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마치고 소파에 드러눕듯 앉았다. TV를 볼 의도로 앉은 것은 아니어서 리모컨은 테이블 아래에 있었다. 그거 하나 주을 기력이 없어 AI스피커에게 'TV 켜줘'라고 말했다. 흰 불빛이 잠깐 깜빡이더니 TV는 어느 방송을 보여주었다. 이전에 누가 보고 나간 채널. 거기에는 '손자병법'을 역사와 함께 설명하고 있었다.
"약 2,500년간 세계 리더들의 바이블, 오늘날에도 통하는 전략서"
보통 내 무의식은 지식을 피했다. 이해하지 않고도 눈과 귀를 사로잡는 프로그램을 늘 찾던 나는 채널을 멈췄다. 빌게이츠, 손정의 등 리더들이 적용했다는 공식. '꺼져가는 내 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듣는 둥 마는 둥 켜진 TV를 뒤로 근처 도서관에 책이 있는지 확인했다.
"어디가?"
- 도서관 좀 가려고.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마치고 도서관 오픈런을 하러 나갔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거리는 축축한 듯 상쾌했고, 나무가 많은 거리 옆에 벽은 달라붙은 달팽이 세 마리가 띄엄띄엄 있었다. 그리고 만난 도서관. 이른 아침이어도 도서관은 책을 보거나 미디어를 보는 사람들로 자리가 차있었다. 읽고 갈 것은 아니기에 손자병법의 도서기호로 곧장 갔다. 곧장 갔으나 딴 길로 샌 건, 거기에 나를 부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글을 쓰고 싶었던, 외면했던 욕망 때문이었을까? '브래드버리, 몰입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먼저 집었다.
회색빛의 표지를 열어 들어가는 말을 한 두줄 찬찬히 훑었다. 글 쓰는 방법이라기보다 에세이가 있었다. 거기에는 나를 동하게 하는 문장이 있었다.
"디킨스는 삶의 매 순간 다른 식탁에서 식사를 했다. 몰리에르는 사회를 경험하고 돌아서서 메스를 들었다. 포프와 버나드 쇼도 마찬가지였다. 문학계 어디를 보아도 위대한 이들은 사랑하고 미워하기 바쁘다. 글을 쓸 때 이런 기본적인 일들을 쓸모없다며 저버렸는가?... 인생은 짧고, 고통은 당연하며,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글을 쓸 때만큼은, 열의와 열정이라는 이름의 풍선 두 개를 손에 쥐자. 이 풍선들을 가지고, 죽음으로 가는 여행을 하며, 나는 바보들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예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감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소년에게 손을 흔들 것이다."
절망에 적셔진 마음을 햇빛에 널었다. 이미 구겨져버린 건 새것처럼 다시 펴질 순 없었으나, 구겨진 방향으로 유연하게 죽음을 향해 여행하자고 그 위에 새겼다. 작고 사소한 것들, 이를 테면 아침의 메뉴, 오늘 읽을 책들을 내가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선택 안에 호기심이라는 불이 붙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이제는 안이 아닌 밖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