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과거를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말라.
유명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명곡 <Don’t Look Back In Anger>는 그 어떤 유명인의 명언보다 솔직해서
가슴에 와닿는다. 조금 거칠지만 아름다운 음색의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밴드의 보컬인 노엘과 리암 갤러거
형제가 나와 같이 우울한 청춘들에게 위로를 던져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제발 지난 과거를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 말이다.
1. 우울증 치료 10년 차입니다.
나는 우울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질환과 10년 동안 씨름해 왔다. 나의 우울증 약을 처방받기 위해
방문하는 정신의학과의 대기실 풍경은 상상만큼 이상하지는 않다. 은행, 카페, 관공서에서 대기표나 진동벨을 받고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똑같다. 이 10년 동안 우울증은 우리 주변에 아주 흔한 질병들 중
하나로 인식이 되었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심각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언론에서 자주
고백했기 때문인지 덕분에 심리 상담은 보편화가 되었다. 각 지역 복지센터의 자살상담센터로 전화를 걸면
무료로 상담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매년 더 적은 부작용을 동반하는 항우울제가 개발되었다는 뉴스도 간간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대학생 때부터 정신의학과 대기실에 앉아서 오는 사람들을 멍하니
관찰했던 나는 10년 전 보다 지금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의학과 대기실에 오는 것을 실감했다.
10대부터 학업 성적에 대해 열등감이 심했던 나의 우울증은 내가 대학생 4학년 때 가장 심해졌다. 부모님도, 학교도, 공부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던 나는 학사경고를 2번 이상 받아서 제적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나는 스스로가 너무 창피해서 그냥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떨어져 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내 상태를 살피던 엄마는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내서 사정을 설명해 보라고 권했고, 결국 제적은
면했지만 나는 매일매일이 불안해서 울기 바빴다.
정확하게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미래가 두려웠고 뭘 해 먹고살아 갈지가 막막했었다. 게다가 전공은 나와 맞지 않았었고 과제들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결국 나는 한 학기 휴학을 신청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경기도의 한 복지센터에서 심리검사를 받고,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다행히 조금씩 안정을 찾았었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약 복용 횟수와 심리 상담의 횟수를 천천히 줄일 수 있었다. 가끔 상담 횟수를 늘리거나 약을 변경할 때도 있었지만 점점 나는 확실히 괜찮아지고 있었다. 고맙게도 나를 딱하게 생각했던 여동생은 여름방학에 나를 자신의 대학교로 불러서 자신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밝아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나마 나는 행운인 편에 속한다. 비싼 심리 검사비용과 상담 비용, 그리고 약값을 부모님께서 처음에 다 부담해 주셨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스스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상담사 선생님과 약속을 잡아서 온라인으로 상담을 하고, 비용을 지불한다. 주기적으로 정신의학과에 가서 의사 선생님과 대면 상담을 하고 약처방을 받는다. 남편과 가족들은 한결같이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있다. 나는 때때로 심리 상담
관련 서적과 영상 강의 등을 보면서 나름대로 힌트를 얻고, 건강한 식사를 하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려고 애쓴다. 덕분에 나는 우울증과 몇 년 전부터 세트로 딸려 온 공황장애까지 스스로 셀프케어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여느 사람들처럼 가족들의 대소사나 직장일이 버겁게 느껴지면 남들에게 조금만 내 몫을 덜어 달라고
부탁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침에 먹는 폭세틴이라는 항우울제는 내가 처지지 않도록 활력을 주고, 리보트릴이라는
항전간제는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수면을 취할 수 있게 돕는다. 근처 약국에 내가 필요한 약이 없으면 대체가능한 약으로 처방해 달라고 의사 선생님께 부탁드리면 된다. 책상이나 침실의 조명을 최대한 어둡게 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긴장된 근육을 풀어 준다. 까먹을 것 같은 일정들은 전부 다이어리나 구글 앱 캘린더에 기록해 둔다. 그렇게 뇌가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폭주하지 않도록 달래 준다. 나는 오늘만 살고, 오늘을 버틸 충분한 에너지만 있으면 된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필요 이상으로 바쁘게 계획하고 대비하다가 오늘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면을 충분히 취하고 나면, 내일 하루를 잘 버틸 수 있는 힘이
나에게 또 주어질 것을 믿으며 잔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챙길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2. 나, 타인과 신에 대한 원망
내 안의 우울감은 나, 타인 그리고 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점점 줄어들면서 같이 줄어들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마에 아주 얇은 주름살이 늘어날수록 나는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졌다. 물론 과소비도, 과체중도, 귀여운 문구에 대한 집착 등 무엇 하나 나는 딱히 바뀐 것이 없다. 요리를 잘 못하거나
풍선을 제대로 불지 못하지만 나는 나를 예전보다 덜 미워한다. 줄어가는 머리숱과 늘어가는 새치에 기겁하지도 않는다. 돈 욕심은 많으면서 돈은 잘 못 버는 나는 오늘도 내가 어이없고 하찮지만 귀엽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어서 멧돼지처럼 무언가로 돌진하는 나를 보며 다들 제발 무리하지 말라고 얘기해 준다. 나를 너무 필요 이상으로 너그럽게 대할 수 없지만 너무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신에게 오늘도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기도하고 깊게 몇 번씩 숨을 내쉰다.
