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 - 보이나요?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목포항에서 제주항으로 가는 배를 탔고 첫째 날엔 조천, 둘째 날에는 우도, 셋째 날에는 중문, 넷째 날에는 마라도에 갔었다.
난 여행을 자발적으로 떠날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부모님과 외할머니, 나 넷이서 갈 예정이었다. 외할머니께서 가고 싶지 않다고 결정을 번복하셔서 부모님과 나 셋이서 떠나게 되었다.
나는 여행지에 대한 기대보다도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에 더 기대가 컸다. 할머니가 같이 가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할머니께서 제주도 여행을 거절한 이유를 추측해 보면 1. 거동이 불편하셔서 딸에게 짐이 될까 봐, 그 이유가 가장 컸던 것 같다. 2. 할머니 집에서 머무는 삼촌네 가족이 휴가를 떠날 여유가 없는 터라 여행 가면 남아있는 손주들이 떠오를까 봐, 정도겠다.
여행을 어디로 가는지보다 누구와 같이(혹은 혼자)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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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에서는 와이파이가 없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을 한 권 빌렸다. 여행, 여름 하면 떠오르는 건 추리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십자 저택의 피에로>라는 책이다. 탁 트인 하늘, 수평선, 바다와 같이 끝없는 환경에 나와있으면 갇힌 이야기 구조의 추리소설이 안정감을 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물 한 모금 넘긴다. 사건발생부터 용의자들의 알리바이, 가능성 있는 범행동기를 따져가며 사건의 실마리를 더듬어가는 저택 살인사건의 이야기. 첫 번째 피해자는 저택 난간에서 추락사, 두 번째 피해자와 세 번째 피해자는 저택 지하실에서 상해를 입고 죽었다. 사건의 용의자는 저택의 일가족, 혹은 저택의 사용인들이다. 일면식 없는 제삼자가 누군가를 해친 게 아니라 서로 알고 지내며 이해관계가 얽힌, 가깝고도 먼 누군가가 사건의 피의자라는 점이 어쩐지 으스스해지는 점이다.
아직 다 읽지 않았는데 내가 추리하는 범인은 가오리와 나가시마 씨다. 가오리를 도와서 나가시마가 범행을 저질렀을 것 같다. 책을 들춰보니 164p까지 읽었다. 380p까지 있는 책이니 스포일러는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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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에서 하선하니 시간이 1시 30분이었다.
원래는 성게비빔밥을 먹으려고 했으나 배가 고프기도 하고 제주 시내는 차가 밀려서 제주 시내에 있는 고사리육개장을 먹으러 갔다. 1시간 정도 기다려서 먹은 고사리육개장은 참 맛있었다. 낯설지만 부드러운 식감이 아직도 생각난다. 뜨겁게 하려면 삼킬 때 목구멍이 데일정도로 뜨겁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마치 매생이 국처럼 - 온도조절을 기가 막히게 잘하셔서 뜨끈하게 후루룩 넘길 정도였다. 녹두 빈대떡도 주문해서 먹었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추석 때 직접 치대서 굽는 동그랑땡과 식감이 비슷했다.
이후에 동문재래시장에서 오메기떡과 달달한 디저트용 빵을 사서 조천에 위치한 숙소로 갔다. 할머니를 생각해서 방이 있는 펜션으로 예약했는데, 어쩌다 보니 방이 있는 호화로운 가족여행이 되어버렸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우도 땅콩 막걸리를 사서 오메기떡과 한라봉 크림빵을 곁들여 단출히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한라봉 크림빵은 상큼하고 내 입맛에는 엄청 달았는데, 엄마 입맛엔 훌륭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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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가기 전에 삼양 검은 모래 해변을 들렀다.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았고,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바다에 풍덩 빠져 본 지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집에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물이 있으면 빠져들고 봤는데 중학생 이후로는 웬만하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mt를 갔을 땐 발조차 담그지도 않았다. 마르는 과정이 찝찝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두 가지는 하고 오자는 게 있었다. 첫 번째는 오메기떡과 땅콩아이스크림, 땅콩막걸리를 먹고 오기, 두 번째는 바닷물에 몸 담그고 오기. 캐리어에 래시가드를 챙겼다.
