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PAIN - 실리카겔
기타를 중고로 구입했었다. 작년 가을쯤이었다. 학교 정문 앞에 있는 다리 앞에서 만난 그 기타는 이전 소유주의 냄새를 잔뜩 묻히고 있었다. 담배냄새, 나무냄새라고 하기 뭐 한 퀴퀴한 냄새가 기타 케이스 섬유에 배어있었고 지퍼를 열어 확인한 고퍼우드는 참 영롱했다. 여분의 기타 줄까지 넘겨받고 나니 냄새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타를 받아서 자취방에 들고 왔는데 작년 내내 구입한 이후로 제대로 기타를 치지 않았었다. 그렇게 제대로 치지 않을 거였으면 ‘그럴 거면 왜 샀냐.’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 법도 한데 방 한 구석을 차지한 기타를 볼 때마다 무거운 마음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 기타가 내 것이니까, 치던 치지 않던 당연히 그냥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옷이나 액세서리, 책 만해도 손이 가지 않는 게 눈에 띄면 불편했던 마음이 희한하게 기타에게는 예외였다. 쓰지 않는 물건에 대한 부채감이 자리할 수밖에 없는데. 내 게 아닌 걸 가지고 있으면 생기는 불편한 마음이 기타는 들고 올 때부터 내 거라고 느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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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타 이야기를 꺼낸 건 지금은 기타를 치고 있다는 말이다. 요즘 내 관심사는 온통 기타다. 좋아하는 곡의 코드 진행을 찾아보면서 새로운 코드 익히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 있었는데 건반을 ‘치는’ 피아노와 현을 ‘튕기는’ 기타의 음색이 새삼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음악 특화 학교였나, 그런 걸 했어서 초등학생 때 드럼과 기타를 잡아볼 기회가 있었다. 그땐 흥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줄을 잡는 손가락이 아픈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기타의 멋짐을 알기엔 어렸고 대세에 따라 피아노 치러 다녔다. 친한 친구가 피아노를 좋아해서 학원 끝나면 같이 놀려고 따라다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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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구했던 이유 중 하나는 노래를 부를 때 반주가 필요해서다. 코인 노래방에 가면 세 곡에 천 원인데, 기타 반주를 할 줄 알게 되면 집에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
목표가 생겼는데 어느 정도 여러 주법을 익히고, 코드도 곧 잘 읽고 칠 수 있고, 듣기 좋게 열 곡 정도 악보 안 보고 칠 수 있게 되면 그땐 일렉기타를 사야겠지 싶다. 빠르면 내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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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평상에 앉아서 기타를 치는데 바람도 선선하니 야외에서 참 좋았다. 들고 다니면서 칠 수 있다는 게 기타의 매력인 것 같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의 출력을 다양화시켜 준다는 점이 재미있다. 우린 스마트폰 너머의 것을 감각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스마트폰과 한 몸으로 살고 있었는데 손에 쥐어진 게 진동, 소리 낼 수 있는 악기로 바뀌니까 주체성이 살아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