또한 나에 대한 어떤 뼈아픈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순간에 타인을 탓하고 미워하는 마음도 줄어들었다. 어렸을 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었던 부모님도, 항상 사소한 것으로 다투기 바빴던 동생도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 추석 때 나에게 아이를 언제 가질 계획인지 대뜸 물어보셨던 이모부와 할머니에게도 넉살 좋게 웃으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얘기할 수 있는 포용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약을 줄이고 더 건강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래에 태어날 나의
아이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기에 그럴지도 모르다.
“자기 자신을 확 내려놓아야 증상이 덜할 겁니다.” 가장 최근에 공황장애 때문에 정신의학과를
찾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라는
누군가의 말 그대로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휠씬 더 많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이웃 나라 간의 전쟁, 혹은 소중한 사람이 겪게 된 고통사고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요동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물론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 생기면 때때로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신이 좋은 아버지가 아닌 원망스럽고 무자비한 독재자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를 왜 우울증에 걸리게 했는지,
또는 왜 만원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숨이 막히고 어지럽게 만들었는지 신이 내 옆에 있었다면 멱살을 잡고
물어보고 싶은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실체가 보이지 않는 내 우울증처럼 신도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그럼 삶의 끝까지 우울증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파헤쳐 가보리라고 마음먹었다.
3. 죽고 싶지 않지만 살고 싶지도 않을 때
물론 여전히 나는 무기력한 기분 탓에 7시간 이상 잘 때도 있고 집안일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싫은 날이 있다. 씻고 집 밖을 나서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때도 있다. 어느 날에는 세상의 현실과 마주하기 싫어서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아침에 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더 잘 때가 있었다. 모든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지만 나는 세상을 살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서 살아가는 게 무슨 소용인지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7살 때 밤에 삼촌에게 현상수배 프로그램을 보고 죽음이 무섭다고 엉엉 울던 날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11살에 갑자기 돌아가셨던, 내 이름 석자를 지어 주셨던 외할아버지도 떠올려 본다. 그 이후로 나는 나이는 먹어가는데 정신 연령은 어린 소녀인 것 마냥 삶에 대한 안정감이 줄어서 부모님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애정을 구걸했다. 사실 그만큼 나는 살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할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완벽한 손녀가 되고 싶기도 했었다. 나중에 언젠가 사후세계에서 만났을 수 있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자랑스럽게 한평생을 잘 살고 왔다고 말해주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내 아이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손주의 이름을 남편과 함께 지어주고 싶다는 작은 소원이 생겼다. 이렇듯 살아가는 가운데 너무나 거창한 이유를 가지고 우울한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
곧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다가온다. 새해에는 부디 살은 더 줄이고 통장 잔고는 더 늘었으면 좋겠다. 물론 하나님은 내가 필요한 만큼만 허락해 주실 것이기에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래도 무언가 잘 되지 않았을 때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주어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또한 내 주변 사람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덜 아팠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주변에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아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다. 정말 지금은 너무 버거운 일 같지만, 곧 지나갈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괴로운 생각으로 길거리를 헤매다가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꼭 한 번쯤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으면 좋겠다. 아팠던 과거가 떠오른다면 실컷 아파하고 잘 떠나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정말 이미 지나간 과거를 자책하거나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j8Z6lsH2YJ4-출처:공룡디보님(가사 번역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eICW9gUbCg&t=1s-출처: JTBC(내한 인터뷰 영상)
(참고하실 수 있게 링크만 올려두었습니다)
오아시스는 영국의 브릿팝 밴드이며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 형제가 밴드의 메인보컬과 작곡을 맡고 있습니다. 2009년에 해체했으나 최근 재결합 소식을 알려 왔습니다. 저는 노엘 갤러거가 언론에서 이야기했던 두 가지가 제일 인상 깊었는데요. 첫 번째는 노엘과 리암은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힘든 유년 시절을 겪었지만 그 아픔이 이후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랬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노엘이 '자신의 노래는
자신 없이도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확신했던 점이었습니다. 저도 저의 글이 제가 없어도 누군가에게 계속 읽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