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비스 Dec 20. 2023

내가 하려는 건 대단하거나 거대하거나 위대한게 아니라서

단 한 명이라도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면 그거로 충분하거든


 자려고 누워서 마지막으로 트위터를 봐야겠다 해서 접속한 트위터에서 상당히 반가운 뉴스를 보았다.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이 뉴스로 트위터는 시끌벅적했다. 그 중에는 그래봤자 결혼으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그 뉴스가 정말 반갑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성소수자이면서 동시에 가톨릭 신자라는 정체성을 모두 가진 내 입장에서 내가 두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어서 얻는 이점도 분명 있다. 특히 같은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를 만나고 알게 되면서 세상을 보는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 단점 중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소수자 낙인이 찍히고 다른 성소수자들에게는 성소수자이면서 종교를 갖는 것에 대해 '넌 가짜 퀴어야' 혹은 '퀴어면 퀴어답게 살 것이지 뭣하러 종교를 가지려 하냐' 또는 '종교는 꺼져라' 와 같은 말을 듣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성소수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잘 숨어다니면 최대한 피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같은 성소수자에게 퀴어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내가 종교가 있다는 이유로 그런 말을 듣고 취급을 받는 것은 너무 서럽고 화나고 슬픈 일이었다. 모르기 떄문에 그러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며 애써 넘겨보려 해도 제도교회에서 받는 차별과 혐오보다 다른 성소수자에게서 받는 차별과 혐오가 더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더 외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성소수자도 그냥 사람이라고. 성소수자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생각해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고. 그리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지금까지도 변해왔으니 앞으로 더 변할 것이라고. 그 말들을 외치기 위해 접었던 인스타툰을 다시 시작하고 인터넷에 글을 쓰고 필요하면 기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에 '너가 그렇게 한들 세상은 바뀌지 않고 너만 손해야'라고 말했다. 주변의 몇몇 친한 사람들은 응원을 하기도 했지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너가 하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느리지만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싸하고 왜곡된 시야로 우리를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와 연대하는 어려운 길을 걸으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분들이 계시기에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버티고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그 뉴스를 보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안 바뀌긴 뭐가 안 바뀐단 말인가. 느리고 아직 갈 길은 남았지만 그럼에도 바뀌고 있고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인데 무엇이 안 바뀌고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인가. 이를 보며 더 열심히 말하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위대하거나 거대하거나 엄청난 일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내 말을 듣고 생각의 변화가 생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애초에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기에 이번 소식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이 길을 쭉 가야겠다고. 힘이 닿는 한 할 수 있는 한 더 열심히 말하고 다녀야겠다고. 그리고 생각과 시야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서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이전 10화 부모에게 커밍아웃할 생각은 없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