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 eh - Fujii Kaze
나는 가방을 참 좋아한다. 간단하게는 립밤부터 보조배터리까지 챙길 수 있는 주먹만 한 가방부터 작은 책 한 권, 120ml짜리 텀블러 하나 넣을 수 있는 에코백, 1박 2일 여행을 가도 될 짐을 넣을 수 있는 비정형의 나일론 가방, 학교 다닐 때 전공책을 넣을 수 있는 어깨박음질이 튼튼한 백팩까지.
내 주변인들은 대개 백팩이나 에코백 하나 정도로 살고 있다는 점을 봐서 나는 그들보다는 가방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방 안의 소지품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집 앞을 나서는데 어디 멀리 가는 사람처럼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는 보부상들 짐을 구경하는 게 특히 재미있다. 가끔 "이걸 왜 가지고 다녀?" 싶은 의외의 물건을 발견하면 그 사람만의 개성이 보일 때가 있어서 재미있다.
이는 학생 때 친구들 필통 구경하는 것에서 연장된 흥미다. 모두가 주머니 내지는 사각기둥, 원기둥에 필기구를 넣고 다니지만 단순한 용도에서 벗어나 개성을 표현하는 디자인은 제각각이다. 필통의 재질 - 반투명한 플라스틱 필통부터 꽃무늬 천에 솜을 넣은 필통, 지퍼가 둘둘 둘러싸인 필통, 아주 고급스러운 가죽필통, 딱딱하지만 투명한 아크릴 필통... -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거니와 필통 안에 들어있는 형광펜, 연필, 샤프, 샤프심 통, 지우개, 볼펜 등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미니멀리스트도 있고, 맥시멀리스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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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은 검은색, 실크처럼 반짝이지만 실크는 아닌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핸들이 하나 있는 숄더백이다.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다. A4 종이 묶음을 세로로 넣으면 간당간당하게 끝까지 들어간다. 내용물이 쏟아지거나 빗물이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는 지퍼는 없고, 흐물거리는 형태로 장바구니에 적합한 가방이다. 그래서인지 매우 가볍다.
오늘 나의 가방 안에는 반찬통 하나, 1L 물통, 파우치 하나, 필통, 공부할 책 두 권이 들어있다
나의 점심이었던 삶은 계란, 단호박, 당근이 들어있던 손바닥만 한 반찬통은 현재 비워져 있고, 1L 물통에는 미지근한 정수물이 들어있다. 집에 가기 전에 다 마실 예정이다. 파우치 안에는 작은 파우치 하나, 보조배터리, 전선, 이어폰, 가루형 비타민C, 립밤, 앞머리 롤이 들어있다. 그리고 작은 파우치 안에는 여행용 양치도구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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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방의 조건은 1. 가볍고 2. 빗물과 같은 오염에 강하고 3. 마음에 드는 디자인, 4. 합리적인 가격. 이렇게 네 가지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가방은 백팩 2개(크기가 다른 두 개), 크로스백 2개(하나는 빈티지한 느낌의 무늬 있는 가방, 다른 하나는 짐이 많이 들어가는 은색 운동가방), 버킷형 가방 2개, 미니 크로스백 2개(주황색의 자라 가방, 무난한 검은색 가방), 아이패드를 넣고 다니는 용도의 클러치형 가방, 노트북을 넣고 다니는 기능성이 중요한 가방, 가죽 토트백 하나, 인조가죽 숄더백 하나. 이렇게 총 열두 개의 가방이 있다. 모두 나의 조건을 통과한 가방이다.
왜 이렇게 많은 가방이 생겨났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원래 하루에 외출은 최소 2회인데, 바꾸어 매도 하루에 맬 수 있는 가방의 양은 2개 정도면 최대다. 나머지 10개 가방은 창고에서 쉬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가방은 패션이고, 패션은 환경입장에서는 죄악이다. 쓰레기섬 관련 다큐도 봤고, 우리나라에서 의류수거함에 들어간 옷들이 제3 국의 쓰레기 산에 간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그런가 내가 이렇게 많은 가방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렇게 떳떳한 기분은 아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열 두 개 가방만을 쓴다고 해도 찢어질 때까지 쓰진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가방 사는 건 그만두고, 그냥 가방의 다양한 디자인을 보면서 눈이 만족하는 쪽으로 옮겨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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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변명을 해보자면, 모든 가방은 미묘하게 쓰임새가 모두 다르다. 그래서 다 돌아가면서 필요한 경우에 맞추어 교체해서 쓴다. 물론 필요한 물건을 수납해서 들고 다닌다는 점에서 그 많은 가방의 용도는 단 하나이긴 하다. 나는 가방을 내가 가지고 다니는 짐에 비해 너무 모자란 것도, 넘치는 것도 안 좋아한다. 이상.. 변명이었다. 이제 정말 그만 사야 한다.