해변의 검은 모래는 입자가 고왔다. 맨발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작은 입자였다. 다만 햇빛에 달궈져 있어서 뜨끈뜨끈했다. 한 자리에 쭉 누워서 모래찜질을 하면 몸이 삭 풀릴 것 같은, 노곤함을 주는 따뜻함이었다. 부모님은 그 뜨끈함을 즐기셨고, 나는 바다 앞으로 갔다. 샌들을 벗어서 손에 쥐고 물에 젖어 단단한 모래 위를 걸었다. 멀리서 밀려온 파도가 발등을 쓸었다. 밀려들어오고, 쓸려나가고, 밀려오고, 쓸려가고... 파도가 오고 가는 것만 봐도 1시간은 족히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먼바다서부터 반짝이는 윤슬, 파도의 포말, 바람에 의해 변화하는 바다의 표면. 의자를 가져와서 발을 담근 채로 한참을 앉아있고 싶었다.
바닷물은 차가웠다. 모래는 햇빛에 구워지고 있는데 물은 참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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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조천에서 우도로 가는 차를 운전했다. 나는 자차가 없다. 그래서 배에 실어온 아빠 차를 내가 몰게 되었는데, 살면서 내가 차를 가지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지고, 선택지가 다양해진다는 걸 느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이 딸 금명에게 자전거를 꼭 배우게 하고 싶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본인은 아궁이 앞 부엌데기로 쪼그려 앉아있으면서.
우도에 입도하려면 터미널에 들어가서 승선신고서 두 장을 작성한 뒤 인당 21000원어치 왕복표를 구매해야 한다. 30분마다 배가 있기 때문에 조급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인 특성상 탁, 탁 시간의 어귀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엄마와 나는 터미널 안에서 다급하게 신고서를 작성, 표를 구입해서 나왔다.
8월 1일의 제주도 기온은 32도에 육박했다. 차가 없이 뚜벅이 여행을 다녔으면 땀을 몇 배로 흘렸을지. 차를 가지고 가면 차를 탄 상태에서 우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시원하게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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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땅콩아이스크림을 전주비빔밥만큼이나 많이 들었고, 우도만 하면 자연스레 침이 고인다. 웃기게도 차를 타고 우도에 내리자마자 눈에 띈 카페 앞엔 '우도 땅콩아이스크림' 간판이 놓여있었다. 우리는 아직 밥을 먹지 않은 상태라서 지나갔지만 만일 더위를 온몸으로 느낀 채 우도에 왔다면 곧바로 그 카페에 들어갔을 것이다.
우도를 시계바퀴 방향으로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게 그날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 많아서 반나절 동안 반 바퀴를 돌고 나오게 되었다.
우선 섬을 1/4바퀴 정도 돌았을 무렵, 우리는 식욕을 더 참기 어려워졌다. 점심은 보말칼국수와 문어, 소라 숙회를 먹었다.
칼국수를 다 먹으면 김가루를 잔뜩 부린 볶음밥을 볶아주신다. 칼국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보말칼국수는 내가 먹어본 칼국수 중에 가장 내 취향이었다. 적당히 칼칼하고 시원한, 당근과 부추, 보말이 적당히 들어간 눅진하고 걸쭉한 국물. 볶음밥도 정말 맛있어서 아직까지도 그 맛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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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앞에는 잔잔하게 파도치는 바다가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 정말로 쏴아아... 싸아아아... 한다.-, 검은 현무암, 파란 야생화, 살갗이 타는 뜨거운 햇빛. 바다에 발을 담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는 길 앞에 고여있는 물 웅덩이를 밟고 미끄러질 뻔했다. 울퉁불퉁한 현무암 위에 앉아 파도에 발을 담갔다.
