たぶんね - マコトコンドウ
삶이 불만족스러운 날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를테면 나는 음식점 사장님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음식점 사장님이 되어 있다던지..
대학원생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대학원생이 되어있다던지...
결혼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혼했다던지...
*
위의 경우 되고 싶은 게 따로 있었는데 안 된 경우/되지 못한 경우 생기는 상황이다.
이 경우 또 세 가지로 나뉜다.
1- 원래 목표했던 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타개할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
2- 투덜댈 수는 있으나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상황에 적응한다.
3- 투덜대면서 그냥 불만족하며, 자기 연민 가지며 살아간다.
*
1안은 가장 현대사회에서 모범적이라고 할 만한 그런 사례인 것 같다.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에서 나중에 초대할 수도 있겠다.
"과거에는 어려움이 있으셨으나, 극복하고 이런 사람이 되셨다고요??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이렇게. 잘 되면 그렇게 되는 거고, 안 되면 적당한 때에 2안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2안도 괜찮은 사례 같다. 상황에 적응한다,라고 표현했는데 셋 중 가장 실리주의자의 마인드가 아닌가 싶다.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린다.
언젠가는 '그래, 이 삶도 나쁘지 않아. 오히려 괜찮은 듯?'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으나 가끔 살다 보면 첫사랑이 떠오르게 된다. '이걸 하고 싶었는데.'
3안은 잠깐 머물게 되는 마음상태라고 본다. 영원히 그런 사람은 드물고, 결국 1안과 2안으로 다다르는, 대기실, 연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
결국엔 내가 바라는 이상향의 모습이 추상적인 어떤 가치관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가, 무엇을 표방하고 있는가를 아는 게 중요해진다. 약간 진로설계, 커리어넷에서 할 법한 지겨운 말이긴 하다.
의사가 되고 싶은데 그 이유가 '한국에서 돈을 잘 벌고 싶어서.' 라면 '돈'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된다. 그러면 꼭 '의사'라는 모습으로 '돈을 잘 번다' 중에서 '돈을 잘 번다'가 중요해진다. 자신이 타고난 재능이나 적성이 현현하는 모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추구미와 실제로 자신이 가진 이미지의 차이가 있는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안타깝지만 이 경우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의사가 되고 싶은데 그 이유가 '의사가 멋져 보여서(명예직이라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 라면 '명예, 유명세'가 그 삶에서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꼭 의사가 되지 않아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명해지는 것을 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의사가 되고 싶다'라는 건 세상에 있는 다양한 이유를 조금씩이라도 다 담고 있는 것이긴 하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고, 명예롭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가지고 있는 역량, 시간, 환경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개인이 판단할 일이긴 하다. 누군가에게는 '의사가 되고 싶다'라는 꿈조차 사치일 수 있다. 특히 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에서는 개인마다 그 차이가 더 커져가는 것 같다.
*
어쩌면 쇼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다 역할놀이를 하는 무대이고, 역할놀이를 하려면 어떤 자격증이 필요해진다.
물론, 돈 많은 사람이 가장 고귀해 보이고, 가장 화려해 보이고, 가장 안락해 보이는 역할을 선점하게 되는 게 현대에서는 자연스러워 보인다. 신분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인간 여럿이 모이면 계층이 생긴다.
*
집단에 속하려면 대개 면접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왜 이 일을 하고 싶은 건가요?"
이 질문은 멍청하다. 그 집단이 원하는 고분고분하고 '준비된' 답변을 자동응답기처럼, 독립영화 주인공급 연기력으로 줄줄 풀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건 인정한다. 이것도 역할놀이의 일부이니까. 면접관은 면접자에게 질문을 하는 게 그 역할이니까.
*
삶에 충실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게 기꺼워진다면 그런 척이라도 해야 살기 편해진다.
집에 돌아와 어둑하고 차가운 거실 바닥에 지쳐 누워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만 삶을 가짜로 살고 있는 걸까.
*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도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상대방에게 표현할 순 없지만 안심이 된다.
*
요즘 우리 엄마는 삶에 불만족스러운 게 많다.
이사를 가고 싶은데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집을 못 찾았고, 하다못해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시도조차 안 해봤고, 커튼을 바꾸고 싶은데 못 바꿨고, 냉장고에 서리가 끼는 걸 수리하고 싶은데 못했고, 고장 난 에어컨을 바꾸고 싶은데 못 바꿨고, 가스레인지에서 인덕션으로 바꾸고 싶은데 못 바꿨고, 지난 1월에 난방장치가 고장 난 돌침대를 버리고 싶은데 아직까지 못 버렸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결혼식장에 가고 싶은데 옷이 너무 비싸서 마음에 들지 않는 옷만 왔고(온라인 쇼핑 실패)...
참고로 말하지만 엄마는 긍정적이려고 매우 노력하는 사람이다. 만약 내가 엄마였으면 진작에 폭발했을 것이다. 이토록 불만족스러운 것 투성이라니.
*
아마 대부분 불만족스러운 것의 이유는 한계가 존재하는 탓이다. 경제적인 면이든, 욕심의 한계든... 사회적이거나 환경적인, 시대적인 한계던지. 중학생 때 배웠던 문학작품에서도 많이 다뤘던 게 기억난다.
영웅전기 같은 경우에는 한계를 극복하는 편이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주제가 사랑이면 신분이나 진영이 문제 되는 경우가 많았다.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 해를 품은 달...
시대적인 한계는 미술사에서 많이 보이는데, 그땐 '왜 이딴 걸 예술이라고 한 거지?' '뭘 만든 거지?'라는 평가를 받으나 시대가 변화하고 '아, 시대를 앞서나갔구나.' 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역사 속에서 진보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경우나, 판타지 장르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체제의 사회에 편입되는 경우라던지.
