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상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래도 떠나보자!
여행은 상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다고 여행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못 먹어도 Go!'라는 태도로 do it! 여행은 일단 떠나봐야 안다.
설령 개와 고양이와 같은 사이인 사람과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말이다.
1. 여행 메이트: 우리 여동생
여동생은 3살 때, 큰 수술을 받아서 아빠와 엄마는 펑펑 울며 간절히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 이후로 집안의 서열 1위가 되어 퉁퉁한 볼과 커다란 눈으로 온갖 사랑을 받으며 무사히 기골이 장대한 소녀로 자랐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즐거운 짓도, 부모님께 들키면 혼날 짓도 함께 저지르며 둘도 없는 친구처럼 자랐다. 성인이 되어서 서로 다른 지역의 대학을 다니며 각자 집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직장인이 되어 팍팍한 현실을 맛보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우연한 계기로 만난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고, 동생을 포함한 온 집안 식구들은 남편이 순진한 나를 속이려는 사기꾼이 아니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나에 대한 많은 걱정거리를 늘어놓으셨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오랜 고민 끝에 결혼을 결심했다. 동생은 내가 연애를 할 때는 일찍 밤에 들어오라고 자주 잔소리를 했다가, 갑자기 더 이상 잔소리를 그만두었다.
나의 결혼식이 한 달 정도 남았을 시점에, 동생이 갑자기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와 동생은 평소에도 둘 다 각자 직장일이 바빠서 집에서도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유일한 동생한테서 기대 밖의 선물 같은 제안이 들어와서 기뻤다.
다른 곳도 아닌 왜 강릉을 가려고 하는지 동생에게 물어보니, 동생은 서울에서 별로 멀지 않고, 2박 3일 안에 최대한 많이 둘러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서 골랐다고 말해 주었다. 난 ‘강릉’이란 단어를 들으면 바닷가와 강릉의 명물인 오징어순대만 떠올랐는데, 동생의 말을 들으며 강릉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그저 하루빨리 강릉을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계획을 짜기 좋아하는 동생이 여행 스케줄을 정해준 덕분에 나는 짐만 잘 싸서 그냥 시키는 대로 잘 따라가기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결혼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동생과 좋은 추억을 쌓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친정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 시집가면, 치약 제발 밑에서부터 짜서 써라. “
강릉으로 가는 KTX을 타고 가는 와중에 동생이 나에게 불쑥 말을 건넸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그녀가 하는 말이기에 나는 조용히 해야 하는 기차 안에서 킥킥 웃음을 터트렸고, 동생은 말없이 나를 쏘아보며 옆구리를 찔렀다. 8년 전, 내가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 동생과 나는 포항에서 룸메이트로 1년 정도 같이 살았었다. 그때 내가 알게 된 동생의 단점이 보였는데,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내가 집을 떠나서 다른 사람과 평생을 사는 와중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동생에게 대충 내가 고쳐갈 생활 습관에 대해서 둘러대고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고 했는데, 동생이 집안 살림에 대한 잔소리를 시작해서 나는 강릉까지 우리가 탄 기차가 서둘러 우리를 바람같이 데려다주길 바랐다.
2. 우리만의 여행
우선 강릉역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으로 매콤한 칼국수를 먹고 우린 숙소로 향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우리는 익숙하고 시원한 강릉의 바닷바람이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의 텁텁한 공기와는 전혀 다른 이 맑은 공기는 우리가 다시 어렸을 적 모습으로 우리를 돌아가게 만들었다. 숙소는 강릉 시내와 조금 떨어진 한 주택가의 2층 집이었다. 여행객에게 집을 빌려주는 어플을 통해서 동생이 이 숙소를 예약하였었는데, 집 주변 골목길 사이사이로 익어가는 샛노란 유자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들과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만 같았다. 숙소의 따스한 크림색 벽지를 배경으로 방 2개, 화장실 그리고 작은 거실이 생각보다 넓고 편안해 보여서 우린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짐을 풀고 우리의 강릉 일정을 시작했다.
동생은 오죽헌과 경포대와 같은 주요 명소에서 ‘본전’을 뽑기 위해 핸드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었다. 반면에 나는 필요한 사진만 찍고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혼자 머무르며 눈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도 동생이 카페에서 천천히 그림을 그리는 나의 사진을 참을성 있게 폴라로이드로 예쁘게 찍어줄 때 나는 너무 고마웠고, 내가 기념품 가게에서 동생에게 동생이 좋아할 것 같은 엽서와 스티커를 사주었을 때 동생은 어린아이처럼 참 좋아하며 고맙다고 해주었다.
게다가 동생은 여행 전에 강릉에서 인기가 많은 맛집들을 엄선해서 나를 데려가 주었기에, 그때 먹었던 짬뽕 순두부와 꼬막 피자는 지금도 생각만 하면 군침이 돌만큼 맛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죽이 잘 맞고, 같이 다니면 안심이 되는 상대와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살면서 많이 없는 것은 확실했다.
무엇보다도 그냥 시시각각 다채롭게 바뀌는 강릉의 가을 하늘 색깔을 바라보며 동생과 끝없이 이어지는 바닷가를 걷는 것이 제일 즐거웠다. 흐린 하늘을 맴도는 갈매기들을 바라보며 아무 말없이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폴라로이드로 서로를 찍어주었다. 이후 어둠이 내려앉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도 여전히 아름다운 바닷가의 야경을 즐기며 우리는 너무나 사이좋게 좋은 추억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3. 낯선 곳에서 폭풍전야
그러나 결국 우리는 싸웠다. 둘째 날 저녁에 사소한 일로 우리는 가벼운 말싸움부터 시작해서, 저녁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우리 사이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꼭 여행길에는 다툰다는 누군가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어째 안 싸우고 잘 넘어간다 했다….’