앞서 본 삼양 검은 모래 해변도 좋았는데, 식당 앞바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조용해서 좋았다.
바위 위에 소라고둥이 있었다. 귀에 소라고둥을 대보니 바닷소리가 들렸다. 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다시 그 자리에 뒀다. 희한하게 집에 가져오면 소라고둥이 바닷소리를 잃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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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길을 가다가 반건조 오징어를 판매하는 상인을 발견했다.
맥반석에 직접 오징어를 구워주셨다. 30도가 넘어가는 더위에도 가게는 반 야외식 노포라 에어컨 없이 운영하고 계셨다. 오징어 한 마리에 15000원. 청양고추와 마요네즈를 넣은 간장소스도 같이 주셨다. 이제까지 육지에서 먹어 본 건조오징어의 비린 냄새가 하나도 없었다. 살이 도톰하니 부드러웠다. 나는 이 더운 날씨에 무슨 오징어야, 생각했었는데 야외 좌석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콜라 한잔과 오징어를 뜯고 있자니 평화롭고 좋았다, 물론 땀은 났지만.
오징어가 마음에 든 엄마는 반건조오징어 구운 거, 안 구운 거 하나씩 더 구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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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발길은 비양도로 향했다. 이곳은 아빠가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갔다. 캠핑인의 성지라고 알고 있는데, 한낮이라서 그런지 캠핑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일출 소원성취 의자에 가서 소원을 빌었다. 셋째 날에 간 산방산 보문사도 그렇고 이번 여행에서는 소원 빌거나 기도할 기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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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어떤 소원을 비는지 궁금해진다. 아마 다 비슷할 것 같긴 하다. 대부분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하는 일 다 잘 되게 해 주세요,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서로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나는 빠른 소원을 빌 수 있는 문장을 만들었고, 묵념 및 절을 할 때 뇌에 빠르게 이 문장을 스친다. "세계 평화, 러브 앤 피스 부탁합니다."
어렸을 땐 더욱 디테일했던 것 같다. 우선 수신자를 먼저 설정했다, 마치 편지 쓰듯이.
"하나님께/부처님께/그 외... **님, 제가 바르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소원이 있는데요, 우리 가족이 항상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 주세요. 제 주변 친구들이랑 선생님들, 이웃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좀 더 바라는 게 있는데 제가 하는 것보다 더 결과가 잘 나오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좀 더 노력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나님인 경우 - 아멘/ -부처님인 경우 - 안녕히 계세요."
마지막 '안녕히 계세요'는 예의범절을 갖춘 인간임을 호소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제까지의 기도라고 해야 하나, 소원은 미미하게나마, 아니, 어쩌면 강력하게 효과를 봤다고 보기에 지금까지도 관광지에 '소원'이란 글자만 보면 소원을 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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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이 여행할 계획이라면 우도 옆에 갈 수 있는 비양도를 추천드린다.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가려면 신발을 벗고 우둘투둘한 길을 걸어야 하는데, 만일 신발을 버리기 싫은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등에 업혀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커플들이 썸 타는,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등에 업고 등대로 걸어가는 모습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러브 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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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양도에서 에너지를 쏟은 아빠와 엄마는 뒷좌석에서 주무시고,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과 우도 땅콩크림라테, 레모네이드, 땅콩 바스크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생각보다 땅콩 아이스크림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물론 맛있긴 한데, 땅콩크림라테가 더 맛있었다. 한창 휴가철인지라 사람들이 줄 서서 좌석이 나길 기다리고 있어서 먹고 바로 나왔다. 더운 날 달콤한 게 들어가니 성격이 좀 느긋하니 고와지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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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뭔가 지치고 피곤해져서 곧바로 우도항으로 향했다.
내가 상상한 우도의 즐길거리를 다 누렸다고 생각해서 우도를 떠나려 했는데, 아빠는 왜 남은 반바퀴를 다 돌지 않았느냐고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아쉬워하기엔 다시 제주도에 돌아와서 그 근방에 볼거리가 많았다. 성산일출봉이 그 예다.
