은 다녀도 감흥이 덜하다.

더군다나 잃어버린 가방 때문에 자꾸 내일 일을 생각하게 되니...

프라이부르크 여행을 스트라스부르 간다고 중간에 떼어 놓은 게 이번 여행의 실수라는 생각이 든다.

한 곳은 쭉 머물러야 되는데..

티티제 마을도 검은 숲도 더 깊이 들어가 봐야 하는 곳인데, 결국 겉만 보고 온 셈.

아쉬움은 또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

언젠가는 꼭 한 곳에 머물러 보리라.

그나저나 내일은 정말 가방이 돌아와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