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몰입
애착(愛着)이란 ‘사랑하여 집착하다’라는 뜻으로,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 떨어지지 않음을 이른다.
심리적으로 애착의 형태는 네 종류로 안정, 불안-몰입, 거부-회피, 공포-회피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어머니의 애착관계는 아쉽게도 안정이 아닌 불안과 몰입에 가까울 것 같다.
어머니의 애착관계는 나의 외할머니 즉, 어머니의 어머니까지 가야 조금은 더 명료하게 이해가 가능하다.
어머니는 1945년 겨울 강원도 출생. 어머니의 어머니는 1920년대 강원 출생.
1920년대는 일제치하, 1945년은 대한민국 독립의 해이고, 당시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강원도는 대한민국 안에서 조차도 가장 고립되고, 부유하지 않은 곳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성장하던 1950년대는 서로를 죽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냥 전쟁을 겪어야 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할아버지는 전쟁에 끌려가야 했다.
넉넉히 살아가기 참으로 어려운 시기, 상황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없는 살람에 여자, 남자, 남자, 여자, 남자, 여자, 3남 3녀의 장녀였다.
당시 대부분의 가정에서와 같이 제한된 자원은 응당 아들인 둘째에 집중되었고, 이 와중에 큰 외삼촌을 서울 유학시키는 동안 어머니를 포함해 모든 삼촌과 이모는 양질의 고등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내가 아버지였다면 …? 당시 상황에서 달리 대안을 찾기란 어려웠을 것이라 미뤄 짐작해 본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실 때 할머니의 염원과는 달리 큰 아들과 큰 아들의 아들인 첫 손주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할머니의 관심 밖이었던 다른 삼촌들과 이모들만 유산과 관계없이 발길을 끊지 않았다.
기회의 균등은 내 어머니가 아닌 큰 딸에게만 해당되었고, 나와 내 형제들에게는 애정 가득한 할아버지, 할머니셨다.
안타깝지만 어머니의 입장은 달랐다.
어머니의 친정 나들이 동행은 내게 즐거움 가득한 추억을 안겨줬지만 생각지도 못했고 그 근원조차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고통과 분노 역시 기억한다.
외가의 결정권자들이 내린 결정에 당신 자신의 인생이 외면받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원망했고, 울부짖으셨다.
어린 소년기의 기억이 50이 넘어가는 지금도 또렷할 정도로 그 당시 상황은 끔직했다.
괴롭다.
어머니는 오래전 돌아가신 조부모님들을 대신해
동생 내외를,
주정뱅이 남편을 대신해 딸을,
세월이 흘러 환갑을 바라보는 아들과 재혼한 며느리를
시선을 돌려
차례차례
증오하고 분노를 쏟아 낸다.
어머니께 여쭤본다.
‘그렇게 욕하던 할머니와 왜 똑같이 하시냐?’
‘내가 그런 얘기도 못하나?‘
‘옛날에는 책도 보시고, 좋은 이야기도 듣고 하시더니?
‘외롭다’
말문이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