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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수정의 연속이다.

Drowning - 우즈

by 이오십

새로 생긴 도서관에 가려고 아침 여덟 시에 나와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40분 동안 가야 하는 거리임에도 그 도서관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5분 동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오늘이 월요일임을 깨달았다. 월요일은 위험한 날이다. 도서관마다 휴관일이 다른데 대개는 월요일 휴관일인 경우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싸한 기운이 나를 스쳐가고, 지도 어플에 뜬 상세정보를 보니 오늘은 휴관일이 맞았다.



순발력을 발휘하여 다음 정거장에서 하차했다. 나에게는 플랜 B 따위는 없었지만 즉흥적으로 플랜 B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30분 동안 어르신들이 배추무더기를 정리하는 여러 상회를 지나 영화관에 도착했다. 마침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F1 더 무비. 4dX를 조조로 보면 13000원이었다. 팝콘은 생략하고 도서관 앞 공원 벤치에서 먹으려고 가져간 블루베리와 포도를 먹었다. 입안이 상쾌해졌다. 목이 말랐는데 영화관 내부 자판기에서 물을 사려면 3500원이어서 참고 청과류를 먹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무리 복숭아 맛이 나는 물이라고 해도 3500원은 비싸다.


4dX관을 체험한 건 처음이었다. 좌석이 앞뒤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기본이요, 플래시가 번쩍이기도 하고 미스트(안개), 눈(재)이 내리기도 하고, 가장 신기했던 건 향이 나는 것이었다. 향기가 꽤 달콤하고 좋아서 타이어가 갈리는 장면에서 나는 향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향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일의 달콤한 향을 닮아서 혹시 레이싱선수가 뿌린 향수를 표현한 건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좌석이 너무나 편안하고 흔들거려서 나도 모르게 잠깐 잠들었다. 덜컹이는 기차에서 스르륵 잠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지 않을까,


*


오후에는 번개 모임을 가졌다. 늘 보는 나의 친구들이다. 내 인간관계는 매우 폭이 좁은 편이다. 그래서 내가 친구를 만난다고 하면 이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원래 네 명이서 자주 만나는데 다른 한 명은 타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는지라 세 명이서 모였다.


나와 다른 친구 한 명은 함께 저녁으로 서브웨이를 먹었다. 친구는 세트를 시켰고 나는 단품을 시켰다. 친구는 콜라를 잘 마시지 않는다고, 내 것을 같이 마시자고 해줘서 같이 잘 마셨다. 내심 많이 고마웠다. 그리고 이어서 저기 너머에 보이는 코인노래방에 갔다. 10곡에 3000원. 친구가 또 돈을 먼저 냈다. 카카오톡으로 친구에게 송금을 했으나 아직까지 받지 않았다.


하여튼 간, 나도 많이 변했다. 친한 친구들 앞에서도 노래 부르는 게 창피해서 노래를 선뜻 부르지 못했었는데, 이 친구 앞에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가리지도 않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찾아 바로 첫 곡을 불렀다.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를 불렀는데, 아마 아이유가 리메이크를 한 곡으로 다시 노래방에서 인기차트 상단에 올랐나 보다. 아, 아니다. 이 노래는 원래부터 인기차트에 늘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상위랭크에 있진 않았다는 말이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도 나는 늘 생각이 많았다.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 불러본 노래, 친구도 아는 노래, 뭔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노래 등… 을 생각해서 고르느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혼자서 노래도 많이 부르고 다녔기 때문에(?), 그리고 친구가 워낙에 나를 편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내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다 부르고 나올 수 있었다. 감사하다. 특히 레드벨벳의 psycho라는 곡을 참 좋아해서 많이 들었는데, 음역대가 높아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삑사리 날까, 우스워보일까 해서 부르지 않던 노래였다. 하지만 오늘은 친구와 같이 불렀고, 재미있었다. 삑사리 나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불렀는데 나의 상상보다는 덜 추했던 것 같다.

친구는 노래를 잘 부르더라. 평소에도 노래연습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안 물어봤다. 왠지 할 것 같은데 한다고 대답하기 부끄러울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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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참 예상과 다른 하루였다. MBTI검사를 하면 늘 바뀌지 않는 부분이 P(즉흥형?)이다. 나는 도서관이 휴관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잠깐 스트레스를 받았으나 그럼에도 새로운 동네를 걸으면서 그 시간을 즐겼다. 뭐 어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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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본능의 질주,라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본다. 요즘 관심사가 F1에 있다. 막스 베르스타펜, 샤를 르클레르, 루이스 해밀턴 등 선수들이 본새 나서 자꾸 보게 된다. 실제로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모나코 그랑프리를 보고 싶다. 모나코가 프랑스 니스 옆에 붙어있는 여의도 면적보다 작은 나라라는 걸 처음 알았다. 모나코, 모로코, 이름이 헷갈리는데 둘은 다른 나라다. 모나코는 유럽에 붙어있고 모로코는 아프리카에 붙어있다, 아무튼. 왜 모나코 그랑프리를 보고 싶냐면 모나코라는 도시 곳곳을 경기장으로 쓰기 때문에 풍경이 아름답고 더 영화 같은 연출이 되어 그렇다. 007 영화에서 자동차 추격신을 실제로 본다면 F1 레이싱 속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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