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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Nov 29. 2023

신부님, 그건 폭력이 아닙니다

우리들 사이에 필요한 것은 혐오와 폭력이 아니라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각 종단의 성직자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했는데 그 중 가톨릭 사제가 한 답변이 상당히 부적절하다는 말이 들려왔다. 트위터에서는 방송이 나가자마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트위터 특성상 성소수자가 많이 모여있다보니 사람들은 이 발언에 대해 화를 많이 냈고 탐라는 그냥 뒤집혀버렸다. 트위터를 10년 넘게 하면서 탐라가 뒤집히는 것은 수도 없이 봐왔지만 내가 성소수자이자 동시에 가톨릭 신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티비를 보지 않고 나에게 티비란 오직 핸드폰 미러링을 해서 내가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전부이기에 나는 그 방송을 보지 않았다. 이렇게 된 지는 꽤 되었지만 어느 날부터 한국 드라마나 한국 예능이 상당히 불편해지기도 했고 내 취향과는 맞지 않는게 느껴져서 티비를 안 본지가 매우 오래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방송을 보지 않았지만 캡쳐된 화면과 클립영상을 보니 가톨릭 사제가 성소수자에 대해 종교인에게 묻는 것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의 말을 하고 있었다. 자막으로도 아예 그건 폭력이다는 말을 띄워서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그 캡처와 클립영상을 보고 곰곰히 생각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묻는 것이 폭력이라고 한다면 이는 묻지 말라는 의미이고 결론적으로는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즉 사회의 소수자가 불의한 일로 차별과 혐오를 받고 있는데 그걸 회피하면서 외면하고 무시하고 싶어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과연 그게 괜찮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주류의 큰 소리들 사이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직자가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것은 가시밭길이면 가시밭길이지 결코 편한 꽃길이 아니다.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해 묻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며 외면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성소수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괜찮다고 할 수 있나 싶다. 예수님도 그 시대에 천대받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수군대어도 몸소 나서셔서 그렇게 하셨다.


 이 일로 다시 한 번 가톨릭 교회와 종교계에 실망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싶진 않다. 느려도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에 그냥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다. 항상 말하지만 결국 사랑이 이길 것이고 좋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것이니까. 그리고 그와 반대로 우리와 연대해주시는 성직자 분들도 계시니까. 이를 직접 본 나로서는 희망을 끊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 역시 사람인지라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고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종교계가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또 성소수자가 종교계를 혐오하는 것은 어느 한 쪽만이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지만 먼저 시작한 것은 종교계이고 그런 만큼 종교계에게 더 책임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종교계에서 좀 더 손길을 내미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성소수자 집단도 마냥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이건 트위터를 보면서 더더욱 느끼는건데 무작정 성소수자의 편을 들기도 어렵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사태의 책임이 종교계에게 더 있는만큼 종교계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 역시 습관처럼 하는 말이지만 어떤 관계던 관계 형성과 관계 유지는 한 쪽만이 노력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관계는 양방향성이다. 어느 한 쪽만 애쓴다고 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요전에 읽었던 미국의 어느 신부님의 책에 나온 말 처럼, 지금 종교계와 성소수자 집단 사이에 필요한 것은 혐오와 폭력이 아니라 양방향에서 노력해서 만들고 유지하는 다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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