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의 서막
본 에세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로 등장하는 모든 이름(기관명, 지명, 인물명 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은 비밀유지의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 및 민감정보 외에는 모두 실화입니다. 퇴사를 꿈꾸지만 아직은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저희 기관장님을, 저의 모든 동료분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렇게 독수리와의 재회 이후 우리는 결혼 준비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양가 부모님은 몹시 마음에 들어 했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이상하리만큼, 아무 문제 없이.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행복이 커질수록 직장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나는 박수달에게만 재회 사실을 조심스레 알렸는데 이상하게 모두들 다 알고 있었다.
“김토끼쌤~ 남친이랑 다시 사귄다면서?”
“결혼 준비한다며? 잘 되어가?”
팀원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줄 때는 유일하게 그런 주제일 때만이었다. 그 외에는 나를 대놓고 배척하지는 않았지만, 난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껴야만 했다. 그들은 매일 하하 호호 웃었지만 나는 도대체 어느 부분이 웃긴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하하하. 이것 봐. 우리 둘이 이렇게 커플이야. 웃기지?”
최노루와 이쿼카가 함께 이상한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아, 쌤들 너무 웃겨요.”
박수달은 그들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수달쌤. 근데 오늘따라 더 이쁜 거 같아. 우리 팀 아이돌이야, 아이돌!”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서로 간의 칭찬세례가 이어졌다.
‘아이돌 할 만큼 예... 쁜가? 그리고 저게 웃겨? 재밌어?’
나도 같이 웃긴 웃었으나 나 혼자 투명망토라도 뒤집어쓰고 있는 듯했다.
백기린이 날 왕따시켰을 땐 그녀의 적대감이 확실히 느껴졌었었다. 같은 은따여도 이번과는 달랐다. 이들의 모습은 나를 정말 싫어해서 따돌리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미묘하게 어떤 화제든, 어떤 일이든 나를 웬만해선 끼워주지 않는 기분이었다.
즉, 대외적으로는 우리 팀은 서로 너무 끈끈하고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나의 이런 고민을 토로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복지팀? 분위기 좋은 걸로 유명하잖아! 팀장님도 좋으신 분이고.”
나는 최대한 결혼 준비에 집중하며 직장 일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내 자리에 앉아 있을 때마다 숨이 막히고 이게 다 무슨 의미인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곧 국정감사와 행정감사 시즌이라 그런지 하루에도 수십 개의 요구자료가 쏟아졌다. 그 와중에 팀장님은 나와 최노루를 따로 불렀다.
“노루가 가진 꼭지 중에서… 수학여행비 지원해 주는 거 있지? 그거 토끼한테로 넘기자. 토끼가 일 잘하니까. 노루도 부담 좀 덜고.”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 갑, 갑자기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럼. 천하의 김토끼 아냐?”
팀장님은 호탕하게 웃었다. 최노루는 바로 자리로 돌아가 기계적으로 문서작성을 하더니 곧장 프린트해서 내 앞에 내밀었다.
“여기… 인수인계서예요.”
“2장이 끝이에요? 저… 괜찮을까요? 너무 어렵거나 잘 못하면 어쩌죠?”
“네, 내용이 별로 없거든요. 쌤은 잘할 거예요.”
들어보니 정말 별 것 아니었고, 어깨너머로 자주 듣던 사업이라서 어렵지 않았다. 단출한 인수인계서가 조금은 수상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그녀는 바로 자료를 묶은 폴더를 대용량 첨부로 전송해 주었다.
띠링.
갑자기 최노루가 메신저로 1:1 대화를 걸어왔다.
최노루: 김토끼 쌤, 내 인수인계서가 그렇게 별로였어요?
김토끼: …네? 아니요. 일목요연하고, 설명도 잘해주셨는데요.
최노루: 아니, 인수인계서가 너무 짧은 것 같다느니, 일이 양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느니 불만이 많은 것 같아서.
순간, 내 가슴은 불나방이 날아다니듯 요동쳤다. 언제나 천사 같기만 한 그녀가 내 말에 뾰족하게 반응한 것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나는 갑작스레 업무를 새로 받게 된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지만 그녀의 인수인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김토끼: 전혀, 아니에요.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그 뒤로 최노루는 더 답장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뭔가 기분이 나빠 토순에게 어떻게 생각하냐 물어보았고 토순은 대신 화를 내주었다.
