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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Nov 14. 2023

언제부터 본인이 퀴어임을 안 거에요?

생각하시는 것보다 꽤 어린 나이에요


 일반적으로 사람이 스스로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꽤 빠르다고 말하면 다들 놀라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편견보다 어린 나이에 성소수자는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다. 성적 지향은 12살에서 13살 무렵, 늦어도 중학생 즈음에 깨닫게 된다고 한다. 성 정체성의 경우는 이보다 더 빠르다. 평균 6살이면 알게 된다고.


 그 어린 나이에 뭐 얼마나 알겠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나이더라도 알 것은 어느정도 알 나이다. 어린 나이에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일거라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때 직감한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은 본인이 부정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은 정신병이라고 할 수 없다.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으며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존재이기에.


 어느정도 확실한 정체화를 하고 나니 서른을 넘긴 나이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쭉 돌아보면 스스로 어느정도 자각하고 있었다. 나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이건 어떻게 바꿀 수도 고칠 수도 없다는 것을.


 나는 4살 때부터 유치원을 다녔는데 그 때부터 치마나 원피스를 상당히 싫어헀다. 하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당시 부모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셨고 나는 주는대로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치마나 원피스 같은 여성스러운 옷을 피하고 싶었다. 여성스러운 것이 그냥 다 싫었다. 핑크색도 싫고 공주도 싫었다. 당시 부모님은 나에게 디즈니 애니를 보여주지 않으셨지만 동화책으로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인어공주를 읽었고 하나같이 내 감상은 "너무 싫어."였다. 여자가 왜 왕자와 결혼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다. 내 또래 여자애들은 공주풍을 다들 좋아했건만 나는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두 싫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여자이기도 싫고 남자이기도 싫었다.


 이런 식으로 있으며 남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게 대략 7살 즈음이었다. 이후 어쩌다 블라우스나 원피스 같은 옷을 입어야 해서 입으면 사람들에게 "너도 여자구나"와 같은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런 식의 말을 들을 때마다 한없이 불쾌해졌다. 나는 여자로 불리는게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그렇다고 남자로 불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교복치마를 입어야 하는 중고등학교 내내 머릿속에는 치마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고 어쩌다 누가 여학생 또는 아가씨 라고 부르면 투견처럼 마구 싸웠다. 지금은 많이 성격을 죽이고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나보고 아가씨라 부르는 것이 정말 싫다. 그래서 머리도 짧게 자르고 바지에 티 아니면 와이셔츠에 짙은 색의 넥타이를 하곤 한다. 여자라 불리는 것도 싫고 남자라 불리는 것도 싫어서. 멋대로 성별을 판단해 맘대로 부르지 말고 "저기요"라고만 부르라는 의미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할 나이 즈음부터 나는 연애도 결혼도 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차라리 개나 고양이랑 사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하곤 했다. 어른들은 그게 그저 지나가는 것이고 너가 아직 남자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 했지만 어떻게 된 게 가면 갈수록 그러한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내 머릿속에 섹슈얼적 사랑을 입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반 아이들 중에 자기들끼리 연애를 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이를 보며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질투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신기하리만큼 아무 감정도 느낌도 없었다. 사춘기 나이가 시작되었음에도 성애적 사랑을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부터가 안 되었다. 신기하리만큼 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누군가와 손잡기 이상을 한다고 하면 불쾌한 것을 넘어 역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고등학생 때 모 인기 드라마에서 사탕키스가 나왔을 때에도 모두가 로맨틱하고 아름답다고 했지만 나는 그저 더럽고 재수없고 역겨울 뿐이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대체 어떤 멍청이 바보 똥덩어리가 지 처먹던 사탕을 남한테 입으로 넘겨주냐. 어우ㅆx 너무 더러워.' 이게 정말로 끝이었다. 전혀 로맨틱하게 보이지도 아름답게 보이지도 하다못해 좋게 보이지도 않았다.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시 나에게 그런 것을 고민할 틈은 유감스럽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학원 뺑뺑이에 맛들인 엄마는 공부 외에 것들을 일절 허락하지 않았다. 예외적으로는 교회 관련된 것 정도이려나. 그래서 그 이상으로 깊게 고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해 고민할 시간은 성인이 되고 시간이 더 지나기 전까지 있을 수 없었다.


 시간이 많이도 지나서야 뒤늦게라도 퀘스처닝을 해야겠다 싶어서 퀘스처닝을 한참 하고서야 최대한 나와 어울리는 이름표를 찾을 수 있었다. 스스로가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바이로맨틱(이지만 그레이로맨틱 성향이 있는듯한)임을 자각하고 나니 나는 서른이 넘긴 나이가 되어버렸다.


 늦은 나이에 퀘스처닝을 하고 퀴어로 정체화를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인생을 되짚어 떠올리면 스스로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느정도 자각한 포인트가 있다고들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서야 정체화를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면 곳곳에 그 포인트가 남겨져있다. 상황이 되지 않아서 그에 대해 고민하고 퀘스처닝을 할 수 없었을 뿐이지 성소수자는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타고난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이 분명 있다.


 어찌어찌 늦어버렸지만 이제라도 스스로를 성소수자로 정체화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간의 모든 포인트가 내가 잘못되었거나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어느 문화권에서던 어느 종에서던 일정한 비율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저 자연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일 뿐임을 깨달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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