우리는 숙소에서 싸우는 도중 점점 언성을 높였고, 결국 냉랭하게 서로 뒤돌아서 각자 여행의 마지막 밤을 준비했다. 가족 채팅방에 우리는 각자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부모님에게 우리가 ‘잘 지내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내가 더 이상 동생의 곁에 항상 있어줄 수가 없는 사실에 나는 결혼식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여서 마음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낭비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냉정한 침묵으로 흘러가는 것이 어딘가 갑갑했다.
결국, 동생이 같이 영화를 보자는 휴전제안을 했고 나는 그것이 사과의 제스처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예민하고 도도한 페르시안 고양이 같은 우리 동생과 덩치가 크고 느릿느릿한 삽살개 같은 나는 어차피 한 개밖에 없는 퀸사이즈 침대 위에서 같이 자야만 했다. 결국 우리는 숙소로 와인과 치즈세트를 배달로 주문했고 한참의 고민 끝에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을 즐겁게 감상했다.
4. 우리가 여행을 같이 온 이유
신기하게도 영화 <카모메 식당>도 우리의 상황과 어딘가 비슷했다. <카모메 식당>은 세 명의 여자들이 각각 다른 이유로 핀란드의 헬싱키에 왔다가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재밌게도,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들이 일본에서 헬싱키로 떠나온 것도 여행이지만, 낯선 나라에서 각자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 맞추며 사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여행’이었다. 나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가족과 집을 떠나 새로운 사람과 살아가는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고, 동생은 내가 없는 집에서 부모님과 살아가면서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었다.
<카모메 식당> 속 세 명의 여자들은 우여곡절 끝에 식당에 들어온 도둑 소동을 멋지게 해결했고, 새로운 도시에서 다가올 앞날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찬 웃음을 짓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났다. 따뜻하고 잔잔한 위로와 격려가 느껴진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는 동생과 멀어지게 되는 아쉬움을 조금 덜어놓고 보다 편한 마음으로 잠에 들 수 있었다. 동생도 나와 그런 마음이었기를 바랐다. 우리에게 각자 주어진 여행길을 묵묵히 걷다가 언젠가 지쳤을 때, 다시 만나서 서로를 격려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여행이 덜 버겁게 느껴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마지막 날 아침에 우리는 너무나 따뜻하고 푹신한 숙소의 침대 이불을 간신히 밀어내고 일어났다. 매일 바닷가를 원 없이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이 여행이 나와 동생에게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은 확실했다. 기념품 가게에서 같이 사서 일기장 한 귀퉁이에 붙인 스티커가 언젠가 색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질 것처럼, 이 여행도 우리들의 기억 속 한 귀퉁이에 수납되어 잠시 잊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서로가 응원해 준 이 여행 덕분에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지금 내 집 책장에는 강릉 여행길에서 동생이 정성스럽게 찍어준 나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나란히 붙여져 있다. 일상을 살다가 문득 저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추억을 즐겁게 상기시켜 보는데, 다음 여행은 꼭 내가 준비해서 동생을 기쁘게 해 주리라고 자주 다짐하게 된다. 언젠가 함께 맑은 하늘만큼이나 시퍼렇게 파란 강릉 바닷가 앞에 같이 서서, 거세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며 마음속 고민을 잠시 잊을 수 있다면 우리는 또 팍팍한 현실을 버틸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다음 여행은 이번 여행만큼이나 반짝거리고 소중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게 된다.
Do it, do it, do it 해봐, 해봐
Ohh here I go again 오 내가 다시 해볼 거야
(i gotta hit em with a) (내가 이 비트를 이렇게 때릴 거야)
Do it, do it, do it 해봐, 해봐
Do it, do it, do it 해봐, 해봐
Do it (again) 해봐(다시 한번 더)
Ooh I got a new one for ya 내가 너를 위해 새로운 비트를 준비했어
I like the way that sounds 소리가 정말 죽여주거든
I'm 'bout to do it for ya 내가 지금 당장 보여줄게
I like to break it down 내가 좀 더 비트를 길게 연주해볼게
This joint has got me open 이 음이 나를 붙잡았어
Ooh that's my favorite song 오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I put my thang in motion 나는 내가 느끼는 바를 춤으로 표현해볼게
I do it all night long 난 이걸 밤새 해낼 수 있어!
*턱시도는 미국의 소울 가수 메이어 호손과 Mayer Hawthorne 힙합 프로듀서 제이크원Jake One이
메인인 펑크 그룹입니다. 1970~1980년대 R&B에서 영향을 받은 멜로디에 부드러운 재즈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곡들을 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는 보는 사람마다 리듬을 타게 만드는
너무 재밌는 영상이니 꼭 보시길 바랍니다. 대표곡 <Do it>의 뮤직 비디오 댓글에는 '이 밴드를 결혼식에
초대할 수 있으면 너무 좋을 거야'라고 쓰여 있더군요.
<출처: https://www.washingtontimes.com/news/2015/jul/14/tuxedo-interview-funk-music-duo-still-plays-dj-f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