성산일출봉은 무료로 볼 수 있는 해안코스가 있고, 인당 5000원에 성산일출봉 꼭대기를 오르는 코스가 있다. 물론 오후 두 시, 8월 한 여름 한낮에 오르기엔 조금 무리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양산을 손에 꼭 쥐고 꼭대기에 가보기로 했다.
승마체험이 있는 완만한 언덕길에는 나무 한그루 없이 땡볕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계단이 있는 진입로에 다다르면, 나무가 그늘을 드리워주어 선선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이라 그런지 올라가는 계단도 모난 곳, 파인 곳 하나 없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특히 바위 사이사이에 놓여있는 식생이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처럼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정상까지 가는 데에 대략 천 개의 계단이 있다고 하는데, 오르는데 30분이 걸렸다.
올라가서 본 성산 일출봉의 윗면은 보송보송한 녹차케이크 같았다. 초록빛 나무가 바다 쪽에 가까울수록 짙은 색을 띠었고, 그늘이 지는 쪽은 옅은 초록색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 효과가 되어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했는데, 내려오는 길에 종아리 근육이 달달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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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은 엄마가 갈치구이를 드시고 싶어 해서 숙소를 옮기는 김에 갈치구이 맛집을 찾아뒀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전에는 전날 들리고 싶었던 비자림을 갔다.
해가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고 해도, 아무리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숲길이라고 해도 덥긴 더웠다. 우리 가족이 방문한 날 이전에는 비도 한참 오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는 땅이 촉촉해지면 숲 냄새가 더 나는데 아쉽게도 흙먼지가 날릴 뿐이었다. 그럼에도 걷다 보면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나무에서 시원한 풀냄새가 났다.
숲 속 해설사 분과 함께 비자림 반을 올라가면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 비자나무의 열매에 생채기를 내면 상큼한 향이 난다는 것, 비자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것, 1년에 1cm 정도 아주 느리게 자란다는 것, 새로 난 가지에서 열매가 열린다는 것, 이니스프리에서 비자열매 향을 사용한 제품이 있다는 것, 곶자왈이 빗물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서 제주도는 물난리가 덜 난다는 사실, 천남성이라는 독성 있는 식물이 과거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는 것, 사약할 때 '사'는 '죽을 사'가 아니라 '하사할 사'라는 것, 제주도는 상하수도 물을 어디서 얻어 쓰는지 등등... 사실상 어린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흥미로워했던 것 같다. 비자나무 열매의 향이 너무 좋아서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줍고 다니느라 1시간이면 다 본다는 코스를 엄마와 나는 2시간가량 걸었다.
벼락 맞은 비자나무도 보고, 1000년 된 비자나무도 보고, 숲에서는 온갖 새소리와 생물들 소리가 났다. 숲 속 소리를 듣고 그 환경 안에 있을 땐 잘 몰랐는데, 찍어둔 동영상을 다시 재생하고 나니 온갖 새소리, 숲소리, 바람소리가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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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시간이 걸려 한라산 드라이브 코스로 제주 서남부인 서귀포, 중문 쪽에 도착했다. 갈치구이, 갈치조림 한 상을 배불리 먹고 산방산에 들렀다.
산방산 보문사에만 가도 뻥 뚫린 바다 수평선이 보인다길래 올라가서 한참 구경하고 싶었으나... 날씨가 매우 뜨거운 날이었다. 양산을 써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나는 날씨였다. 그늘 아래 있어도 땀이 나는 날씨임에도 입장료를 내고 불상이 있는 곳까지 조금 더 올라가 보았다.
