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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

Ryudejakeiru - 실리카겔

by 이오십

육감이 있다고 믿는가? 쎄하다,라고 표현하는 직감 말이다. 타인의 반응을 민감하다시피 알아차리는 것,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상대방의 얼굴근육, 목소리 톤, 순간적인 표정을 눈치채는 것 말이다. 나는 며칠 전에 본능적으로 쎄함을 느낀 일이 있었다.


사실 이 이야기를 누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밤 10시 반에 소화가 잘 안 돼서 달리기를 하려고 현관을 나섰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공동현관복도 거울 앞에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었다.


바로 몸을 돌려서 공동현관 자동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 끝에는 170cm 가량의 덩치있는 남성이 서 있었다. 먼저 내가 문을 나섰고, 그 이후에 그 사람은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5초정도 스쳐지나갔는데, 나를 째려보고 있었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나는 이 때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아는 얼굴이었다. 몇 층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몇 번 같이 엘레베이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마주칠 때마다 그 애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먼저 인사를 건네면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며 그대로 입술만 움직여서 중얼거릴 뿐이었다.


**


피부는 하얗고 생머리에 쌍커풀없이 날카로운 눈매였다. 어쩐지 오싹해서 그 때부터 그 애가 멀리서 보이면 좀 멀리 피해다녔다. 이 아파트에 15년 째 살고 있었고, 그 애와 키가 비슷했을 때를 기억한다.


저 멀리서 어떤 큰소리가 나서 돌아본 적도 있다. 주차장에서 허공을 쳐다보며 혼자서 큰소리로 욕하고 있는 그 애가 있었다. 정확히 무슨 욕이었는지 기억은 안났는데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좀 무서웠다. 위협적이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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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패딩을 입고 손에 치킨이 포장된 흰 비닐봉투를 들고 공동현관 앞에 서 있었던 사람은 그 애였다. 5m 거리쯤 됐을까, 푸른 색으로 코팅된 유리문 너머, 어둠으로 디테일이 생략된 형체만 인식했기 때문에 자동문 [열림] 버튼을 누른 뒤, 얼굴을 쳐다보고 알았다. 눈이 마주쳤는데 눈빛이 싸늘했다. 검은 눈동자,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애가 고개를 40도 가량 숙이고 앞에 서 있는 나를 응시했기 때문일까, 확실히 째려보는 느낌이었다.


스쳐 지나가는데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애가 평소에도 혼자 중얼거리는 걸 봐 왔기 때문이다. 그 애가 내가 생각하는 '보통'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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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와 그 애 아버지가 엘레베이터 안에서 싸우는 걸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정확히 대화내용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말씨로 그 애가 욕을 내뱉고 있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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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헬스장에서 런닝머신을 탔다. 왠지 그 싸늘함이 마음에 걸렸다.


그건 적대감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중얼거림, “왜 늦게 여냐고.“ 노려보는 검은 눈동자, 손에 들고 있는 치킨 봉지,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묵묵한 두 발.

분명 그건 나를 향한 말이었다. 나는 그 애와 제대로 인사를 주고 받은 기억도 없고, 오히려 스치듯이 얼굴은 알지만 지나쳤었다.


새삼 런닝머신 위에서 소름이 돋았다. 혹시, 나에게 앙심을 품었나?


공동현관 문 너머에 문 열어주길 바라는 사람이 우두커니 서 있을거란 생각은 안했다. 왠만해서는 주민일 것이고, 스스로 열고 들어올텐데. 거울을 본 시간도 잠깐이었고, 내가 그 애에게 문을 열어줄 의무도 없었을 뿐더러 그 앞에 서 있었는 줄도 몰랐다. 의무가 없다해도 호의로 문을 열어주는 것도 가능하다, 알았다면..

아니, 내가 왜 열어줬어야 하나? 본인이 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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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오싹함이 너무 싫었다. 앙심을 품었을지도 모르는 그 때 그 표정.


어쩌면 내가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해석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거의 90%이상 확신한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이러한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뭔가 오해가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확신이 섰다.


