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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06. 2024

부모에게 커밍아웃할 생각은 없어요

만약 한다고 하면 그건 납골당에서나 있을 일이거든요 


 언젠가 엄마는 나에게 너가 설령 동성애자라도 나는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부모에게 커밍아웃할 생각이 전혀 없고 앞으로 계획에서도 부모에게 커밍아웃은 존재조차 없다. 이건 인생에서 정말 큰 이변이 있는게 아닌 이상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가족 중에서는 친동생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커밍아웃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간 커밍아웃에 대해 몇 번 간보기를 한 적이 있다. 일부러 카톡 프로필에 여배우 사진을 걸어놓고 내 아내~ 이런 말을 적어두기도 하고 나는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역겨워서라도 상상하기 싫고 손잡기 이상도 머릿속에 없다고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너 배우자가 왜 여자야?" "너가 남자 맛을 몰라서 그러는거야" 정도였다. 그리고 어느 날 트친들과 약속이 있어서 토요일에 외박을 하겠다고 하자 아빠가 걔는 애인도 없냐는 식으로 말을 하길래 애인 있던데? 라고 말하니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걔는 외박을 하냐고 했다. 아빠의 말에 남자친구는 아니고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자 아빠는 정색하고 너 지금 남자랑 놀려고 그러는거냐고 하자 그 사람 여자야. 라고 말했고 아빠는 썩은 표정을 지으며 으... 했다. 이런 반응을 보고 나자 나는 머릿속에서 부모에게 커밍아웃은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론지었다.


 나의 결정에 대해 부모는 내가 자신들을 속였을거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건 속인게 아니다. 설령 속였다 하더라도 작정하고 엿먹으라는 의미에서 고의적으로 속인 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안전지대 없는 삶에 언제든 사람을 물 준비와 떠날 준비를 항상 하고 사는데 가족 그것도 부모에게 커밍아웃이라니. 있을 수도 없지만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내가 커밍아웃을 한단 말인가. 아무리 막사는 막장 인생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그렇게까지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에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만약 한다고 하면 그것은 막말로 납골당에서나 가능한 일이리라.


 성소수자로 살면서 커밍아웃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주변에서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해서 잘되는 경우도 분명 봤지만 그것보다 안 좋게 이어진 커밍아웃이 훨씬 더 많다.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희망편일 뿐이다.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을 택한 당사자 분들과 자녀의 커밍아웃에도 내 자녀가 어떤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가진다 한들 끝까지 자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부모모임의 활동가 분들. 모든 커밍아웃이 그렇게 이어진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여전히 어른들은 변하지 않을 사실에 대해 부정하고 변질된 두려움과 막연한 혐오를 품고 있다. 여기서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막연하고도 어이없는 개소리를 던지는 사람들은 당사자가 가진 두려움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무책임한 개소리를 전시하는 것이고.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그리고 이런저런 소수자성을 가진 입장에서 너무나 어렵다.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당사자들을 존중하지만 되도록이면 커밍아웃을 하지 말라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이해가기에 더더욱 어렵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지만 이 현실이 참 씁쓸하다. 여전히 내가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이야기만 꺼내도 한숨을 쉬고 자리를 피하는 엄마를 보며 오늘도 나는 내 인생에서 허락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다짐한다. 살아서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일은 적어도 없을 것이라고. 설령 이게 속이는 일이라도 내 안전이 우선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할 수는 없다고. 그냥 내가 평생 반의 반의 반쪼가리 이하로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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