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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십 Sep 12. 2024

느끼는 불행은 온전히 내 것이 맞는 것인가.

내가 적어 내린 모든 종류의 글을 읽어보면 냄새가 난다. 손톱 밑 때처럼 꼬리꼬리한 냄새.



그도 그럴 것이 예전 기억에서 우울했던 감정, 분노했던 순간, 억울했던 느낌을 되짚으며 왜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글을 쓰는 게 그렇게 부끄럽지 않았다. 아무리 추하고 역겨운 감정이라도 제대로 들여다봐야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고, 보편적인 감정이며 한편으로는 솔직해지는 건 용기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내가 쓰는 글이 부정적인 것들에 치우쳐있다는 건 왜 그런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는 건 좋지만 쌓아둔 글을 모아놓고 현재 내면을 살펴보니 내가 가진 적당한 현실에 비해 너무나 크게 불행해하는 경향이 있다.


미리 불행해하고 있으면 미래에 닥칠 불행을 덜 아프게 생각할 것 같아서 덤덤하게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개인적인 성향도 한몫했겠지만 그보다 더 큰 건 뉴스에서 전해오는 사건사고, sns에서 느끼는 타인과 나의 경제적/사회적 격차,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소재의 대중매체 등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보다 더 불행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도 컸다. 내가 느끼고 있는 지금 이 불행은 직접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미디어 환경에 노출되어 과거의 기억에서도 부정적인 기억만 꺼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하고 있는 부정적인 사고가 개인적이고 사소한 불행에 대해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이슈를 뒤집어씌워 크기를 키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


불안을 느끼게 되는 고민들도 쓸데없다고 느껴졌다. 지나고 보면 고민의 대상과 방향이 아예 틀린 경우도 있었고, 쓸데없이 시간을 부정적인 감정을 해치우는데 썼다고 느낀다. 어차피 닥쳐올 일은 밀려오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미리 벌벌 떨고 있을 여유가 있었나 싶어서 그 여유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땐 진지한 고민이었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한 시간적 낭비를 통해 느낀 건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이다. 게임 중에 착시를 이용한 유명한 게임이 있다. ‘가까이서 물체를 보면 크고, 멀리서 동일한 물체를 보면 작다.’라는 물리적 거리감에서 오는 착시를 이용한 게임인데 신기하고 재미있다. 내가 한 생각도 이것과 비슷하다. 어떤 고민을 내가 서 있는 이 방향, 이 위치에서 서서 바라보면 정말 커다랗고 심각한 문제인데 조금만 멀리서 다르게 보면 쉽게 풀리는 문제인 경우들이 있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건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데에 필요한 건 내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데에서 시작한다.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정말 내 생각이 맞는지 사유하는 건 중요한 과정이다. 일기를 쓰거나 글로 정리하거나 좋아하는 글을 필사하거나 하는 일들은 생각의 균형을 잡는 데에 꼭 필요하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우울의 감정이 거짓되거나 가짜 우울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비해 과장된 면이 있음을 지금에서야 크게 느낀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생각을 다른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고, 그것은 타인과의 대화나 책을 통해서 가능하다.



*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소설을 읽는다. 홍학의 자리, 파친코,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연이어 읽고 있는데 확실히 읽다 보니 글을 유연하게 읽는다.


이전에는 모든 글을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 의미를 유추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덧붙이면서 진지하고 느리게 읽었는데 그게 끈기나 인내만 가지고는 완독 하기가 어려운 독서습관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좀 더 편안하게 문단을 훑는 과정을 겪고 있다. 다시 말해 읽었던 줄을 반복해서 읽는 습관을 개선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신하고 싶은 마음에 자꾸 문단 앞으로 돌아가고는 했는데 문단과 문단과의 연결성이 떨어져서 요지를 파악하는 것도 느리고 흥미가 빨리 떨어지곤 했다. 요즘은 책을 펼쳐서 관심 있는 장을 먼저 읽는다던지 읽다가 흥미가 없어지면 아예 다른 관심 있는 책을 펼치는 식으로 편하게 책을 본다.


소설을 읽으면서 발견한 나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묘사를 상상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다는 점이다.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레 이미지를 상상하며 장면을 그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소설이 재미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 흥미대로 인물을 상상해 내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이 좀 덜했던 것 같다. 어차피 픽션이고 실용적이지 않은 흥미를 유발하는 글이라는 생각에 소설, 그중에서도 시대배경을 모르는 책을 편식해 왔다. 최근 애플 tv를 구독하기 시작하면서 파친코, 레슨 인 케미스트리 드라마를 챙겨봤는데 화면으로 제시해 주는 영상 정보가 내 가난한 상상력에 큰 도움을 줬다. 그래서 저녁에 드라마를 보고, 그 이후에 흥미가 생기면 책으로 읽는다. 그러면 좀 더 재미있게 상상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책을 읽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글의 요지를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는 독해력,

알고 있는 단어를 기반으로 한 풍부한 표현력과 상상력,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내 사유인지 아니면 타인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키우고

말을 논리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식의 글을 접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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