나에겐 상황에 알맞은 형태의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게 즐거움이지만, 이를 대체할 또 다른 즐거움은 없을까?
이런 즐거움도 즐기되 지금 내가 필요한 것들에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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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중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 사람이다. 평생에 있어서 꼭 이뤄야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너무너무 가지고 싶은 걸 꼭 가져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나는 간절해지는 게 두렵다. 간절한 사람은 시야가 좁다. 그러니까 간절해진다. 이거 아니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스스로를 꽉 움켜쥐고 살게 된다. 살면서 적당한 긴장감은 좋을 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숨 막힐 때까지 몰아세우는 간절함은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간절하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나는 참 간절할 때가 많았다. 중간고사 칠 때도 문제 하나 더 맞히고 싶어서 간절했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였는지 생각해 보면, 나는 삶의 태도에 있어서 매사에 열심히, 이게 멋진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도 안 졸고 선생님 목소리를 따라 형광펜을 긋고 메모를 했다. 졸려도 참고 공부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뭐든 잘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고, 뭐든 잘 해내고 싶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이젠 열심히의 경계가 참 모호하다고 느낀다. 열심히, 가 뭔데? 모호하다. 그냥 살아있는 것 자체가, 그 몸에서 대사가 일어나는 것 자체가 열심히인 것 아닌가.
생각해 보니, 나는 열심히 살면 원하는 것을 하나씩은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믿었기에 간절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험에 도전을 했었고, 떨어지고 나서 더 이상 열심히, 간절히 사는 것에 대해서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비하하는 것은 아니고, 간절하게 해야 하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나는 아마 평소에 내가 하던 행동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좀 더 나은 행태를 가진 인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결과가 썩 우수하지 않았어도, 숫자보다 더 괜찮아 보이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 같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바른 이미지의 교우관계 원만한 모범생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의 나는 쉬었음, 쉬고 있음, 뭘 할지 모르겠음 청년일 뿐이다. 그리고 이전에 내가 받던 성적들은 내가 가진 기본 그릇보다 꾸역꾸역 담아서 만들어낸 고봉밥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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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를 생각해 보면, 단순하고 평면적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더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건데.. 열심히가 뭔데." 이런 생각을 자주 했고, 이전에 살던 삶의 태도에서 확 변하니까 우울감이 들었다. 어떻게든 과거의 삶의 태도 - 열심히 살자 - 가 옳다고 믿고 싶어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누군가의 경험담을 듣기도 하고,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하지만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하면 좋으니까 열심히 했던 건데.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데, 이젠 더 이상 다른 사람보다 잘난 사람이 될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순수해 보이고, 그걸 믿을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질투가 났다.
어쨌거나 '해서 된다'라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또 열심히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선순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좀 싫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여전히 쉬는 시간도 없이 끝없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숨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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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다가 대학생 때 하이큐를 봤다. 하이큐는 일본의 배구 만화(애니메이션)인데, 전형적인 소년만화다.
주인공 히나타는 배구에 대해서 열정적이고, 승리에 대한 욕망이 어마어마하다. 당시에 나는 히나타가 주인공인데도 싫었다. 배구에 그렇게 진심인 게 멋져서 샘났다.
하이큐를 다 보고 나서는 좀 생각이 바뀌었다. 왜 그렇게 승부 하나하나에 열정적으로 공을 띄우고, 연결하는지. 왜 그러냐고 물으면 이기고 싶으니까.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끝없이 왜 열심히 살아야 해?라는 이유 찾기를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그냥 난 열심히 살고 싶지가 않을 뿐이었고, 그렇게 열심히 안 살아도 인생은 굴러갔다. 어떻게든...
