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가능한 걸 인정하기

by 이오십

절대 오지 않을 미래 같은 게 있다. 가닿을 수 없는 우주 말이다. 불가능이라고 말해야 하나.


*


내 주변에는 불가능을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불가능하다"라고 단정 짓는 걸 안 좋아했다. 하지만 세상에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는 정말 불, 가, 능 하니까 그렇다.


불가능을 이름 붙일 때는 기한이 있어야 한다. 이때까지 이만큼 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이렇게. 대부분 (언제까지) 불가능하다, 에서 (언제까지)를 생략하기 때문에 "아냐, 너는 할 수 있어."라는 긍정으로 귀결하는 것이다. 주변에 본인을 긍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관심 없이 하는 무심한 말일 수도 있고, 정말 그 사람은 당신의 인생계획을 모르기에 '지금'처럼 꾸준히 한다면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 단정 짓는 건 주의해야 한다. 스스로를 가둘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무리 살을 빼고 꾸민다 한들 그 방법으로는 차은우만큼 잘생겨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좋지 않게 헤어진 연인을 다시 사랑하게 될 일도 드물 것이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다시 젊게 되돌려 함께 즐겁게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


시간에 대한 소재로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있다.

아마 보통 불가능하다는 일에 대해 '만약'을 넣어 상상하는 게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만약, 마법세계가 있어서 마법학교 초대장을 받는다면? - 해리포터

만약, 성형수술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게 된다면? - 미녀는 괴로워

만약,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다시 만나서 사랑할 수 있다면? - 지금 만나러 갑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면? - 테넷, 시그널...

만약, 단기기억 상실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 메멘토

만약, 다시 젊어진다면? - 수상한 그녀

...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다시는 같은 강물에 몸을 담글 수 없다.


부모님을 다시 젊게 하는 일은 없고, 오직 내가 부모가 되어 또 다른 우주를 만드는 건 가능하다.

사슬 모양 같기도 하다. 각 사슬은 연결되어 있지만 한 사슬의 끝은 있다.


시간은 용수철 같기도 하다. 계단 모양 같기도 하다.

평면으로 바라보면 같은 위치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데 3차원으로 보면 높이가 달라진다.

시간은 쏜살같다는 말이 그래서 그런가. 시간이 총알 같다.

총알도 빙글빙글 회전하며 과녁에 꽂힌다. 뚫고 나간다.


*


가능성에 중독되어 불가능한 걸 애써 부정하는 마음은 애처롭다.

어릴 때부터 포기하는 걸 제대로 못 배워서 지금에서야 배운다. 포기하면 왠지 지는 것 같아서, 내 가치가 훼손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빴다. 근데 어느 정도 휘어져야 정신도 몸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포기를 잘한다. 빠른 포기, 삼십 육계 줄행랑이 제일.


할 수 없습니다. 하기 싫어요. 안 될 것 같은데요. 못 하겠어요.


부정하는 말 내뱉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긍정은 포기를 모르게 하고 어느샌가 정말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스스로 가늠이 어려워지게 한다.

뭔가 하기 싫어하는 ‘나’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책하게 된다. 뭔가 포기하지 않는 정신보다 중요한 건 접을 땐 접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기세.


keyword
화, 목, 토 연재
이전 13화서울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