*
그래서 우리 엄마는 요즘 어떤 드라마를 보는지 소개를 하자면 '킹더랜드'를 본다. 나도 잠깐 옆에서 마지막화를 같이 봤는데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물 같아 보였다.
아무래도 거대 호텔체인 사장과 일개 직원의 러브스토리니까?
*
마지막 화만 봤기 때문에 제대로 평하는 게 좀 그렇지만, 처음 느낀 인상은 ‘PPL 범벅’이었다.
여자 주인공이 착용하는 귀걸이, 남자주인공이 선물하는 보석 박힌 '구두', 남자주인공 손목에 비싸 보이는 손목시계... 3~5초 동안 그 물건이 담긴 상자를 천천히 열거나, 착용하거나, 선물하는 장면이 클로즈업으로 나온다. 참으로 물질주의적이고 적나라해서 불편했다. 아무래도 스토리 진행이 다 이뤄진 시점이라서 그런 걸까.
전형적이었다. 여자는 환한 햇살캐릭터이고, 남자주인공은 그런 여자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여자 주인공은 주변인들에게 사랑받는 사회생활을 한 것 같아 보이고, 남자주인공은 대빵 큰 다이아가 달린 반지를 여자 손가락에 끼워준다.
(참고로 나도 비싼 거 좋아한다. 그럼에도 경제력에 한계가 있어서 사치재를 마음껏 사지 못하기에 여자주인공이 이니꼬와보였던 게 아닐까?)
*
선남선녀가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있다. 배경 음악은 클래식, 두 사람은 꼿꼿하게 앉아 우아하게 고기를 썬다. 둘 다 피부도 완벽하고, 헤어스타일도 정돈되어 있다. 옷차림은 세련되고, 서로를 보고 연신 미소 짓는다.
남자는 프러포즈를 준비했으나 여자는 대뜸 자신의 행복을 위해 퇴사하겠다고 말한다. 남자는 목 끝까지 올라오는 '나랑 결혼하자'를 참고, 여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뜻을 존중해 준다. 프러포즈를 위해 드론쇼도 준비했으나, 여자의 감정선을 맞춰서 취소한다. 정말 웃기지 않는가? 아, 반지와 프러포즈는 나중에 한다.
이게 재미있나,라고 생각하면서 엄마의 얼굴을 봤는데 아주 푹 빠져있었다. 아마 이런 남자주인공을 바라서 그런 걸까. 여자주인공이 뭘 바꾸겠다고 하면 그대로 따라와 주고, 시원하게 도와주는 그런 남자친구. 돈도 많고 사회적 지위도 탄탄한 남자를 가진 여자.
*
드라마의 연출적인 부분이나 연기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준비하고, 열심히 제작한 드라마라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맛이 내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었을 뿐이다.
*
킹호텔 상속 전쟁에 던져진 구원,
한 달짜리 실습생으로 킹호텔에 첫 입성한 천사랑.
갑 중에 갑, 을 중에 을
서로는 상상조차 못 했던 미지의 세계가 만났다.
세상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웃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억지로 웃지 않아도 지장 없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웃음은 생존 도구이고, 누군가에 웃음은 아량이다.
일상에서 웃는 얼굴은 편하다.
갑은 보기 좋아 편하고, 을은 자신을 감출 수 있어 편하다.
그러는 사이 웃음은 기호로 남고 진실은 사라진다.
이 드라마는 진짜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출처 : https://tv.jtbc.co.kr/plan/pr10011590
마지막 화만 본 나로서는 그녀를 웃게 만든 것이 '물질적, 사회적 배경을 고루 갖춘 남자의 사랑'을 얻게 된 것...이라고 느꼈다. 중간에 어떤 서사가 있는지 모르겠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긴 하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라고 해서 그 맛을 내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이야기를 완결해 낸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만일 이 드라마에 푹 빠진 사람이라면, 여자주인공이 가진 어떤 요소가 '물질적, 사회적 배경을 고루 갖춘 남자'와 사랑을 빠지게 만들었는가. 를 상상하게 되지 않을까?
아마 본인이 다 가진 사람이라면 그냥 두 주인공의 외모와 연기에 푹 빠져서 즐거운 '오락'성 드라마를 감상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엄마가 최근에 불만족을 크게 느끼게 된 것은 환상과 현실의 괴리감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외려 자신의 불만족을 느끼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면 자기 자신의 능력치가 상승하게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이런 드라마를 즐겁게 보지 못하는 내가 좀 꼬인 데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
글의 제목처럼 극복이 뉘 집 개이름처럼 불릴 만큼 쉬운 게 아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유명해지기도 했는데 살면서 생기는 역경을 '극복'한다? 사실 극복이라는 건 결과론적인 단어고 극복의 과정에서 '노력'을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영원히 극복되지 않는 것도 있고, 대부분 시간이 해결해 주는 문제인 것 같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느끼는 건데 '역경을 극복한 이야기를 해주세요.'라고 하면 좀 짜증 난다. 어떤 방식으로 극복했는지, '당신의 노력'에 대해 말해주세요라는 것에 대해. 어쩌면 문제상황에서 당신의 태도를 보는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는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상대방에 맞춰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피곤하다.
나는 어디 나가서 절대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싶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안 좋아하는 스테레오타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쓰면서 생각한 건데, 속으로 내가 여자주인공을 보면서 '뭐가 그렇게 좋다고 웃어?'라고 생각하듯이 누군가는 나를 보면서 '뭐가 저렇게 복잡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미워하지 말자.
*
극복하지 못하면 영원히 불만족스러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