보통이 아닌 사람은 여러모로 두려운 존재다. 어떤 포인트에서 자신의 감정이 상했는지 곧바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보통이 아닌, 정상이 아니라는 범주는 내가 세운 것이다. 아주 주관적이다. 나, 정상인은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 라는 원칙이 존재하고 그런 원칙조차 벗어나는 어떤 특이행동을 하는 어떤 비정상의 존재 말이다. 주관은 편견이기도 하고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프레임이기도 하고, 사진이기도 하고, 현상에 대한 단면이기도 하다. 포착이기도 하고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바는 내가 본 시각으로는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건을 다르게 보는 관점이 있다면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사실이 있다. 어쩌면 진리와 다른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누가 미쳤고 누가 정상인가….

누가 해석을 하고 누가 오해했는가.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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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cctv 설치에 관한 논의, 어린이집 및 학교에 등원하는 아이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불상사를 예방하고자 하는 학부모와 사건의 단편적인, 편집된 녹음본을 가지고 오해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을 걱정하는 교사 집단 사이의 갈등. 워낙에 세상이 흉흉해서, 믿을 수가 없어서 예방을 목적으로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고 신고하는 사회는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맥락은 참 중요하다. 단편적인 정보는 1차원적이다. 정보를 이리저리 맞춰가면 연관성이 생기고 3차원으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사건이 생긴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볼 것인가, 어느 방향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카메라는 사각 프레임 안의 것만을 저장하고 기억한다. 프레임 밖의 것은 시간을 타고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모르게 슈뢰딩거 고양이 상태가 된다.


간혹 맥락을 못 읽는 사람들이 눈치 없다 소리를 듣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적당히 못 읽으면 그렇고, 정말 무맥락 뜬금포,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면 두려움의 존재가 된다. 대화할 수 없는 존재.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외계인, 외국인,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 상사, 부하, 친구, 너, 나… 외연의 존재 중에 가장 말이 안 통하는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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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누구의 관점이 채택되는지는 권력의 문제다. 누가 말 그대로 힘이 센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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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미친 사람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가 정상인지 누가 알겠는가.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눈 뜬자가 비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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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국 첩자가 마을 우물에 먹으면 미치게 되는 약을 풀었다. 사람은 하나, 둘씩 미쳐가기 시작했고 궁전에 사는 사람들도 미쳐갔다. 결국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오직 왕 하나만 남게 되었다. 왕은 우물박을 길어 물을 마시고 함께 미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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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우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럼 이제 누가 미친 사람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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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개봉한 벨기에 단편영화 Downsid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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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협력, 협동의 기본이다. 힘을 합쳐 어디로 향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대화해야한다.

경계하고 의심하는 건 생존 본능이다. 서로를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 어쩌면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만큼 요즘 시대에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건 없는 것 같다.

점점 너의 존재보다 나의 담을 높이 쌓는게 더 중요해지고, 내게 소중한 ’너(타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혼자, 개인주의? 좋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대화는 필요하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기 전에 정말 그 말이 맞는지,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상대방이 이해하고 있는 게 나의 의도를 이해한 건지, 그 외 많은 디테일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별거 아닌데 공포만 높아진다. 어쩌면 별게 아닌 일이 발견될 수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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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나는 널 해치지 않을 거라는 무해한 표정. 가장 기본적이지만 유지하기는 어려운 표정.

잘 웃는 사람이 그래서 호감간다. 해치지 않아, 해치지 않아, 해치지 않아…

그래서 웃으면서 칼 꽂는 사람이 무서운 거다. 싸이코패스 영화에 나오는 부류처럼, 정말 속을 감춘 인간상 말이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를 보면 주인공이 사이코패스다. 속임수에 능한, 사회적으로 적응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 아직 나는 사이코패스를 겪어본 적이 없다.


그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사이코패스도 사이코패스가 아닌 게 되나? 그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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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마녀사냥 같은 건 어떠한가. 오해를, 상황을 눈덩이처럼 굴려가는 사람들. 잘 모르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없는 말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본 적 있다고 거짓말 하는 사람들, 혹은 실제로 자신은 봤기 때문에 본대로 말하는 사람들, 혹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본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


누구를 믿고 이해하고 신뢰할 건지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해와 관용.


신뢰를 쌓는다, 라고 표현한다. 시간을 쌓는 것이다. 신뢰는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함께 시간을 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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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포를 느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 애를 보고 느낀 게 내 시각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주장하긴 어렵다. 누군가에겐 내가 미친 사람일수도 있다.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다. 내가 나에게 미친 존재일 수도 있다. 영화 23아이덴티티가 그런 영화였다.


공포없이 괜찮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미소지을 수 있는 세상. 신뢰할 수 있는 장소와 대화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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