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You Back - Jackson 5
투썸플레이스라는 카페가 있다. 거기서는 ‘아이스박스’라는 네모난 조각케이크 메뉴가 있고 한 조각에 6800원 정도 한다. 각 시즌마다 변주를 줘서 다양한 아이스박스가 있는데, 지금 보이는 것만 해도 복숭아 아이스박스, 샤인머스캣 아이스박스, 망고 아이스박스, 말차 아이스박스다. 이외에도 기존에 우리가 익숙한 형태의 조각케이크가 많다.
말차 아이스박스가 엄~청 맛있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별로였고, 망고 아이스박스가 끌려서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누군가에겐 엄청 맛있는 음식이 나에겐 별로였다는 게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 타인의 평가를 내재화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껴서 적는다. 어떻게 보면 편견일 수도 있겠고… 경험의 멸종(크리스틴 로젠)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나의 경우는 책이 경험의 확장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도피처였다. 세상에 직접 나서서 경험해 보기엔 너무 실망스럽기도 하고 힘들 것 같다고 짐작하고 늘 책을 들고 다녔다. 머리를 어둑한 구석에 밀어 넣고 눈 감은채 ‘나 찾아봐!’ 하는 꼬마와 다를 바가 뭐였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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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사람을 의심하는 건 익숙하다. 다가오는 사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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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아름답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을 보고 든 생각,
- 어떻게 이렇게까지 믿을 수 있는 건가? (좀 무섭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 가는데, 믿으셔야죠,라는 말을 듣고 한 생각.
- 천국,… 은 일상에서 익숙한 단어가 아니라, 왠지 어린아이가 쓰는 천진난만한 단어라서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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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을 다니다 보면 ‘도를 믿습니까’ 사람들에게 자주 선택받는 편이다. 간혹 신천지나 사이비 종교도 말을 건다. 이젠 누가 ‘저기..’라고 말만 걸어도 그 사람이 어느 쪽인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다.
말을 걸고 다짜고짜 ‘대학생이에요? 직장인이에요?’, ‘몇 살이요?’,라는 둥의 개인정보를 묻는 사람은 99% 사이비 종교인.
‘저기, 잠시 시간 내줄 수 있나요’, ‘인상이 너무 좋은데… ’ 혹은 ‘집안에 우환이 있군요.‘, 그것도 아니면 ‘길 좀 물읍시다. … 근데 여기 학생이세요?’ 이런저런 용례 역시 도를 믿습니까 쪽이다. 더 예전에는 대학생들을 데리고 무료 심리검사를 해준다고, 길거리에서 낚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심을 풀고 살기에는 눈만 뜨면 코 베이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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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 제가 좀 불행해 보이나요?
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말하시는데 나는 굳이 질문할 필요도 없었음을 느꼈다. 무표정하게 운동장을 바라보며 2인용 그네를 혼자 타고 있는 성인이 불행해 보일 확률은 참 높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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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나에게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다. 손에 쥐고 있는 책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었다. 하지만 말하기 부끄럽다고 얼버무리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분은 쉽게 물러나지 않고 ‘혹시 교회 다니세요?‘를 시전 하셨다. 이 질문도 많이 들어봤다. 어쨌거나 이 대화는 그분이 나에게 말을 걺으로써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쪽이 나에게 물으면 나는 그쪽에게 대답해줘야 하는 형식이 되어버린다.
- 교회 안 다녀요.
- 살면서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어요?
- 아뇨, 초등학생 때 친구 따라서 잠깐 다녔어요.
- 아, 그렇구나.
그분은 나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무교인들에게는 아무 감흥도 없는 문장일 테니 번역하자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해서 예수를 보냈고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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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하면 나는 진시황의 불로장생이 떠올라서 그것 참… 불경한 소리가 나오게 된다. 비종교인과 종교인간의 대화에 간극이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포한 의미를 너무 다르게 알고 있다. 아마 교회에 자꾸 오라는 이유도 그 단어에 담긴 함의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에 감명받고, 위로받고, 공감하면 신자는 늘어가고, 신자가 많아지면 여러모로(세속적으로든, 순수하게든.)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비종교인으로써는 그 자체가 좀 거부감이 든다. 어떻게 보면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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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나에게 개인정보를 캐묻지 않았고, 뭔가 열정적으로 포교하는 부담스러운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껴서 조금 더 이야기를 들었다.
- 믿음이 안 생기더라고요.
- 맞아요. 저도 믿음이 생기는데 오래 걸렸어요. 고등학생 때 원하는 대학 가는 것도 어렵다는 걸 느끼고 힘들었고, 대학 가서 간호학과에서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때 예수님을 믿어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식의 말이 이어졌다.)