강토순: 미친 거 아냐? 사상이 삐뚤어졌네.
어쩐지 그녀는… 갈수록 말이 거칠어지는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위안은 되었다.
그렇게 업무를 추가적으로 더 받고, 팀장님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나에게 서무 업무 보조까지 시켰다. 박수달이 서무 업무를 버거워하는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쌤, 제가 너무 바빠가지고. 저 대신 협의회비 지출 좀 올려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부탁한 내용을 확인했다.
“이게 뭐야…? 국정감사 대비 호텔 투숙비…?”
국정감사에 대비한 각종 지출 예정 내역을 미리 올려야 했는데 그중 특이하게도 교육청 인근 호텔 투숙 비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지출 계획서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보았다.
밤 12시 이후 국정감사 요구자료에 대해서는 새벽 4시까지 제출되어야 함. 이에 인근 호텔에 투숙하며 자료 제출을 위한 회의 및 작성 요망.
“뭐…? 새벽 4시가 데드라인이라고? 그냥… 밤을 새라는 거네. 국정감사 기간에는.”
가끔씩 TV에서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국정감사 실황들. 그때 사용됐던 자료들은 모두 공무원들의 피땀눈물이 서린 것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늘도 정시퇴근을 사수하고자 박수달이 해달라는 업무를 한 큐에 끝내버렸고, 그녀에게 다했다고 알려주고자 조용히 그녀의 자리를 찾아갔다.
“… 음? 어디갔… 나…?”
그녀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바쁘다면서 컴퓨터 모니터는 수십 개의 1:1 메신저 창들이 어지러이 떠있었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메신저 창 중에 한 개에 눈길이 갔다.
김태산: 나 1.1자로 복지팀 가고 싶은데 사람들 어때?
박수달: 다 좋아. 한 사람 빼고.
김태산: 아… 네가 이상하다고 했던 사람? 김토끼였나?
그 뒤로 박수달은 답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김태산이라는 인물이 마지막으로 보낸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담겨 있었다.
아… 네가 이상하다고 했던 사람? 김토끼였나?
아… 네가 이상하다고 했던 사람? 김토끼였나?
아… 네가 이상하다고 했던 사람? 김토끼였나?
아… 네가 이상하다고 했던 사람? 김토끼였나?
다른 사람들에게 대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다녔기에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굳어져있던 걸까.
오늘 문득 나는 전혀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지만 곡해해서 내 말을 듣던 옆자리 선배 최노루도 동시에 떠올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재회 사실을 알렸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연결고리는 단 하나. 나의 유일한 편이라고 믿었던 박수달.
갑자기 구역감이 느껴지며 나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가서 따져 묻고 싶었다. 대체 내 무엇이 이상하냐고.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문득 주무님이 그리워졌다. 이곳에 와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지만 오늘 같은 날엔 그녀와 함께 얼음 생맥주라도 들이키고 싶었다.
김토끼: 주무님~~ 잘 지내시죠?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맥주 한잔 어떠세요?
몇 시간이 지나도 주무님은 답장이 없었다. 거의 퇴근 무렵 주무님은 짤막하게 답변을 보냈다.
유음메: 아~ 토끼. 미안. 나 오늘 야근해야 해서.
지원청에서는 술 마시고 나서도 같이 야근했었는데.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짧다면 짧은, 이 공직생활에서 진정한 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들은 당연스럽게도 미소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구역감이 몰려들었다.
“… 진짜, 출근하기 싫어…….”
내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To be continued-
[Behind the Scene]
1. 제가 퇴사를 꿈꾸는 이유가 이제 슬슬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런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 정말 사람 미치게하더라고요. 피 말리게 하고. 벌써 3년이나 더 된 일이지만 전... 아직도 그 때의 기억 때문에 괴롭고 사람들이 싫습니다. 결혼 준비가 아니었으면 저 때부터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어야했는지도 모릅니다. 제 자신에 대한 자기 혐오 및 비하가 심해서 매일 견디기가 힘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