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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련작가 Nov 28. 2024

도를 아십니까? 복수하셨군요

삶은 감정으로 가득 채운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다. 나를 포위한 감정들은 모두 뜨거웠다가 이내 식는다. 물과 같이. 분노가 일었다가 식는다. 쾌락이 싹텄다가 시든다. 호기심이 움텄다가 시시해진다. 자쿠지의 감정들이 모두 차갑게 식으면, 내 몸에서 새로이 뜨거운 감정들이 즙을 짜듯 리필된다. 그러곤 다시 식는다.


인간의 정신활동은 이 감정의 자쿠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등 절대자를 신앙하는 종교는 자쿠지 밖의 세상에 눈을 돌렸다. 감정으로 요동하는 자쿠지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더 나은 존재가 자쿠지 안에서 흔들리는 나를 보살핀다고 신앙하면서.


싯다르타 붓다 생전의 원시불교는 이 감정들이 모두 차갑게 식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요가로 몸을 혹사하고 명상으로 마음을 혹사해서 감정이 최소한으로 리필되도록 집중하는 수행이 원시불교의 핵심이다. 그래서 싯다르타 붓다는 첫 번째 화살은 맞지만,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첫 번째 화살을 맞을 때 즉시 한 마음이 일어나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이때 위빠사나 호흡 등이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제시된다.


불교가 중화로 넘어와 형성된 선불교는 더 노골적으로 나(我)를 화두로 삼았다. 그릇된 관념인 아상(我相)을 깨달아 감정의 즙을 완전히 없애는 공(空)을 이루려 노력했다. 화두를 붙잡고 여기까지 오면, 공의 경지를 이루면, 그는 더 이상 인간으로 보기 어렵다. 아예 자쿠지의 배수뚜껑을 뽑아버려서다. 감정이 텅 빈 자쿠지에 누군가 알몸으로 홀로 앉아 있는 걸 상상해보라. 황량함 그 자체다. 그는 관조할 수는 있어도,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에게는 가까운 대상도 없고, 먼 대상도 없다. 그에겐 모든 사물이 평등하다. 자비로울 수는 있으나, 도타울 수는 없다.


전국시대 장주나 지금의 장주가 말하는 바는 위와 다르다. 자쿠지 밖을 보거나, 자쿠지 안의 감정을 말리는 게 목적이 아니다. 장주의 道는 자쿠지의 수질에 집중한다. 항상 감정의 수질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 이를 위해선 몸에서 좋은 감정들을 끊임없이 배출해야 한다.


최상의 道를 즐기고 싶으면 지금 내가 담겨있는 오염된 자쿠지의 물을 서서히 정화하는 게 우선이다.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나를 둘러싼 모든 부정적인 상황과 원수에게 앙갚음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내 몸에서 깨끗하고 맑은 감정이 뿜어져 나온다.


그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원수를 죽이는 확실한 방법을 공유해본다. 행복을 가질 자격 있는 이들을 위해.


복수에 필요한 건 야구방망이나 독약이 아니다. 야구방망이로 원수의 머리통을 후려치기 전에 내 얘기를 한 번 들어보라. 중국의 삼황오제 시절 얘기다.


황제(黃帝)는 중국 신화에서 문명을 상징하는 전설적인 군주다. 이 중화문명의 시조는 중화문명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적인 치우(蚩尤)와 하늘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황제는 마침내 치우를 잡아 처형했지만, 그는 치우가 찾아와 자신을 죽이는 악몽에 평생 시달려야 했다. 자신의 몸 밖에서 치우의 몸을 죽였을 뿐, 자신의 몸 안에서 치우의 정신을 죽이지는 못한 까닭이다. 당신이 야구방망이로 원수를 때려죽인다면, 당신은 평생 악몽에 시달리게 될 거다. 그의 몸만 죽였으므로.


확실하게 원수를 죽이려면, 그래서 자쿠지에서 향기롭고 따듯한 물로 평생을 즐기려면 원수의 몸이 아닌 정신을 죽여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스스로 커지는 것이다. 원수가 돈이 많은가, 그렇다면 그보다 부자가 되라. 원수가 근육이 강한가. 그렇다면 그보다 강한 근육을 키워라. 원수가 권력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보다 더 큰 권력을 가져라. 그가 재상과 친한가. 그렇다면 왕과 친분을 쌓아라.


그리하다 보면, 스스로 점차 더 커지고 강해지다 보면, 그래서 더 강하고 날렵한 벗들과 무리를 이루다 보면, 언젠가 당신이 생각했던 그 원수가 우스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원수를 까맣게 잊는 날이 올 것이다. 길에서 우연히 서로 마주치면 원수 스스로 벌벌 떠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혹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면, 당신의 모든 권능을 동원해 그의 옷을 벗기고 무력하게 만들라. 진정한 복수는 그렇게 평생을 즐기는 것이다. 장주가, 도가, 친절하고 착하다고 착각하지 말라. 도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행복을 쟁취하는 데 있다. 야성을 잊지 말라.


당신의 존재를 키워라. 누구보다 강하게. 스스로 바로 서라. 누구보다 반듯하게. 속세를 떠난 자연 속 유유자적은 오직 이 숙제를 끝낸 이들을 위한 특권이다. 모든 복수를 끝내서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때 당신의 자쿠지에는 깨끗하고 맑고 따듯한 물이 항상 꿀처럼 흘러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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