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유부녀, 애 엄마 딱 거기.
분명히 나는 차장이라는 직급을 가지고 있었고, 매출 0에서 몇천만 원을 찍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하긴 그러고 보니 나를 불렀던 그 대표의 처신도 이상했고, 그 회사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나와 내가 추천해 함께 일하게 된 남자직원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도 이상했다.
분명 내가 선임인데 일에 관한 질문의 타깃이 나에게가 아니라 내 밑에 남자직원에게로 가 있었다. 눈치가 빠르지 못한 내 탓이지 누굴 탓하리.
나중에 안 일이었는데 잔머리를 굴리던 월급 사장인 대표가 구색상 자리만 만든 직급이었던 것 같았다. 그걸 몰랐던 나는 월급 루팡이나 하라고 말하는 그 남자직원을 데리고 어떻게든 매출을 내려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매출도 올랐고 생소한 제품의 세계에서 이렇게 저렇게 방법도 찾고 거래처도 뚫고 참 열심히 일했는데, 중간에 상사가 움직이질 않았다. 분명 좀 전에 대표랑 회의하면서 진행하라고 한 일을 일주일이 지나도 말을 안 했다. 거래처에서 나에게 전화가 오면 바로 보고를 하는데 중간에 블랙홀 같은 그는 대표가 시킨 일도 진행하지 않고 내가 보고한 일도 진행하질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거래처에서 물건을 가져와 자기 들것 취급해 달라고 하는 미팅자리에서도 그는 그 제품을 이런 식으로 리뉴얼하면 어떻겠냐 아이디어를 내고 있었다. 힘들었다. 그냥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아무 일 안 해도 되니 그냥 흘러갈 수 있게 결재서류에 사인만 해줬음 싶었정도였다.
매출만 내라는 대표, 일하겠다는 실무 양쪽 다 해라, 하겠다는데 중간에 일을 잡고 홀딩시키는 사람이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유능하다고 큰 회사에서 임원이였다고 소개받았는데 진짜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한 번은 다른 파트의 업무가 내게로 넘어왔다. 당돌하게 그 부서의 대리가 차장인 나에게 업무를 지시했다. 내가 그 일을 왜 하냐고 물으니 자기 팀장이 나에게 주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대표하고 얘기하니 할 필요 없다고 했고, 그렇게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 업무는 결국 아무 관련이 없는 나에게 넘어왔다. 내가 웹디자이너라서 그렇단다. 난 그냥 웹디자이너였다. 웃긴 건 그 작업을 할 때 써야 하는 프로그램을 나도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된다던 대표는 텍스트 몇 개만 수정하면 되는데 업체에서 견적을 많이 불렀다며 나보고 확인해 달라고 했다. 그냥 하라는 말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내 자리는 저............................... 아래~ 저기 땅속에 묻혀있는 듯했다.
임원이 전부 남자인 그 회사에서 여자 팀장급 이상은 회장 딸, 회장 친척 조카뿐이었는데
나는 그냥 어쩌다 돈 벌러 나온 경력 긴 40대 애 엄마, 유부녀, 웹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