경치는 참 멋있었다. 만일 불교신자라면, 올라가는 것을 추천드린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분이라면 굳이 올라가지 말고 그냥 보문사에서 주변 풍경을 봐도 충분한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보문사 아래에는 여러 카페가 있는데, 그중 레이지 박스라는 카페에 갔다. 그곳에서 당근 주스, 한라봉 주스, 청귤에이드, 당근케이크를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그리고 사계해안을 들렀다. 부모님은 좀처럼 차에 내릴 생각을 않으시고, 나 혼자 가서 기념사진 몇 장 찍고 도로 들어왔다. 그럴 만한 날씨였다. 하지만 쨍쨍한 날씨만큼 사진은 색감이 생생하게 잘 담겼다는 장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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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우리에겐 더 이상 계획은 없었다. 있어봤자 근처의 유명한 음식점, 카페, 관광지만을 찾아봤을 뿐이었다. 전 날 갈치를 거나하게 먹었던 터라 새벽에 일어나 사계해안 주변을 다 같이 뛰자고 계획했던 터라 오전 5시 반에 일어나서 해변 주위를 거닐었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온갖 해초, 바다의 짠내가 올라왔다. 이전에 성산일출봉을 올라가서 다리에 피로도 있었던 터라 느슨히 걸었다. 걷다 보니 올레길 10번 코스더라. 아침에 본 사계해안에는 쓰레기가 많았다. 플라스틱, 비닐봉지, 유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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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숙소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다시 조금 더 잤다. 오전 10시쯤 되어서, 아빠께서 마라도... 를 가자는 제안을 하셨다. 마라도를 갈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가자는 대로 따라가 봤다.
아빠는 참 운이 좋으셨다. 왜냐하면 마라도에 입도하고 싶어도 날씨가 안 좋으면 배가 안 뜬다. 즉흥적으로 '가야겠다!'라고 했는데 마침 갈 수 있는 배편이 적절한 시간에 남아있는 건 행운이었다. 미리 알아보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지난 5일간 날씨 때문에 배가 뜨지 않았는데, 마침 그날이 배가 뜨는 날이었다. 또, 이 배(오전 11시 50분 출항)가 그날의 마지막 배였다.
배를 타고 가는 중에 어린아이가 토했다. 파고가 4m였다고 하는데, 다행히 뱃멀미를 안 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마라도. 나는 마라도와 가파도를 알고 있었는데 무한도전 yes or no 특집에서 마라도 짜장면을 먹으러 갔던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20분간 배를 타면 이곳이 망망대해인가? 싶을 때 한 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섬은 가파도이고, 10분 더 지나가면 마라도가 보인다. 마라도에 도착하면 사방이 바다라서 이곳에 인간들이 보이는 만큼이 인간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마라도에 입도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바람을 막아주는 간단한 피난공간이다. 더 걸어가면 공공화장실이 보이고, 더 걸어가면 상점이 나온다. 더 걸어가면 이곳이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비석이 있고, 더 걸어가면 성당이 나온다. 더 걸어가면 해양수산부 건물이 나오고, 세계의 여러 등대 모형이 있는 광장이 나온다. 더 걸어가면 다시 항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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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짜장면이 아니고 성당이었다. 조용한 성당 내부에서 기도했다. 엄마 아빠는 과거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언니도 세례를 받았는데, 나는 안 받았다. 성금은 현금 있는 내가 냈다.
성당 내부는 고요했고, 소담하고, 빛이 들어오는데 신성한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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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성당을 나오자마자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너무나 마음이 편해졌던 것인지, 성금의 효과였던 것인지.. 평소에 달리기를 연습했던 것이 큰 효과를 보아 중간에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다. 곧장 초장 입구에서 봐뒀던 공중화장실로 달려가 일을 치렀다. 이제까지 달렸던 기록 중에 가장 최고 기록이었을 것 같은데, 아쉽게 되었다. 기록을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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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날씨는 참 흐렸는데, 마라도는 쨍쨍했다. 잠시라도 쨍쨍한 곳에 있다가 오니 기분이 맑게 갰다.
