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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경

서울 - 쏜애플

by 이오십

지난주 금요일에 서울 구경을 다녀왔다. 금요일 낮의 홍대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고 다섯 시 이후에는 대로에 사람과 차들로 꽉 차있는 풍경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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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서울은 타이베이, 오사카, 런던, 속초, 경주와 다름없는 여행지다. 서울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언제나 내 로망의 도시일 것이다. 중고등학생 때는 늘 서울의 인프라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조금씩 다른 풍경의 동네가 있고, 커다란 경기장이 있어서 콘서트가 열리고, 인앤아웃 버거가 가장 먼저 상륙하는 대한민국의 수도. 늘 궁금했다.


서울에 가려면 최소 3시간 동안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 지리적 운명을 타고났고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다른 지역을 혼자 여행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아는 곳의 경계 바깥을 여행, 아니 모험하는 게 기대되기도 하지만 내가 움직임으로써 발생가능한 불상사에 대한 상상력이 지나친 편이었다. 부모님도 보수적인 성향이고, 나 역시도 그런 편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잠을 자기 전에 가끔 서울에 가는 상상을 했다. 서울역에서 내가 가진 돈을 모두 잃어버려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할까, 혹은 내려야 하는 곳에서 내리지 못해서 길을 잃으면 어디서 내리는 게 좋을까, 혹시 택시를 잘못 타서 시내를 빙 둘러 목적지에 가는 것 같으면 뭐라고 말하지 등... 다방면으로 상상력을 펼쳤다.

간혹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다 보면 현실에 일어난 부정적인 사건과 연계되어 선택을 포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치한을 만나서 도망쳐야 한다면 어떤 길로 도망치는 게 빠를까.. 따위를 상상하다가 결국은 "됐어, 안 갈래."로 끝맺는 것이다. 당시 택시를 타고 납치당하는 사건이나 연쇄살인 사건 뉴스, 도시괴담 등이 만들어낸 공포의 산물이다.


일어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대안책을 상상하는 게 처음엔 즐겁다가 점점 심각한 상상으로 이어지고, 혼자 지레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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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밖에 사는 사람이라는 게 10대 후반, 20대 초반엔 아쉬웠다.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 종류가 한정적이고 -뮤지컬, 콘서트, 연극, 연주회, 공연, 전시회, 소품샵, 오프라인 콘텐츠, 강연 등이 있지만 내 몸이 위치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건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대중음악이었다.-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즐기며 사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취향도 다양하고,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개성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궁금한데 해보지 못한다는 건 좀 자존심상하는 부분이었다. 그땐 그랬었다.


그래도 인터넷이 있는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온라인을 통해 최신 밈을 알고, 유행하는 편의점 간식 종류도 알고, 요즘 사람들이 즐기는 영화도 알고 이만하면 만족이다. 오히려 알지도 못해서 누리지 못하는 게 더 슬프다. '아쉬울 것도 없다.'는 '기회조차 없다.'를 내포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나에게 없는 걸 부러워해봤자 라는 안다. 서울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 가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 가고 싶으면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서 카페에 앉아있는다.

서울 밖에 살고 있어서 얻은 건 사실 잘 모르겠다. 이미 잘 누리고 있기 때문에 잘 안 보인다. 숨 쉬고 있지만 공기가 눈에 안 보이는 것처럼. 그래도 이만하면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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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익숙한 동네들은 10대의 잠식과 함께 자연스레 멀어졌다. 달라진 건 나 하난데 옛날 동네의 풍경은 한참 뒤로 밀려났다. 손톱이 자라나서 세월이 깎여나가는 것처럼, 지금 나의 손가락에 붙어있는 손톱이 1년 전 그때의 손톱이 아닌 것처럼 같지만 다르다.


