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ery of love - Sufjan Stevens
사랑이 모든 일을 옳은 길로 이끄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지난 10년 간 내가 느낀 내 삶은 '되는 게 하나 없다.'라는 점이다. 너무 안 된 것만 늘어놓아 읽는 분의 지루함을 유발하는 것이 좀 죄송스럽다. 하지만 얜 이 정도로 안 된 게 있다는 것을 솔직히 알려드리고자 한다.
1. 고등학교 입시 실패 (서류 탈락임), 고등학교 가서 생각 많아짐. (노력이란 게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
2. 그럭저럭 대학교 눈 낮춰서 들어감.
3. 전공 공부를 하면서 건축계 시스템 자체에 회의감이 들었음. 전과할까, 말까 하다가 얼렁뚱땅 졸업.(시작했으면 끝은 봐야 하지 않나 싶어서.)
4. 연애 안 함. (그냥 관심이 없었다.)
5. 여러 일을 도전해 봤으나 '이게 딱이다' 싶은 게 없었음. (누구나 그럴 듯.)
6. 공부를 하면서도 회의감이 많았음. 갈팡질팡.
7. 웹툰 그렸는데 각 화 조회수가 평균 10회? 정도. (97화까지 그렸었다.)
8. 카카오톡 이모티콘 반려. (2회 정도 시도했던 것 같다)
9. 글쓰기 공모전 낙방 10회? 정도. (대학생들 돈 주려고 하는 공모전,)
10. 건축 공모전도 도전했으나 실패. (3회 시도. 1회는 팀으로 해서 한 번 장려상 받았다.)
11. 건축 공모전 하면서 느낀 점. - 너무 마음이 무거웠음. 자신 없다는 느낌?으로. 될 때까지 해봐야지, 그렇게 졸업까지 했으나 느낀 점은... 3D 모델링하면서 늘 속이 울렁였다. 화면 보면서 모델링하는 과정이 즐겁지 않았음. 멀미? 함. 게임도 2D도 겨우 하고 3D는 15분 하면 두통 온다.
12....
더 해야 할까 싶다. 실은 조금 더 있지만 내가 지루해져서 줄이겠다. 실패한 목표는 푸념이 된다. 성공한 목표는 자랑거리가 되고.
운이 없거나 노력이 부족했다,라는 식의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5년 전에는 나는 훨씬 더 부정적인 사람이었고, 그 쯤엔 매일 울면서 잤다. 뭐 크게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덜 하지만.
되는 게 없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주를 알아보기도 했다. 내가 왜 안 되는 건지 설명받고 싶어서.
살면서 내가 돈 주고 본 사주는 재작년 겨울쯤 만 원쯤 주고 본 사주, 작년 봄쯤 오만 원 주고 현장에서 본 사주 이렇게 두 번이다. 그래서, 사주로 설명받은 게 만족스러우냐 하신다면 딱 심리상담 간 정도로의 효과*80% 라고 느낀다. 작년 봄에 본 사주에서는 이름을 바꿔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정리하자면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제대로 됐다 싶은 건 없는 느낌이다. 네 나이 대가 대부분 그렇지, 그러시면 할 말 없지만 나는 꽤 심각했다.
*
앞서 숫자를 붙여 말했듯이, 나는 이렇게 안 된 게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곁에 있어주고, 언니가 있어서 유년기에 덜 외로웠다.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를 다녔었고, 큰 문제없이 졸업도 했다. 정말 흔치 않게 운이 좋은 부분이라고 느낀다. 이건 내가 크게 만족하는 부분이다.
*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지? (= 내가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이런 생각은 오만하지만 근래에 자주 하는 생각이다.
*
작년 봄에 타 지역에 있는 언니 집에 하루 자고 간 적 있다. 근데 그날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 내 인생이 너무 불만족스러워."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감사할 게 정말 많지만 당시엔 욕심과 번뇌가 많았던 것 같다.
사실 갑자기는 아니었다. 언니가 일궈놓은 언니의 작은 집을 보면서, 언니가 쌓은 자산을 보면서 내가 근 10년 간 쌓아온 것에 대해 생각회로가 핑핑 돌아갔다. 그리고 머릿속을 통과하는 단어가 '불만족'이었다.
이렇게 솔직해지기까지, 드러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건 용기도 아니고, 그냥 자기 고백에 가깝다.
*
그날 저녁에 언니가 같이 근처에 사주 보는 데가 있는데 같이 보러 가자고 해서 다음 날 사주를 봤던 것이다. 마침 엄마도 함께 왔던지라, 뇌졸중으로 입원해 계신 할아버지에 관해서 마음이 힘든 엄마도 같이 같다.
*
하여간 꼴불견이었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나는 정말 꼴 보기 싫다.
*
나는 사주를 딱 미신 정도로 생각한다. 믿냐고 하면 믿진 않는데 정말 무시하기엔 어딘가 찝찝한...
언니는 사주를 심리상담 정도로 생각한다고 한다. 막상 모르는 3자의 입에서 삶의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앞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좀 더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참고할 수 있는 정도로.