언젠가는 또다시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라고 누군가에게 질문받을 만큼 무언가에 열정을 쏟을 날이 생길 수도 있지도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내 인생이 망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서 괴로웠다. 지금 열심히 하고 싶은 게 없다,라는 게 좌절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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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열심히 해서 얻은 과실을 따보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못 먹어서 신포도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나는 꼬인 데가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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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건, 나도 열심히 살고 싶어 져서? 가방을 사서 모으는 일보다 내가 움직임으로써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어 져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삶의 보람이란 게 물질적인 것도 좋지만 정신적, 어떤 성취에서 오는 건 또 다른 보람이지 않았나 싶다. 인정욕구와는 좀 다르게 보람이란 건 당장은 고통스러워도 시간이 지나면 달콤해지는 그 어떤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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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누군가는 특별해지길 원하면 남들만큼 하면 안 돼, 더해야지.라고 하는 말을 하는데 난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너무 끔찍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특별하고 싶긴 한데 남들만큼 하는 것도 힘들어서... 하지만 애초에 남들이라는 것도 내 주변의 인물들에 불과하다. 또 누구랑 비교할 수 있는데.. 범위를 더 넓혀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우리나라 사람들? 이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이런 사고관을 가지게 된 건 다 같이 하나의 시험을 보는 수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겠다. 물론 태어나는 것도 하나의 관문이고, 결혼도 하나의 관문이듯이 수능도 하나의 관문으로써 내 삶에 영향을 줬다. 인생에서 그 모든 관문들을 지나는 조건이 개인 차가 있다. 공평하지 않아 보이는데 그 공평하지 않은 게 오히려 득이 될 때도 있고, 실일 때도 있다. 다 같아도 다 같은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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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고 소박한 삶이 성공을 추구하며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삶보다 더 행복하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쪽지에 쓰인 글귀라던데, 정말 그렇다. 이 문장을 10년 뒤에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그때도 이 말에 공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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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에 의해 간절해지는 게 최악이고, 자의에 의해 간절한 건 두 번째로 나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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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렇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마음먹어야 한다. 나는 마음먹기까지 참 오래 걸린다. 그리고 마침내 발을 떼면 미친 듯이 뛰는데, 그러다가 금세 지친다. 달리다 보면 내가 얼마나 빠른지도 모르고 막 뛴다. 처음엔 속도가 나니까 재미있는데 점점 지치고 힘들어지면 "그래서 왜 열심히 뛰고 있었더라." 하는.. 그러다가 서서히 걷고, 서서히 멈추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아마 달리는 게 계속 좋았으면 계속 달렸겠지, 그리고 지쳐도 설렁설렁하는 게 그 자체로도 즐겁지 않았을까. 원래 이렇게 지치면서 사는 건가?
나는 목표지점에 누구보다 빨리 가는 경쟁심이 강했고 제 풀에 못 이겨 누워버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애초에 못할 것 같으면 시작도 않는, 겁 많고 조금은 자만하는 부류이지 않나 싶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게 얼마 안 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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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냥 시간 나면 그냥 쳤다. 뭘 얼마나 엄청난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단 욕심도 아니고 그냥 노래할 때 반주하나 깔고 싶어서 기타 코드를 검색해서 배운다. 아무도 내가 기타를 얼마나 어떻게 무슨 곡을 치는지 모르는데 그게 너무 즐겁다.
재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1년간은 거의 매일 연습했다. 요즘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로 좀 헐거워졌다. 다시 매일 하고 싶다.
악기를 하면서는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게 없으니까 마음이 편하다.
이젠 나에게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하면 숨통이 조여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는 정신상태가 되었다. 경쟁적이지만 도전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현재는 그 경쟁심도 한참 뒤로 물러난 상태다. 이렇게 꿈도 없이 무난한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가끔, 그럼에도 경쟁심이 확 불붙을 때가 있다. 뭔가 그냥 하고, 하고, 해내고 있다가 가끔 내 깜냥을 모르고 밀어붙일 때도 있는데, 그땐 스스로에게 제동을 건다. 열심히 하고 싶은 욕심은 좋은데, 늘 그 열심히가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보상을 주지는 않으니 지쳐서 몸져누울 만큼 열심히 하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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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없다. 그냥 하고 싶은 게 딱 히 없는 사람이다. 스트레스 안 받고 잘 살면 좋겠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좋은 방법을 찾았는데, 하나는 달리기고, 하나는 글쓰기다. 나는 지금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간절함은 마법도 기적도 아니다. 그냥 간절한 마음상태다. 간절함이 이뤄진 분들은 참 운이 좋으세요,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얼마나 위대하든 상관없이 얼마나 노력을 했건 상관없이. 솔직히 부럽다.
이러면 너무 간절함을 원동력으로 한 노력을 비하한 것 같나?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간절함을 포장지로 싸서 마법으로 사기 치는 것 같이 질 나쁜 게 없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한 게 되셔서 좋으시겠어요. 운이 좋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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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간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운 좋은 것 같다. 매사에 열심이지 않아도 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흥미 없어서라 던 지,.. 아무튼간에 쓰다 보니까 간절함에 대한 무게가 묵직한데, 이걸 좀 가볍게 만들어야겠다.
요즘 내가 간절한 건 초콜릿 케이크다. 달콤한 케이크를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