좋아했던, 아니던 이미 나에게 주어져있던 내가 살던 나의 동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겠지만 옛 동네가 그립지 않다. 희한하다. 동네 뒷골목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술래잡기를 하던 기억을 떠올리면 행복해지지만, “돌아갈래?”, 묻는다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알던, 나를 알던 사람들은 어차피 그곳에 없다는 걸 안다. 종종 장소를 그리워한다고 착각하지만 나는 주로 인물이 그립다. 장소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때 그곳에 그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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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걸어본 경험은 손에 꼽지만 빌딩 숲 서울은 왠지 그리운 느낌이 있다.

빌딩마다 사람이 꽉 들어차있다.

내가 몰랐던, 내가 알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새로운 감정과 기억을 심어줄 가능성이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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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운동화 구경을 하고 대로변에 있는 카페에 앉아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봤다. 내가 사는 곳에서 일주일 동안 지나쳤던 사람들을 다 손꼽아봐도 1시간 동안 그 자리에서 봤던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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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에 타이베이에 갔을 때도 나는 숙소 창문 앞에서 이동하는 인파를 구경했다. 파도가 밀려오고 나가는 바다 풍경을 감상하는 것처럼 횡단보도를 건너는 인파를 바라봤다. 사람구경.. 사람구경을 좋아해서 대형 쇼핑몰을 걷는 것도 좋다. 하지만 놀이공원은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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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부족하다.


아직 그리워할 대상이 충분하지 않은 기분이다. 좋아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 해 여름에 동네 야채가게에서 산 복숭아맛을 그리워하기도, 동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을 떠올리기도 하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간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그리울 정도로 좋아하는 것들이 저 도시에는 더 많을까, 그런 기대로 사람들은 대도시로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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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그리운 것이 떠올랐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 앞에 풍년제과에서는 시금치 시폰을 팔았는데 목욕탕을 다녀오는 길 저녁엔 그 빵을 먹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한편으로는

낭만 같은 소리 하네, 내 귀에도 그리워할 것을 찾아 가능성을 쫓는다는 말이 낭만같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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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과거 자체가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삶은 사실 가장 행복한 삶이다. 그리워할 과거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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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울이 여행지라는 게 좋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 장소의 아름다움이 더 잘 보인다. 서울엔 동네도 많아서 들를 때마다 새로운 동네를 모험하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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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살아본 적도 없는 곳을 그리워한다는 게 말이 되냐, 할 수도 있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가족이 있다. 첫째 고모, 둘째 고모, 작은아버지가 90년대 말에 이민 가서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영상통화로 몇 번 인사한 게 전부고 내가 기억하기로 실제로 만난 건 딱 한 번이었다. 영상통화로 본 작은아버지 얼굴은 얼핏 봐도 아빠의 얼굴과 거의 같았다. 표정도, 목소리도, 행동도 다른 듯 닮았다.


어릴 때 나무마루 위에 누워 직접 만난 적 없는 가족들을 상상하면 안심됐다. 다른 대륙에서 살고 있는, 얼굴은 모르지만 나와 닮은 누군가가 있다. 그 땅, 그 도시에도 내가 알지만 모르는 누군가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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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추석 때 가족들과 옹기종기 전을 부치고 집에 돌아간 날이면 미국에 살고 있는 다른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가끔 연락이 오면 긴장돼서 숨고 싶었지만 오히려 과하게 반가운 척했다. 그날 저녁엔 혼자 침대에 누워 미국 땅, 낯선 얼굴들 사이를 걷고 있는 가족들 얼굴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런 면에서 나는 직접 만난 적도 없던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경험한 대상만 그리워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한편으로는 경험한 것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렇게 쉽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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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집에 내려가는 길에 로또를 하나 샀는데 완전 꽝이었다. 사람들이 길게 줄 서고 있어서 하나 사봤는데 그날 저녁 좀 설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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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나의 외연이다. 요즘 내 주변 사람들을 내 일부로 생각하며 대하고 있다. 사랑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당신의 특성을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어떤 모습을 생각하니 좀 가엾다. 그래서 사랑하긴 어려워도 미워하진 않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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