그분의 얼굴을 봤을 때 그냥 아주머니의 얼굴이었다. 뭔가 가식적인 표정도 아니었고, 말투도 그냥 그분이 쓰시는 말투인데 그리 거부감 느껴지는 말투도 아니었다. 연청바지에 아이보리색 얇은 니트 반팔을 입고 가슴정도 내려오는 적갈색 머리카락은 스크런치로 묶고 있었다. 한 손에는 양산, 한쪽 어깨에는 에코백을 들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유신론자에 대한 수많은 반박이 떠올랐지만 싸우자고 하는 대화가 아니기에 이왕 궁금했던 지점을 물어보도록 하기로 했다. 솔직한 질문을 한다고 해서 화낼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 어떻게 믿게 되셨어요?
혹시 또 다른 사이비 종교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침을 삼켰다. 하지만 생각보다 평범한 내용의 문답이 이어졌다.
- 고등학생 때 너무 3년간 힘들고, 막다른 길에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병원에 갔는데 신경쇠약… 살아오면서 힘든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가장 많이 의지가 되었던 게 예수님… 대학교 가서 형제자매님들과 교류하면서… 지금은 병원에서 일하는데 조직생활도, 인간관계도 어려울 때가…. 예수님 없었으면 그 시기를 어떻게 넘겼을지….
- 힘들어져야 믿어지게 되는 건가요?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본인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내용으로 서서히 믿음에 익숙해져 갔다는 걸 말하셨다. 말씀하는 걸 듣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그분도 사이비로 참 많이 오해받고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하고 싶은 마음에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하겠으나, 아마 열에 여덟은 그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열에 하나는 이야기를 듣지만 믿지는 않을 것이고, 남은 하나는 어쩌다 보니, 살다 보니 종교인이 되는 경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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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낯선 사람과 대화해 본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물론 그게 종교인의 종교 권유 대화였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그 종교가 사이비이건, 아니건간에 길에서 말이 걸어지면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관심 없습니다. “ 정도로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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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대방과 대화할 때 의심을 감추지 못해서 대화를 적극적으로 안 한지 꽤 오래됐다.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조금은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별로 관심도 없는 상대와 관계유지를 위한 대화라니. 한 마디로 나는 대체로 심드렁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다.(이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 속하는 말이라서 웃긴 말인데,
나는 책에서 이런 글을 봤다.
“사회학에서는 우리가 이름 정도 알고 지내는 사람이 대체로 약 300명이라고 추정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대화 한 번 나누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아는 300명과 가까워질 수 있다. 와이즈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악수를 두 번 나누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회 9만 개를 얻을 수 있다. 와이즈먼은 외향적인 사람들, 낯선 이들과 수다를 떨고 자주 미소 짓고, 개방적인 몸짓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행운의 네트워크’를 엄청나게 확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뉴필로소퍼 코리아, 어차피 어쩔 수 없는 운이라면, 유전자 운명론을 말하기 전에, 안토니아 케이스, 24p
나는 얼마나 많은 기회 앞에서 손수 문 닫고 다녔나…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그 상대방이 종교인이든, 남자건, 이성애자던, 동성애자던, 부자건, 사회부적응자이건,…
아무튼 간에 자주 미소 짓고 먼저 말을 걸고 인사하는 것을 습관화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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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스도쿠 퍼즐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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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도 믿음에 대한 부분이 있다.
“무엇이 유달리 그렇습니까?”
“제가 고통스러운 건…. 불신 때문입니다…”
…
“저는 눈을 감고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다들 믿고 있다면, 이런 믿음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을까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처음에는 자연의 위협적인 현상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겨났고, 고로 이런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평생 동안 믿음을 갖고 살다가 죽었는데 갑자기 아무것도 없다면, 제가 읽은 어느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덤 위에는 그저 잔디만 무성할 뿐’이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끔찍해요! 무엇으로, 무엇으로 믿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어린아이였을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믿었는데…. ….”
…
“사랑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그럴 수 있습니다. 부인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실천적으로, 끊임없이 사랑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사랑을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하느님의 존재도, 부인 영혼의 불멸도 확신할 수 있게 될 겁니다. ….”
…
“인류를 사랑하긴 하지만 스스로에게 놀라곤 한다고 말하더군요. 인류 전체를 더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인 사람들, 즉 사람들 개개인은 점점 덜 사랑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몽상 속에서는 인류에 대한 열정적인 봉사를 생각하기에 이르고 갑자기 어떤 식으로든 요구가 있을 시엔 어쩌면 정말로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 행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를 하게 되는 일이 드물지 않지만, 정작 고작 이틀도 누구와 한 방에서 지낼 수가 없다, 이건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하고 마라더군요. ….”
…
“무엇보다도, 거짓을, 어떤 것이든 거짓을 피하고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을 피하십시오. 자신의 거짓을 관찰하고 매 시간, 매 순간 그것을 들여다보십시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민음사, 117 -122p
도스토예프스키도 신자였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