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 - Xdinary Heroes
나는 오늘 또 한 번 기준치에 다다르지 못했다. 벌써 똑같은 시험을 세 번째 떨어졌다. 처음엔 26점, 두 번째엔 43점, 지난 8월에 본시험은 54점이다. 60점을 넘으면 자격증을 얻는 시험이고, 처음 떨어졌을 땐 떨어진 자존심만 생각나서 돌아보기가 싫었고, 두 번째엔 내 노력이 그만큼이었다는 걸 수긍했다. 세 번째 떨어졌을 땐 아쉽다는 생각과 함께 이번엔 이 실패를 어떻게 봐야 하나 싶었다. 나는 공부를 허투루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자꾸만 목표점수에 다다르지 못하니 말이다.
실패의 아픔에 무뎌지는 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실패를 정말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 생각인데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자존심이 상해서 그만둬버리는 사람이었다.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것도 처음엔 그냥 짜증 났다. 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니. 사실 그렇게 실패가 뼈아픈 것도 아닌 것이 나는 이 시험과목에 애정이 없다. 1회 차 시험 때는 전공선택에 대한 회의감으로 대부분 딴생각을 많이 했었고, 2회 차 시험 때는 그래도 정 붙이려고 꾸준히 4시간씩 2주간 공부했었다. 그런데도 부족했다. 3회 차 시험 때는 다 풀지 못했던 기출문제를 풀고 들어갔다. 좀 더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꾼 것도 있다. 이 학과를 나와서 전문 자격증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끝맺음을 제대로 맺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마음먹고 했다. 근데 또 떨어졌다.
근데 희한하게 첫 번째 때는 시험결과 나오고 한 달 내내 침울했고, 두 번째 때는 일주일 정도 우울했고, 세 번째 때는 한 시간 정도 부모님께 어떻게 우울하지 않게 결과를 말씀드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과거로 갈수록 나는 자기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더 그랬지만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고 거울을 잘 볼 수 있어서 이런 실패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공무원시험이나 전문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기막힌 경쟁률에 입이 떡 벌어지고 획일화된 길로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답답해지고는 했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정말 그 길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어린 생각이 있어서 더욱 그땐 답답했다.) 그래서 시험을 볼 때마다 절대평가가 아닌 시험에서는 늘 긴장되고 답답했다. 대체 내 길은 어디 있길래 나는 뛰어나지 못한 걸까. 왜 나는 남들과 다르게 집중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못하고 있는가, 자책, 불안, 후회... 앞서 획일화되었다고 표현했지만 시험에 통과해서 그토록 원하던 직무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은 참 멋지다. 그래도 요즘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문을 보고 달렸어야 했나, 사회가 별로라는 생각은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또 다른 자신의 의미를 찾기 전에는 자신이 실패자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해서 몇 년간 괴롭다. 그리고 또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할지, 아니면 정말 다르게 살 것인지.
'레슨 인 케미스트리'라는 화학자이자 여성인 1900년대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었다. 화학자임에도 시대적 배경에 의해 승진은 고사하고 원하는 직무에 취업조차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이야기였다.
하루를 운용할 에너지를 주는 것이 식사라서 주인공은 '집안일'인 요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화학자라서 그런지 모든 변인을 통제해서 가장 맛있는 음식 레시피를 찾는다. 그리고 연구를 한다.
하고 싶은 연구가 있어서 직장에서 잘려도 집에 실험실을 만들어서 계속 연구를 하고,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지 못해도 저녁을 먹는다.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고 연구를 그만두는 일도 없다.
예상대로 되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건 잔혹하다.
별 거 아닌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웠고, 별 거 아닌 사람일까 봐 스스로를 감췄고, 그러다가 정말 별 거 아닌 사람이 됐는데 이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꼭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인가 나는 시험에 연달아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최근 한 달 동안은 기타 연습에 게을렀다. 재미있었는데 매일 연습하는 곡만 연습해서 그런가 싶어서 어제는 새로운 노래의 코드를 땄다. 기타 코드 중에 잡기 어려운 마의 코드가 F, B였고 근래 잡기 어려운 새로운 코드는 G#m코드다. 엄지로는 6번 줄을 잡고 검지로 3,4번 줄을 한 번에 눌러야 하는데 소리가 안 난다. 30분 동안 시도하다가 언젠가는 되겠지 하고 가방에 넣었다. G#m 코드가 낯설기도 하고 화음 체계를 알고 싶단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직장인 밴드를 해야겠다.
어제저녁에는 대학가요제 영상을 봤다. 익스 - 잘 부탁드립니다, 무한궤도 - 그대에게를 봤는데 찬란하더라. 나는 스스로를 음치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무대에서 노래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은데, 무대에서 자유롭게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은 또 생각이 바뀌어서 잘 부르건 말건 자기 목소리로 살살 노래하면 다 잘 부르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전엔 가족들 앞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거실에서 기타 치고 노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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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울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전염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우울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 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나에게 우울을 말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스스로가 슬플 때 정말 기대고 말할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힘들다. 다른 사람이 우울한 것을 털어놓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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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신건강에 좋은 태도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Whatever.
어쩌라고 -라는 뜻인데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최근에 재결성돼서 화제 된 영국 국민 형제 밴드 Oasis의 노래 중에서도 Whatever가 있다. 뭐 어쩌라고. 잘 되건 안 되건 이상하건 바보 같건 그냥 살던 대로 잘 살면 된다는 생각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남들에 관심이 없겠지만 너무나도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쉽게 하는 말도 아플 때는 그냥 신경 끄고 있는 게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