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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07. 2024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세상에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지 몰라. 아니, 아마 항상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없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고 똑같이 말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포기하고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 생각할래. 지금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어.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성소수자 분들도 계시고 연대의 길이 어렵고 가시밭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심에도 함께 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잖아. 그런데 내가 힘들다고 징징대면 그 분들이 뭐가 되겠어.


 이럴 때 오래 전 개신교에 있던 시절 우연히 보았던 가톨릭대 신학교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말을 떠올리곤 해. 군대에서 미사본다고 고참들에게 욕먹어봤자 예수님이 들었던 욕보다 더하겠냐고. 맞아. 진짜 그렇지. 내가 아무리 혐오자들에게 멍청함 섞인 욕과 무식이 통통 튀는 성소수자 혐오를 겪는다 해도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들으셨던 욕보다 더할까. 그거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텐데 말이지. 


 그래서 조금만 우울해하고 울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가려고 해. 내 편이 되어주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이 세상에 성소수자이면서 가톨릭 신자이고 이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지키려는 사람은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제는 그걸 확실히 아니까 지금은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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