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올라온 생각하지 못한 트라우마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던 첫 직장의 사장과 대부분 직원들은 엄청난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사장은 어디서 산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성경을 직원들에게 쥐어주며 이 성경은 특히 정말 좋은 성경이라 강조했다. 회사 내에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사장과 부사장을 포함한 개신교 신자들이 모여 사장이 하는 말을 듣고 성경을 돌아가며 한 절씩 읽는 기기괴괴한 월례행사도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신입직원이니 자기소개를 하라며 강요받았고 안 그래도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가 있는 자리였기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게 그렇게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자기소개를 강요한 옆 부서 직원은 내 친모에게 전화하는 말도 안 되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 생각해봐도 그 일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친모에게 전화를 한 것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모든 것이 단단히 꼬이고 잘못되어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 자체는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렸다. 잊은 것보다는 무의식으로 정신적 외상을 밀어넣은 것에 가까웠다. 당장 나에게 큰 문제는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과 퇴사 후 가해자가 나에게 보낸 되도 않은 문자 그리고 당시 다니던 교회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궤변이 더욱 상처였다. 그래서 회사 내에서 성경 읽기를 강요당하고 강압적으로 자기소개를 해야했다는 것은 빠르게 의식의 기억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교리를 들으면 반드시 1시간 교리강의와 1시간 나눔교리를 해야 출석인정을 받을 수 있다. 지역의 성당에선 그렇게까지 빡빡하지 않다고 하던데 명동성당은 정석 중의 정석 그 자체였다. 교리도 100% 모두 출석하고 성지순례, 일일피정, 성경필사, 기도문 암기, 일정 횟수 이상 주일미사 참례 등을 필수로 거쳐야 세례성사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출석 당일 1시간 교리강의와 1시간 나눔교리를 모두 해야만 출석인정을 받을 수 있다. 둘 중 하나가 누락되면 출석인정이 되지 않는다.
나눔교리는 교리강의 시작일에 바로 시작하지 않고 대략 4주 정도는 신부님 또는 수녀님(내 경우는 수녀님) 강의를 들은 뒤 받아들이는 예식을 한 뒤부터 시작된다. 나는 4월 교리반이니 현재 시점으로는 이미 받아들이는 예식을 거쳤고 나눔교리도 두 번 정도 참여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나눔교리 첫 날, 낯선 분위기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봉사자 분의 진행 하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불현듯 첫 직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나는 땅만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다가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냥 수줍음이 많으리라고. 부끄럽고 낯설어서 그런거라고. 하지만 본격적인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나눔교리 때에는 앞서 수녀님의 교리 강의를 들은 것에 대해 예비신자 교리 서적에 적힌 성경 구절을 찾아 돌아가며 읽고 문답을 주고받는 형태인데 성경을 돌아가면서 한 절씩 읽는 것에 무의식에 있던 트라우마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성경을 펴놓고 있는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이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일본어인지 아니면 꼬부랑 지렁이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 때의 기억과 겹쳐지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다행히 이전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비상약이 소량 남아있었기에 가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약을 꺼내 주머니에 넣고 봉사자 분에게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말한 뒤 뛰쳐나가 정수기를 향했지만 종이컵이 보이지 않았다. 종이컵은 보이지 않고 더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나겠다 싶어 화장실로 달려가 세면대 물로 대충 약을 먹고 화장실 구석에 쪼그리고 숨듯이 앉아 펑펑 울었다. 이제는 내 길을 찾아서 가겠다는데 왜 이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느냐면서, 언제까지 이래야 하냐면서, 대체 왜 하필 나냐면서 숨죽여 외치다가 눈물이 잦아지자 다시 강의실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 문까지 천천히 갔다.
하지만 강의실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아마 제정신도 아니고 미친 정신병자로 보지 않을까. 이미 개신교에서 그런 경험을 수없이 해왔고 혐오와 같잖은 동정이 어줍잖게 뒤섞인 시선을 나에게 보내는 모습을 밥먹듯 봐왔기에 성당에도 갈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나눔교리가 끝날 때까지 강의실 문 밖에서 다시 쪼그리고 앉아 기다렸다.
나눔교리가 끝나고 강의실 책상을 원래대로 되돌릴 때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강의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불행이라 생각해야할지 다행이라 생각해야할지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를 신경쓰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내 짐을 챙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짐을 다 챙기고 나서야 내가 앉았던 의자와 책상을 원래 자리에 되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속으로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던 그건 드러내지 않으면 딱히 관심 없지만, 대놓고 말하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보았다면 그 이후로 나는 진짜 예비신자 교리를 포기했을테니.
집으로 돌아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해도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아 병원 외래에서도 얘기했다. 의사쌤은 우선 일단은 약을 먹으면서 견뎌보자고 하셨다.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직면해서 내가 버티고 이겨야 한다고. 나 역시 아는 부분이다. 단지 그게 어려울 뿐.
그 다음 나눔교리 때에는 미리 약을 먹고 나눔교리 내내 만지작대며 마음의 안정을 취할 털이 많고 적당히 길면서 부들부들한 것을 준비해 어찌어찌 한 번의 고비는 넘겼다. 아마 세례성사 때까지도 나눔교리 조 사람들과 친해지거나 함께 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은 무리겠지만 나눔교리 도중에 뛰쳐나가지 않고 그 시간을 버텼다는 것만 하더라도 어디인가 하며 약간의 자기위로를 하고 있다.
정신적 문제는 정말 어렵고 복잡한 문제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몇 년을 그렇게 고생했고 지금도 고생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항상 잊었다가 다시 되뇌였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를 포함한 인간의 삶은 반드시 자신의 의지만으로 되진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니 그 분께서 이끌어주시어 세례성사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