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성당 이라니
이전에도 밝혔지만 나는 불가지론으로 나름 긴 시간을 살아왔다. 그 이전에는 개신교였다. 이 쪽은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는 뼛속까지 개신교이다못해 개신교근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나에게는 선택할 권리도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 이런저런 여러 사건을 겪으며 교회와 멀어지고 막바지에는 교회 사람이 나에 대한 혐오적 발언을 내 동생에게 하면서 교회에 악감정을 가지는 것으로 교회와의 연은 끊어지고 불가지론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한 번씩 명동성당을 찾곤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집에서 명동성당까지 버스로 가는 2시간 남짓동안 버스 창문 너머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고 성당에 도착해 계단 쪽이나 뒤편 성모동산에 있는 벤치에 앉아 조용히 멍때리기도 하면서 마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당을 다녀볼까?
그리고 온갖 우여곡절 끝에 성당을 다니는 것을 허락받고-사실 이건 좀 웃긴다. 아무리 그래도 성인이 자기 종교의 자유를 찾아가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문제인지...- 알아보니 명동성당은 매 달 예비자교리반이 열린다고 해서 4월 반으로 등록했고 이제 한 달 조금 넘어서 받아들이는 예식도 거쳤다.
한 달 정도 정식적으로 천주교 맛보기를 했는데 나름 아직까지는 나랑 맞는 편이라 토요일 저녁에 주일미사를 드리고 그 다음 날은 아침 일찍 명동성당으로 가야 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하고 있다. 교리 강의 이후에 나눔 교리가 트라우마라 상당히 고역이지만 정신과 의사쌤과의 면담 끝에 일단은 약을 먹으면서 버티기로 했다.
예비자교리학교 첫 날에 가면 이렇게 생긴 신상카드를 적어내라고 한다. 심지어 증명사진도 붙여야 한다. 개인 특기사항은 대체 뭘 적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혹시 내가 잘못 적었다가 이상하게 보여질까봐 나는 그냥 공란으로 제출했지만 설명하시는 봉사자 분 얘기를 들어보니 학생이다 직장인이다 이런걸 적어내는 것 같다.
받아들이는 예식 날 찍은 내 미사통상문과 매일미사 그리고 성경 필사 노트.
저 성경 필사 노트를 쓰지 않으면 세례 불가다.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기도문도 외울 것이 꽤 많다. 어쩌다보니 성호경 주님의 기도 사도신경 반성기도 고백기도 성모송 영광송 식사 전 기도 식사 후 기도 십계명은 외우고 있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특히 묵주기도는 어떻게 외우라는 것인지. 각 신비를 1단부터 5단까지 외우라는 뜻인가.
매일미사는 원래 잘 안 봤는데 대모님 되실 분-이기는 한데 일단 트친인-이 가죽공방을 하셔서 만드신건데 공방에 원데이클래스 하러 갔다가 선물받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이 달의 매일미사를 한 권 사서 끼웠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예식 때 하고 있었던 명찰. 조 아래 가린 부분에는 본명이 적혀 있어서 가렸다.
뭐가 어찌되었던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이제는 미사 순서도 상당히 많이 익숙해졌다보니 지금 이러는 것도 익숙해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