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와 환국(고대 한국)시대
환국(桓國, 고대 한국)시대는 환인(桓因)이 하늘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렸던 창세기 시대의 이야기이다.
환인을 한인(韓因)으로 발음하고 하느님이라고 칭한다. 현대 감각과 현대 용어에 맞도록 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환인의 한국어 구어체가 하느님 혹은 하나님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하느님이라고 하면 기독교와 천주교의 천신(GOD)을 생각하는데, 그들의 천신은 하느님이 아닌 "나는 있는 나다(I am I)"라는 뜻의 Yahweh(야훼, 여호아)이고,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음으로 아도나이(Adonai ,주님)' 엘로힘(Elohim)이라 부르고 자음자 'WHWH'로 쓴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포교를 하기 위해 성경을 번역할 때 도움을 주었던 한국인들이 한글로 번역하면서 하느님 혹은 하나님으로 바뀐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환인 단 두 글자로 압축되는 고대 한국시대는 단군의 아버지이자 천신인 치우환웅(蚩尤桓雄)이 등장하는 구려한국시대(句麗韓國時代)와 그 이전의 시기를 말한다.
고대 한국시대는 부도지에 의하면 창세기로 부터 시작되는데, 환단고기 등의 한국고기에서는 시작하는 시점을 고조선으로 부터 약 400년 전인 BC 2,706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시작하는 시점을 설정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뜻은 가상하고 구약성서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BC 1,750년경임을 고려하면 그 이전이 되므로 일리는 있으나, 신(神)의 이야기인 신화(神話)에 속함으로 연도를 지정하여 기록한 것은 편협한 발상이며, 신화를 역사로 해석하여 시작과 끝을 시점으로 정하는 발상 역시 이치에 맞지 않다.
굳이 시점을 정한다면 하느님이 첫 번째로 세상을 창조하여 다스린 후, 다음으로 문명인류를 창조하고 다스렸다고 해석하고, 창세기 이후의 인류고대문명발생시기인 BC 6,000여년경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렸던 단군신화의 하느님 환인의 이야기는 이미 설명했던 한국고기 부도지를 통하여 설명된다.
부도지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마고율려(麻姑律呂)-삼신(三神)-천인(天人)-수인환웅(燧人桓雄)-유소(한웅有巢桓雄)-치우환웅(桓雄桓雄)으로 변해간다.
이름이 가진 의미와 변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하느님의 실체는 물론, 우주의 원리가 홍익인간의 천도와 인연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생노병사의 비밀은 물론, 올바른 삶의 방향과 세상의 발전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 종교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에 해당하는 신의 이름이 하나같이 근접할 수 없고 근접하여서는 안되는 숭배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고, 천도를 무소유(無所有)와 인생무상(人生無常)으로 주장하며 깨달음에 이르런 부처를 통하여 내세의 행복을 제시하여 종교를 성역화하는 것과도 다른 모습이다.
부도지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마고율려(麻姑律呂)-삼신(三神)-천인(天人)-수인환웅(燧人桓雄)-유소(한웅有巢桓雄)-치우환웅(桓雄桓雄)으로 변해간다.
이름이 가진 의미와 변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하느님의 실체는 물론, 우주의 원리가 홍익인간의 천도와 인연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생노병사의 비밀은 물론, 올바른 삶의 방향과 세상의 발전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 종교에서 하느님과 하느님에 해당하는 신의 이름이 하나같이 근접할 수 없고 근접하여서는 안되는 숭배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고, 천도를 무소유(無所有)와 인생무상(人生無常)으로 주장하며 깨달음에 이르런 부처를 통하여 내세의 행복을 제시하여 종교를 성역화하는 것과도 다른 모습이다.
부도지의 하느님은 다른 한국고기의 유호씨(有扈氏)와도 발음상의 차이일 뿐 같은 하나의 이름이다. 즉 마고(麻姑)에서 삼신-천인-수인환웅-치우환웅, 그리고 단군을 거쳐 유호씨로까지 이어진다.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전술 했둣이 야훼 (Yahweh)' 여호아(Jehovah)로 하나인데, 하나의 이름에서 시작하여 둘, 셋으로 나누어져 계속 바뀌어 가는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실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예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종교지도자 모세가 야훼를 만났다고 하나 인간이 신을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신화적으로 해도 종교적으로도 해도 거짓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이치적으로 따져도 작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허위나 환상이나 꿈은 아니었을테니 아마도 신을 대신하는 메시아를 만났을 것이고, 그 메시아가 유호씨' 여호와' 야훼였을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는 없고, 오직 종교지도자의 주장에 따른 무 조건적인 존경과 믿음만이 강조될 뿐이다.
반면 부도지의 하느님은 천신에 대한 인간의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깊은 사고 속에서 붙여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름이다. 그것도 하느님의 아들의 아들의 한참 뒤의 아들인 천신 치우환웅이 현몽(現夢)이었는지 아니면 단군신화 그대로 접신(接神)의 상태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웅녀와 혼인해 단군의 아버지가 되어 종교나라 고조선을 건국하게 하였으니, 사실이던 아니던 종교적 해석으로 보아도 개국신화로 보아도 문제가 없다.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하느님인 야훼나 여호아를 아도나이나 엘로힘으로 부르는 것은 주님 혹은 강한 대상이란 뜻으로 무조건적인 복종과 맹신의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반면 단군신화에서는 천신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이라 칭하고, 하느님의 특징적인 형상을 이름으로 지어 먼저 이해한 다음에 복종를 하던 맹신을 하던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종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적 복종과 맹신이 누군가의 권력이 되어 금전강탈과 성 착취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부패로 인한 이단(異端)과 사이비(似而非)는 천신의 뜻이 될 수 없고, 만약 천신의 뜻이라면 그런 천신은 더 이상 천신이 아닌 잡신(雜神)에 불과 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알아야 이단이나 사이비에 속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삶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인 것이다.
부도지는 변해가는 고대 한국시대 하느님의 이름을 통하여, 인간이 천신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바로 알고 종교를 올바르게 믿을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부도지의 가르침을 통하여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가 정말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올바른 종교로 거듭나기를, 한국 불교가 진실한 깨달음을 전하는 올바른 종교로 거듭나기를, 한국인의 신앙이 자신의 삶을 살찌게 하고 가족과 사회와 국가의 행복과 번영을 지키는 믿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