다시 제주도에 와서 흑돼지를 먹으러 갔다. 참고로 마라도는 왕복 배편을 한 번에 사야 한다. 마라도에는 매표소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머물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대략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를 머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마라도에서 숙박할 계획을 잡으셔야 한다. 다시 돌아갈 때 항구 쪽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시는 일행분들이 계셨다. 마라도 바다가 청량하고 깨끗해 보여서 나도 같이 바다에 들어가서 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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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다섯째 날은 온통 이동만 했던 날이다.
배를 타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특히 가장 저렴한 표는 일찍 배에 탈수록 편안한 자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사람이 누워서 갈 것을 계산한 게 아니라 앉아 갈 것을 계산하여 한 방에 몇 명씩 승선할 것인지를 계산해 둔 곳이다.
몇몇 사람들이 자신의 영역을 돗자리나 담요로 표시해 두는 바람에 배 위의 영역은 충분치 않았다. 그럴 때 혼자 오신 분들이나 젊은 분들은 구석구석 배회하며 빈 좌석이 있는 곳을 돌아다니는 게 더 마음 편할 것이다. 자리가 꽉 차고 나서도 그 호실에 예약명단이 작성된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지만, 이미 좌석은 만석이다. 눈치도 보이고 난감했다. 타이타닉 맨 끝등급 좌석을 탄 경험 같았다. 특히 식사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는데, 비빔밥은 솔드 아웃, 남은 건 생선가스와 제육덮밥 등이었다. 자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매의 눈으로 서성이는 사람들, 맥주 한잔 주문해 고요히 앉아있는 승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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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지만 찜질방처럼 사람들이 여기저기 누워서 자고 있다. 내가 늦게 온 편이 아니지만 벌써 사람들은 바닥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돗자리나 담요를 펴두고 자리하고 있다. 조금 늦게 온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다. 8평 남짓한 이 방에는 과연 몇 명이 적정인원인가. 벽에 붙어있는 구명조끼 개수로 미루어보아 12+12+12+13 = 49명이고, 놓인 관물대 개수로 보아 16명이다. 하지만 공간의 쾌적성이나 개인공간을 생각해 보면 성인 10명에서 최대 12명 정도가 적정해 보인다. 자리 뺏기의 비극은 늘 자리가 부족한 데에서 온다.
그곳에서 당장 쉴 생각은 없지만 나중을 생각해 관물대 아래에 자신의 핸드백을 놓아둔 사람, 담요를 펼쳐둔 사람,.. 정작 사람들이 누워있는 건 거의 보지 못했다. 누군가의 짐을 만지기 꺼려지는 사람들은 남은 공간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사람들 정말 이기적이다.“, ”그게 사람 본성이야. 우리도 일찍 와서 자리 있었으면 그렇게 해 놨을껄?“, “영역다툼 장난 아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여덟 시에 출항해 한 시에 제주에 도착하는 배. 선착순으로 주차하고 선착순으로 자리를 선점하고, 선착순으로 밥을 먹는다. 이미 식당칸과 카페의 좌석은 만석이다. 7월 마지막날의 볕은 매우 뜨겁다. 야외좌석은 딱 한 자리 남아있었다. 흡연구역과 화장실과 근접해 있어서 남아있던 것 같다. 그것도 감지덕지라며, 우거지해장국과 열무비빔밥을 먹었다.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선내 복도에서 현대, 한국판 타이타닉을 만들어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잭도 있고, 잭도 있고, 잭도 있고…
밥을 먹고 다시 단체방에 가보니 많이 다녀본 사람들이 자리에 누워있다.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나 역시도 욕심낸다고 펼쳐놨던 자리가 이미 누군가에게 선점되어 있었다. 구석에 있는 짐을 들고 더 구석으로 가서 쭈그려 앉아있었다. 웬 거구의 장정 셋이 입구에 주르륵 누워있어 더 꽉 차보였다.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금 지나고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둘을 포함한 4인가족이 이 방에 찾아왔다. 아마 이 방으로 배정을 받았던 것 같다. 역시나 제철 맞은 갈치처럼, 알을 잔뜩 밴 생선처럼 성인이 꽉 차게 누워있는 이 바닥을 보고 난감해하는 것이다. 오지랖을 발휘해 ‘난감하죠?’라고 할 뻔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저 당신이 느끼는 그 느낌, 나 역시도 느끼고 있다고 눈빛으로 전할 뿐이다.. 그 초등학생 가족도 선내 가장 모서리 - 면과 면이 만나는 - 에 쪼그려 앉았다. “아빠, 예약 잘못한 거 아냐?”, ”우리, 자리가 없어! “라는 그 순수한 외침 앞에 ‘세상은 잔혹하지만 아름다워,’라고 속으로 드립을 쳤다. 물론 나는 헤드셋을 쓰고 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초등학생의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게 맞나 싶어서 문간에서 예약번호에 쓰여있는 방 호수를 여러 차례 확인했다.
