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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Nov 30. 2023

성소수자인 가톨릭 신자, 그게 바로 나에요

심히 카프카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임에도


 처음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을 때 이런 다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당 내 커뮤니티에 얽히거나 말려드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청년회를 포함한 그 어떤 단체나 모임에 소속되는 일이 전혀 없도록 교적도 실거주지와는 상관 없는 곳에 두고-물론 교회법상으로는 거주지 관할 성당에 교적을 두어야 하지만 예외사항에 해당되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주는 이 성당, 다음 주는 저 성당 이런 식으로 자리 없는 메뚜기 생활을 해야겠다고.


 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이왕 성당 다니기로 했으면 그 안에서 어울리는 것이 좋지 않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때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을 비교해보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가톨릭 성소수자 모임에는 정기적으로 나가고 단톡방에도 들어가 있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으로 하는 것은 되려 나만 위험해질 수 있음을 이미 잘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괜히 불필요하게 나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몰고가는 것도 그닥 하고 싶지 않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성전환자도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단순히 내가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바이로맨틱인 성소수자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느려도 변화가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반가운 마음도 있었고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서울주보에 그에 대한 빈박문과도 같은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나니 쉽고 짧게 말해 내 기분은 '팍식' 그 자체였다. 주보의 글을 읽고 나니 성소수자의 존재 인정은 커녕 그 존재를 아예 부정부터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예비신자 시절 수녀님의 강의 중 과학만능주의-나는 이 말을 정말 안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학문은 과학이고 과학일 수밖에 없는데 과학만능주의라니, 이 무슨 멍청한 표현인지-를 얘기하며 과학 때문에 종교의 위기가 왔고 마치 과학은 나쁜 것이다는 것처럼 말씀하셨던 것이라던가 아니면 자살 시도를 숱하게 했고 이를 아시면서도 내 앞에서 자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이야기를 하시는걸 듣는 기분이었다. 어디까지나 자연계의 자연 현상으로 성적소수성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엄연한 자연적 현상인데 이를 마치 당사자 본인이 '선택'한 것처럼 말하는 것에 불쾌하고 기분이 매우 나빴다.


 주보의 글을 읽고 나니 기분도 너무 안 좋고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확실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현재 제도교회는 성소수자 인식에 대한 여정의 출발점에도 서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출발점에 서지 않으면 그 어떤 움직임도 발전도 변화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너 왜 인권침해에 차별과 혐오를 반복하는거야! 그건 나쁜거라고! 하면서 닦달하거나 막말로 뚜들겨 팰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어디까지나 네비게이션 내지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고 네비게이션이 제시하는 경로를 이탈해 엉뚱한 곳으로 간다고 해서 네비게이션이 운전자를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까.


 스스로를 돕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본인들이 싫고 올바른 이해를 하고 싶지 않아하는데 내가 뭐 어떻게 하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럴 때에면 교적을 다른 교구에 두고 메뚜기 생활을 이어가는 지금이 최선이려나 싶다. 애초에 종교계 자체가 성소수자에게 배타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나 자신이 성소수자 당사자임에도 내가 원해서 종교를 가진 것인데 상당히 현타가 밀려온다. 이런 상황을 보고 카프카스러운(kafkaesque), 그러니까 매우 혼란스럽고 불쾌하며 충격적이라고 해야하려나. 나는 결코 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고나길 원래부터 그런 것을 뭐 어쩌라는 것인가. 차라리 선택이면 억울하지라도 않겠지. 선택한거면 내가 내 의지대로 고른 것이고 만약 그게 불필요하다면 버리면 되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결단코 그런 것이 아니기에 주보의 저 글이 더 불쾌하고 기분나쁘고 슬펐다. 이런 말을 들을 것이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집에 밥을 줘야 할 개와 고양이가 있기에 참아야 한다. 적어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


 제도교회가 이따위인데 이걸 뭐하러 참아주고 기다려주냐, 역시 성소수자는 종교를 가지는거 있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나도 참아주고 싶지 않고 기다려주고 싶지도 않다. 단지 혐오 속에서 고개를 드는 희망을 이미 보았고 다른 성소수자 신자들 그리고 연대해주시고 도와주시는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계시기에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바뀌지 않을 이 상황에서 인내하며 버티고 있다. 적어도 이 이유로 내 종교를 포기하는건 원하지 않기도 하고.


 그러기에 납작하고 무식하며 멍청한 혐오에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고 버틸 것이다. 일단 지금은 그럴 것이다. 나에게는 함께 버티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그리고 느리더라도 결국은 사랑이 이길 것이니까. 언제가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출발점에 서기라도 하는 날은 올 것이라 믿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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