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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Feb 23. 2024

‘나’를 이루는 단일함.

영화 컨텍트, 책 싯다르타.

문득 복권을 샀다.


연금 복권에 당첨되면 입시 공부를 하고 싶다.

국, 영, 수, 과탐, 한국사 모두 1등급에 닿아보고 싶다.


*


지난 설날에 사촌동생이 가져온 수학문제집이 너무 흥미로워서 그랬을까,

다시 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이 불안하니까 뭐라도 해보려는 몸부림일까.


셋 다인 것 같다. 그리워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


입시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부정적 버튼을 누르기도 하는데, 어차피 평소에 좀 허송세월하는 김에 그 시간을 공부로 채워보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른다. 목표라는 단어가 활기차게 만든다.

 어떤 목표가 간절해서라기보다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싶어서 저녁에 수학 문제집을 사 왔다.


*


또다시 대학을 가고 싶은 것보다 그냥 잘 매듭짓고 싶다. 뭔가 흐지부지 결과를 맺지 못하고 떠오르는 아쉬움이 잔잔하게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난 왜 이것밖에 못했을까, 왜 나는 산만할까, 왜 나는 오래 집중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가지도 못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그냥 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꼭 결과로 보답받고 싶은 마음보다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 어쩌다 보니… 공부하고 싶어졌다.


*


고등학생 때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반 1등에서 3등 성적으로 들어왔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10등, 고3 때는 반에서 15등 했던 것 같다. 한 반에 서른셋 정도 있었으니 중위권으로 학교를 마친 것이다.


*


그때 당시에 두려움과 불안이 심해서 오히려 다른 짓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른 짓을 했다.

글도 쓰고, 심야 라디오도 듣고, 아이돌 덕질도 하고…


*


부모님도 딱히 관여 안 하셨다. 나름 지역 안에서는 학구열이 괜찮은 동네였지만 서울이나 부산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정보도, 어떤 기회에 대한 욕심도.


*


의대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프리패스를 끊어서 사설 인강을 들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투자를 안 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게 투자하는 건 다 낭비라고 비관하는 생각이 있어서 더 그랬다. 스스로를 불신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불안할수록 충동성이 강해지고, 회피성향이 두드러진다.

가성비를 되게 많이 따졌다.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는 되게 높은 편이어서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


지나고 나니까 아쉬움이 자꾸만 남는다.


언제나 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후회할 수 있듯이,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는 늘 남아있다. 과거가 있으면 미래가 있으니까.

해보던지, 말던지.


어디서 쉬고 다시 시작을 맺을지 정도는 내게 아직 끝맺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 잘 매듭지을 수 있는 기회.


*


컨텍트라는 SF영화에서 외계종족이 나온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를 단일하게 느낀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 모양은 끝과 시작이 없는 도넛모양이다.

찌그러진 도넛, 말랑한 도넛, 적당히 흐늘거리는 도넛…. 그게 그들 언어다.


*


만약 내가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단일성을 느낀다면, 외계어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후회를 좀 덜 느끼고,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알아차리고 그냥 좀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


헤르만 헤세의 책 싯다르타에서 강은 강이다. 아무도 강의 시작과 끝을 모른다. 강의 과거와 미래도 모른다. 그저 강은 강으로써, 하나의 단일한 것으로 있을 뿐이다.



지금으로서 생각하는 건 단일한 나의 존재를 느낀대도 나는 공부하기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쉽게 빠지고, 쉽게 시작하고, 쉽게 좋아하니까.


*


근래 뉴스에서 연금복권 1등, 2등 동시 당첨된 사례를 보고 솔깃해서 사봤다.

연금 복권은 다섯 장에 한 세트, 그게 오천 원이다. 그리고 복권을 살 땐 현금으로 사야 한다.


*


횡재를 하면 참 좋겠지만 어떤 좋은 일이 생기면 재수 없는 일도 그에 비례해 생긴다고 믿기 때문에 횡재하지 않아도 괜찮다.


*


이런 약간의 불안이 있는 이유는 인과율에 대한 우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판타지지만 세상엔 환상보다 더한 현실이 있다.

우화의 플롯은 이러하다.


한 노인은 횡재를 바랐다. > ‘요정’이 나타나 그에게 50000유로를 주겠다 약속한다. > 그날 저녁, 그의 아들은 사고를 당해 죽었고, 보험금 50000유로가 나왔다.


문장을 조금 바꿔보면 느낌은 달라진다.


노인이 횡재를 바란다. > ’ 악마‘에게서 돈을 건네받았다. > 저녁에 아들이 사고사로 보험금이 나왔다.


*


뭐든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의 반이 이미 정해진 지옥이더라도 나머지 반은 스스로 채우기 나름이라는 통제감이 안정을 가져다준다.


그냥 되는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맘 편히 사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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