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기력.
언젠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단어. 나는 그런 거 생길 일 없다고 자신했던 어제는 오늘이 아니었다. 요즘의 난 집에서 책을 펼치기 조차 어려워졌다. 펼쳤다 한들 한 페이지 읽는 것도 더디다. 흘려듣던 그 말, 내가 되어버렸다.
일상이 멈춘 지 한 달이 넘어간다. 아픈 고양이를 하루 종일 돌봤다. 약속도 취소하고 오로지 아이에게 집중.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도 병원을 가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할 일은 집의 일상을 지키는 것.
매일 새벽 일어나 아침 밥을 만들고, 고양이 밥을 준 다음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이 끝나면 집안일 조금 하다가 지쳐 휴대폰만 깔짝이다 벌써 오후. 다시 밥을 하고 국을 끓인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영양제를 준다. 녹초가 되어 눈을 감으면 다음 날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점점 나를 뒷전으로 미루어 버렸다. 예전에는 열정에 불타 이것저것 겁도 없이 하던 일들도, 그냥 재미 삼아 하던 취미 앞에도 무감각해졌다. 나는 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다 지하철역에서 책을 대출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읽고 싶은 책이 가능하여 당장 신청했고, 다음날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의 두려움을 여기 두고 간다"
덴마크의 농촌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스반홀름 공동체에서의 하루를 담은 에세이.
예전에 꿨던 유럽의 시골생활, 그게 아직 꿈으로 남아있을까, 아직 꿈이라면 무기력해진 마음에 작은 불씨라도 붙을까 기대감에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 한 장을 펼쳤다.
펼쳐진 들판, 밝고 맑은 하늘, 푸르른 숲.
'나도 저런 공간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전의 꿈은 아직 지금의 꿈이었다. 부럽다는 감정보다는 지금의 내 생활을 벗어나고 싶다는 약간의 억울함이 생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작은 자극을 넣었다.
그건 어제 꿨던 꿈이었고, 여전히 꿈이었다.
나에 대한 의문은
내일에 대한 질문으로 아주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조금씩 이 무기력을 이겨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