14명가량의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옮겨준다면 자리가 조금 넉넉하게 났겠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절이라도 한 듯이. 그렇다고 그들을 원망하기엔 좀 애매하다. 하지만 역시 약간은 얄밉다고 말하기엔 충분하다.
곯아떨어지듯 문간에 대자로 누워있던 장정 셋은 초등학생 어머니와 어린이의 대화 속에 눈을 떴다. 스르륵 일어나더니 밖으로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니, 그들은 원래 이 방의 승객이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궁금해하면 무엇하나. 그들은 또 다른 빈자리 넓은 좌석을 찾아 떠났을지, 아니면 바다의 낭만을 즐기러 갑판으로 갔던지, 그것도 아니면 먹을 것을 구하러 카페에 갔던지, 또 그것도 아니면 1시간에 2만 원 하는 선내 노래방을 즐기러 갔던지 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좌석에 앉고 싶었다면 일찍 와서 자신의 자리를 쟁취했어야지, 혹은 돈을 더 내고 4인 가족실을 구매했어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것이 아니라면 불평조차 떳떳하게 할 수 없다는 점이 서늘했다. [AM 09:54]
***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밤 10시였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이 호텔처럼 느껴졌다. 고급스럽지는 않아도 청결하고 환한 공동현관, 익숙한 현관등 깜박거림, 조도, 집 냄새, 정돈된 환경...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부터 한 다음 짐을 빠르게 정리한 뒤 곧장 침대에서 까무룩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운동하러 집 앞을 나섰을 때, 평소에 본체만체 지나다니던 집 앞 풍경이 새롭게 보이고 예뻤다. 나무에 진분홍색 꽃, 흰 꽃이 가장 눈에 띄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색 잎사귀. 나의 경우는 이래서 여행을 다녀와야 했나 보다. 여행 자체가 즐겁다기보다는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고 얼마나 편안하고 익숙한지, 그래서 평소에 얼마나 편안히 살고 있는 건지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참고로 머물렀던 숙소들은 3인 1박에 12만 원-13만 원 대의 펜션이었다. 첫 번째 펜션은 새로 지어졌고, 방 2개짜리 넓은 숙소였다. 새 건물인 만큼 가구나 집기가 사용감이 적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특유의 새 집 냄새가 났다. 소위 독성 있는 냄새였다. 두 번째 펜션은 조금 오래된 펜션이었다. 냄새 같은 건 없었고, 마루가 오래되어 보였지만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몇몇 수건에서 오랫동안 습하게 둔 뒤 빨래한 눅눅한 냄새가 났다. 역시 모든 건 적응의 문제인 것 같다. 어차피 이곳에 이틀씩만 머물다 떠날 것이라 불편한 게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이진 않았다. 막상 집에 가니 불편한 게 하나도 없어서 지난 숙소가 얼마나 새로운 환경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가끔 일정한 환경에서 오래 살고 있으면 삶이 반복적, 관습적, 기계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대나무 마디를 만드는 것처럼 여행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 감사한 줄도 모르고 무료한 일상을 살고 있을 때 새로운 환경을 찾아 여행한다면 좋은 돌파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