어쩌면 나야말로 정말 안 믿으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믿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정말 안 믿으면 재미로나 보는 게 가능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인생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안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주'라는 도구가 단순히 '재미'가 되긴 어려웠다.
어쨌거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는 건 나의 노력의 여하에 달려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어서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
나는 뭘 하면 곧바로 유명해지고, 바로바로 통과되고, 합격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제일 신기하다.
누군가는 '너는 그런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서 모르겠지!'라고 반박하실 수 있겠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되는' 분야에서 '노력해서 된다.'라는 경험을 하는 인간이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는 것에 대해 반박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 운에 대해서 신기해하는 것이다.
사실 운에는 설명이 없다. 필요하지도 않다, 그냥 운이니까. 하지만 감정적으로 상처받고 좌절하는 경우에는 설명이라도 필요해진다. 마치 기업에서 서류탈락을 했을 때 '왜 안되는지' 피드백을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
세계 야구의 전설적인 선수인 '오타니'는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타니가 그렇게 성공한 야구선수가 된 데에 어떤 포인트가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오타니 선수의 만다라트는 유명하다. 학교나 관공서에서 '인생계획'이라는 주제에는 꼭 등장하는 계획표다.
오타니는 몇 살에 무엇을 이루고, 결혼은 언제 하고, 아이는 언제 몇 명을 가질지까지 쭉 써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꽤 맞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결혼하는 해는 미뤄졌고, 지금 시점에서도 아이는 하나다.
나는 이 만다라트에 대해 반대한다. 만다라트를 써서 이 사람이 세계적인 야구선수가 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 사람이 세계적인 야구선수가 되었기 때문에 만다라트라는 인생계획 보완점 찾는 방법이 유명해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만다라트가 아니라 '매일 아침 정수기 물을 떠서 소원을 빌었습니다.'라고 말했더라면 아마 물컵 앞에서 매일 아침 소원빌기가 유명한 소원루틴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만다라트를 썼을 때? 진심으로 쓰고 실행했어도 나는 얻은 게 없었다. 조금이나마 운을 높이고 싶어 져서 길에 있는 쓰레기를 종종 줍는 행위만 늘었을 뿐이다. 이 정도의 미신, 이 정도의 믿음.
*
다만 어떤 습관이나 루틴에 대해서는 적당히 믿는다. 실제로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 없는데, 만다라트도 어쨌거나 목표달성을 위한 모종의 습관형성에 관한 메모라고 생각하면 만다라트가 효과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언니는 나에게 이름을 바꾸자는 권유를 오늘 저녁에도 했다.
언니는 재미로 사주를 보는 게 가능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삶이 꽤 괜찮으니까.(본인이 만족스러우니까)
하지만 나는 재미로, 조금 내 삶을 좋아지게 하고 싶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는 게 쉽지 않다. 지금도 그런 편이다. 이러고 달라진 게 없으면 괜히 사기당한 기분만 들 테니까.
*
언니는 저녁수영을 하는데 함께 수영하시는 분 중에 사주공부를 하시는 분이 있고, 내 사주를 봐달라고 부탁드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언니는 집에 쭉 박혀있는 나를 걱정하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면 불리는 게 달라져서 운도 높아진다? 믿지 않는다. 뿐더러 내 이름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 내 이름을 바꾸면 오히려 미신에 굴복하는 느낌마저 들 것 같다.
*
과학이 모든 것을 제대로 설명해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학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 맹신만큼 과학적 사고에 모순되는 건 없다.
뭔가 진지해진 느낌인데, 저녁에 언니가 전화해서 한 이야기로 '이름을 바꾸러 갈까, 말까.'를 했다는 내용이다. 돈 주고 이름을 산다는 것도 조금... 무엇보다 나에게는 그 무엇도 아닌 제삼자가 내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도 내 취향은 아니다.
*
개명을 해서 행복해지신 분들이 있다면 축하드릴 일이다. 필요하면 해야지, 싶지만 나에겐 그리 필요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아마 언니가 권유하는 건 '사소한 변화라도 만들어 봐라.', 일 것 같다.
*
솔직히, 작년 봄에 본 사주는 좀 위로받은 느낌이 있었다. 어떤 특징적인 사건으로 마음이 힘들다면 심리상담(1회기, 50분에 13만 원이라고 한다.)이 좋은 것 같고, 약으로 해결되는 질환이라면 정신과를 가는 게 좋고, 단순히 인생 전반에 대해서 답답함이 있으면 사주를 보러 가서 적당히 위로받고,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보는 게 도움 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개인이 돈 들이지 않고 친구, 가족들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하다면 그 마저도 필요 없을 것 같긴 하다. 어쨌거나 현대는 외로워서 생기는 문제가 크기 때문에...
*
사랑이 모든 일을 옳은 길로 이끄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언니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개명'을 권유했지만 그건 믿음이 아니라 소원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믿지만 이유, 방법론이 되는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다지 설득력 있지 않다. 호소에 가깝지 않나...
그래서 얼마나 잘 살게 되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개명하지 않고 글 쓴다.
*
오늘은 아직 스도쿠를 하지 않았다. 이제 하고 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