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여행

# 에필로그

by 여름지이

기분 좋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극적으로 가방을 돌려받았고 무사히 혼자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돌아가 탑승 완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 듯 결국 백리향 꽃 접시도 캐리어 옷사이에 고이 모셔 왔고.

학교 기숙사 오픈 전 스위스 지인의 집에 머물게 될 아들과는 프라이부르크 역에서 헤어졌다.

엄마랑 여행에 집중 못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전혀, 무슨 그런 말을~

오히려 아들에게 무척 감사한 여행이라, 이미 넌 평생 해야 될 효도를 다했어, 이젠 넌 자유야 라고 말해 줬다. 함께 했지만 무엇보다 그림자, 길잡이, 짐꾼 역할만으로 나만의 여행을 만들어 준 고마운 아들이니까.


독일 여행에서 돌아온 후 계절이 세 번째 바뀌고 있는 중이다.

여행지에서 간단한 일기처럼 기록한 공책을 들고 철 지난 여행기를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릴 줄도, 지난 여행의 고통과 환희를 다시 느낄 줄도 몰랐다. 똑같은 장소를 두 번 여행한 기분이랄까.

꼭 완성해야 된다는 글감옥에 스스로 들어간 대가라고 해야 되나? 그만큼 힘들었지만 쓰는 동안 행복했다.


오래전 한의원에서 진맥을 짚던 의사 선생님 왈, " 마음은 온 세상을 다니고 싶지요?"

한참 육아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들 때 들은 이 말은 가슴이 뻥 뚫릴 만큼 위로가 되었고 마음 한편에 묻고 있던 씨앗,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모르는 희망의 씨앗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나는 마음껏 날고 싶은 사람이구나, 언젠가는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게 되어 있구나.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이제 나보다 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나이가 되었다.

푸짐한 밥상은 아니지만 소박한 밥상은 마음 편하게 차려 먹을 수 있는 생활도 되었다.


여행에 불이 지펴진 건 프라하에 사는 언니 지인을 빌미로 언니들과 유럽 여행을 한번 다녀오고 나서다.

실루엣 같이 막연하게 꿈꾸던 환경과 삶의 실체를 보고 온 것 같아 흥분되었다.

거기서 묻어온 7월의 서늘한 기운과 햇살, 종소리가 한동안 주변을 맴돌았다.

7월만 돌아오면 다시 살아나는 그 여름의 기억 때문에 늘 마음은 유럽을 향해 있었다.

다시 유럽 땅을 밟는데 4년이 걸렸다.

이번엔 누구한테 묻어간 게 아니고 어쩌면 보이지 않는 준비를 마음은 언제나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아들이라는 아주 큰 디딤돌을 밟은 격이지만 우린 서로 자유로웠고 내가 하고자 하는 여행에 아들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럼 내가 하고자 한 여행은 무엇이었나?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아 알지 못하고 떠났던 여행이지만 이젠 무언가 선명해진다.


태생적으로 아침밥은 점심 밥때까지 집 생활 에너지밖에 나오지 않는 체질에 나이도 50을 넘었다.

일상을 넘어야 하는 여행은, 특히 비행시간이 10시간 넘는 유럽 여행은 나에겐 육체적으로 굉장한 고통이다.

집만 떠나면 잠을 못 자고, 피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외출을 해야 되는 상황은 정말 여행 감옥이라는 표현이 딱 알맞다. 가끔 집에서 컨디션 좋을 때, 여행지에서도 이런 상태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도 언제나 잠자기 전에 내일을 꿈꾸고, 여름엔 가을을 꿈꾸고, 올해는 내년을 꿈꾸고... 다른 세계를 꿈꾼다. 오직 꿈꾸는 힘만으로 유럽, 독일이라는 나라에 갔지만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몸 에너지는 가느라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결국 생각대로 여행, 마음이 이끄는 여행이 되었다. 유명한 장소나 남들이 감탄하는 곳보다는 마음이 머무는 곳이라면 가야 될 발길을 그쪽으로 돌려 퍼질러 앉아 놀은 격이다. 그곳은 어린 시절 추억과 감성을 깨우는 자연이 있었고 어린이 문학이 말을 거는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시골에서 자라 어딘가에 박혀있는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언제라도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라지 않는 어린 마음이 이끈 동화 세계는 또 언제라도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어른이 되어 읽는 동화는 어떤 사상 서보다 진지하고 진보적이다.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이 깃든다는 말이 있다.

내 생각은 자연과 어린이 문학에 머물러 있었다.

어딜 가도 자연과 어린이 문학으로 살고 살아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항상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


더 나이 들어 달팽이 여행이 되더라도(움직일 수 있는 한) 세상을 만나러 떠나고, 또 떠나고 싶다.

산골 작은 마을 할머니가 되면 세상에서 모은 햇빛, 빛깔, 이야기로 외롭고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잠잠이(레오 리오니/분도출판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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