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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Mar 06. 2024

성당에도 성소수자가 있어요

당신 멋대로, 당신 편의대로 내 존재를 지우거나 왜곡시키지 마세요


 여러 이유로 실명을 걸고 활동하지는 못하지만 닉네임과 세례명을 걸고 인스타툰을 연재하고 활동을 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성소수자 당사자들보다 일반 가톨릭 신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성소수자들은 80% 남짓의 확률로 최소한의 대화라도 되는 반면에 일반 가톨릭 신자들은 연결도 뭣도 전혀 되지 않는다. 너무나 편향되고 치우친 생각만을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성소수자 당사자와는 어느정도 대화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 가톨릭 신자들은 그냥 내 존재부터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걸 보면서 적어도 저 사람들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는 그냥 인간 미만이구나 싶은 기분이 든다.


 서울주보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성 글이 실린 이후로 매 주 목요일 오후 명동성당 홈페이지에서 이번 주 발행되는 주보를 미리 읽고 가는 습관이 생겼다. 주일미사 당일 성당에서 사람도 많은데 예고도 없이 맞닥트린 주보의 혐오글에 표정을 구기거나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아서다. 미리 혐오글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몰지각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된 망상 수준의 글이 있는지를 미리 pdf로 확인하게 되었다. 마치 성당에서 그 주보를 읽는 사람 중에는 성소수자가 아예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쓰여진 말도 안 되는 글에 기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다.


 세상에 성소수자 비율이 일정하게 대략 10% 남짓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명동성당에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성소수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하다못해 성소수자의 가족, 친구, 지인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글을 당당하게 주보에 싣는 것일까. 주보에 이런 망상 수준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과연 성소수자를 직접 만나보기는 하고 이러는 것일까. 자신들의 입과 손으로 혐오를 자아내면 어르신들처럼 인터넷도 모르고 그것만이 사실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된다는 생각은 하는 것일까.


 편견 없는 대화를 할 준비도 안 되어있고 아예 한 술 더 떠서 준비조차 하기 싫다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할 수도 없고 이젠 나도 말하기 싫고 지친다. 적어도 본인들 멋대로 본인들 편의대로 존재는 지우지 않았으면 좋겠건만 성당에는 내 자리가 없고 이들은 내 존재를 싫어하며 나를 죄악이라 인식한다고 생각하면 한숨만 푹푹 나오고 씁쓸하다. 신앙생활은 나와 하느님의 1대1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지만 남들은 신자라면 누구나 평범하게 제도교회 내에서 위로를 받고 할 수 있음에도 나는 그것조차 안 된다는게 슬프다. 이래서 성소수자들이 냉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구나 싶기도 하고. 나는 냉담할 생각은 딱히 없지만 성당에는 딱 미사 때에만 가고 그 외에는 일절 활동을 안 하고 앞으로도 내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와 같은 성소수자인 신자들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상대가 앨라이가 아닌 이상 평범하게 위로를 받을 수도 하다못해 내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거잖아.


 물론 성당은 내가 가겠다고 한 것이고 가톨릭 신자가 되겠다고 한 것도 내 의지였지만 이래저래 마음이 참으로 복잡하다.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은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이걸 애슐리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접시에 퍼담는 것마냥 표현하는 사람들에 성당 주보까지 나서서 혐오에 일조하니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안 좋다. 적어도 그 글을 성당에서 읽는 사람 중에 성소수자도 분명 있다는 사실과 잘못된 정보를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것도 엄연한 혐오고 나쁜 짓이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임을 자각이라도 하면 좋을텐데. 아니 적어도 성서에는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써있다는 것이라도 깨달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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