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 작곡가들

클래식과 여인들(2)

by 푸르름



추천곡 : 드뷔시 '어린이 차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서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들도 한 인간으로서 한결같이 자신의 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교향시 '바다'의 드뷔시(Claude Debussy), 헝가리의 자존심 리스트(Franz Liszt)는

애틋한 부정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일화를 남기고 있고, 그들의 경이적인 음악과 함께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를 선사하고 있다.



우선 고전적인 딸바보로는 바흐가 있다. 바흐는 딸바보 이자 아들바보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선 먼길도 마다 하지 않았으며, 가정음악회 등을 열어 음악적 소양을 길러주는데 열심이었다.


이러한 바흐의 노력으로 장녀 카타리나는 뛰어난 가수로써, 4녀 앨리자벳, 9녀 레지나 모두 클래식과 밀접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두 번째 딸을 위해 헌신한 딸바보로는 드뷔시가 있다.
인상주의 음악의 개척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 드뷔시는 수많은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하다.

이상형을 여인을 무차별적으로 탐닉해 온 그의 부단한 헌팅은 '로잘리 테시에라'와 처음으로 결혼까지 이어지며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그러나 이 결혼도 드뷔시의 멈출 수 없는 여성 편력으로 인해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제자의 어머니인 '엠마 바르닥'이라는 새로운 이상형의 여인 앞에서 여지없이 파경을 맞게 된다.

그러나 이런 드뷔시가 꼼짝 못 하는 여인이 나타났으니, 바로 그의 딸 클로드이다.


드뷔시는 마흔세 살이 되던 해에 엠마와의 사이에서 딸 '클로드 엠마'를 얻었고, 끔찍이도 아꼈던 딸을 '슈슈'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드뷔시는 슈슈가 5살 되던 해 어린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을 묘사한 '어린이 차지'라는 곡을 발표하고, 이 곡을 슈슈에게 헌정하면서 딸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과시했다.

파란만장한 연애사로 구설에 올랐던 딸 바보 드뷔시는 슈슈가 13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다음 해 슈슈마저 14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부녀 간의 애틋한 정은 언해피엔딩(Unhappyending)이 되고 말았다.


세 번째 딸을 이기지 못한 딸 바보로는 리스트가 있다.
리스트는 6세 연상인 더그 백작부인과 1835년 제네바에서 동거생활에 들어갔고, 두 사람 사이에서 브랑딘, 코지마, 다니엘 등 세 아이를 두었는데 코지마가 후에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 바그너이다.

바그너는 1849년 드레스덴에서 일어난 혁명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로 끝나자 반역자로 낙인찍혀 피신 길에 올랐고, 바그너의 음악적 출세에 절대적 후원자였던 리스트가 자신의 집을 피난처로 그를 품어 줬다.

궁지에 몰렸던 바그너는 리스트의 집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자신의 출세작을 작곡하는 한편으로, 리스트에 대한 보답으로 시집가서 잘살고 있던 둘째 딸 코지마와 야반도주해 그녀를 두 번째 아내로 맞으며 대못을 박았다.

바그너가 1813년 생이고 리스트가 1811년 생이란 점에서 장인과 사위의 나이차가 2살 차이였고, 코지마는 24살 연하의 딸 같은 나이였으니 바그너는 이래저래 도둑놈 소리를 들어도 싼 일이었다.

나쁜 남자 바그너를 사위로 둔 리스트는 대인배였다. 후일 바그너를 용서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음악가 바그너의 출세가도를 열어주고자 줄기차게 힘을 기울여 줬다.


세상에는 냉정하고 위대한 거인이라 불리는 이들이지만 딸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지는 것은 만국 공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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