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한 인간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살아남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고고하거나, 우아하거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내는 것을 말한다. 실제 평범은 고사하고 살아낼 수 있는 확률조차 생각보다 높지 않다.
살아내는 것 자체만으로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새끼 사자의 생존율은 30%, 아프리카 사막 사자의 생존율은 고작 10%에 그친다고 하니 말이다.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 따르면 전 세계 사람들의 사망률 3위는 심지어 ‘자살’인데,
대한민국은 남녀 모두의 자살률이 세계 1위이다. 남성은 10만 명당 40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 OECD 평균의 2배를 초과하며, 전 세계 공통적으로 남성이 여자보다 월등히 자살률이 높다.
호주는 남성, 여성 모두 대한민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그리스에 비하면 호주 역시 2배를 초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노년층에서의 급격한 자살률 증가는 그들이 처한 외로움과 빈곤이 얼마나 큰 공포인지, 사회가 그들 즉, 미래의 우리를 어떻게 품어내어야 하는지에 대한 큰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 평균 연봉은 4000만 원대 초반 수준이다. 이는 대기업 혹은 소위 잘 나가는 중소기업 대졸 초임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30여 년 전 나의 연봉을 생각하면 실질 임금의 상승은 2배가 채 되지 않고, 주택을 포함하는 거주비용은 30여 년 전에 비하면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적어도 대한민국에서)의 노동 가치 상승은 자본을 비롯한 자산의 가치 상승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고액연봉자에 의한 평균 상승 착시를 고려하면 대다수 대한민국의 직장인 평균 연봉은 4000만 원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4000만 원 / 12개월 * ( 1 - 0.15 ) (제세공과금에 4대 보험 간략히) = 월 세후 소득 283만 원
매월 세금을 제한 소득은 283만 원이 되고, 4인가족이면 소득이 4배이면 좋겠지만 보통의 외벌이는 그렇지도 못하다.
4인가족 기준 월 지출은,
주택관리비(10 *만원), 전기(5), 가스(2), 수도(2), 세금(10), 교통비(30), 통신비(8), 보험(20), 용돈(20), 식비 (4 식구 * 3끼 * 0.5만 원 * 30일 = 180),
한 사람이 대학을 가면 연간 등록금 1000만 원에 식비, 교재비 등이 부가적으로 소비된다. 숨만 쉰다 치자. 그럼, 월 최소 100만 원이면,
4인가족 기준, 한 아이를 대학에 보내면, 매월 대략 40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사실 대학에 보내지 않더라도, 학원비, 문화비 등을 고려하면 월 400만 원 정도는 기본으로 보인다.
외벌이인 경우라면 가계 경제 구성이 되지 않고, 2인이 평균 소득을 가지면 가처분 소득이 약 100만 원이 넘는 수준이 된다. 부모세대의 미래를 위한 연금저축, 재투자, 혹여 월세 혹은 전세, 자기 주택 대출이자가 있다면 쪼들린다.
나름 많은 운이 따른 결과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히 생각하며 살고 있다.
내 어릴 적을 생각하면 가당키나 할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에는
생존 자체와 경제적 안정성뿐만 아니라
삶의 균형, 특히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포함된다.
때로는 아무런 고민 없이, 부대낌 없이 살아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매 순간이 전쟁터와도 같았던 내 삶 속에서는 여전히 어렵다.
뭐가 그리 어렵냐고?
시바 낸들 아나? 내가 왜 이런지 …
분석하는 것은 쉽다.
적기에 매끄러운 행동을 하는 것은 분석에서만 존재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마도 아니 십중팔구 아니 100%
형과 누나 역시 내가 경험한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들 역시 잘 살고 싶었을 테고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 테고
어찌할 수 없는 혈육에
눈감고 입 닫고 마음마저 닫고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없었다.
가족을 ‘사랑’하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즐거울 틈은 없었고,
모든 것은 가족의 굴레로만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놀이동산 같았다.
‘사랑‘은
과거의 나는 물론 지금의 나에게 조차 무리다.
난 여전히 ‘사랑’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가족과 자식들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내 아버지로부터 배운 나의 ‘사랑’ 법이다.
누님은 홀연히 가시며 여러 가지를 남겼다.
아버지를 알코올에서 강제로 해방시켰고,
어머니를 아버지로부터 해방시켰고,
대신 나에게는 ‘사랑’이라는 올가미를 씌웠다.
스무 살, 더러운 피를 원망하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술로 세월을 보냈다.
서른 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환청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흔 살, 한 때 내가 가장 아끼던 ‘권력’를 버리고,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쉰 살, 평범해질 수 없음을 깨닫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재, 언젠가는 나만의 ‘사랑’ 법을 터득하게 되기를 희망하며 누님의 유언을 되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