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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22. 2024

저는 욕먹고 혐오받는게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괜찮다는 것은 아니지만


 욕먹는게 상당히 익숙하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존재를 부정당하는게 일상이라 더럽다, 역겹다, 니들을 위한 곳은 없으니 꺼져라, 동성애는 정신병이고 죄악이다 이런 말을 들어도 속상하긴 하지만 겉으로는 무덤덤하게 무시하려 하고 있다. 그게 나에게는 워낙 일상이 되어버려서 익숙해지기도 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속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속상한 것은 여전하고 이것이 크게 바뀌지 않는듯 하다. 단지 그걸 감추는 잔재주만 늘어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욕먹는건 익숙하지만 다른 성소수자 당사자나 앨라이들이 욕먹는다는 것은 더더욱 익숙해지지 않는다.


 교황청 신앙교리부에서 <간청하는 믿음>으로 동성커플 축복을 공식적으로 허용함을 발표한 이후 한국 가톨릭 교회 내에도 동성커플 축복을 받은 사례가 생겨났다. 나는 여전히 제도교회가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지만 어쨋든 첫 걸음을 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게 그렇게도 보기 싫고 아니꼬웠나보다. 기사마다 온갖 악플이며 커플 축복을 해주신 신부님은 다양한 항의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워낙 여러모로 욕먹는게 익숙하고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쓰레기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게 너무나 익숙해서 내가 그런 취급을 받는건 무덤덤하지만 단순히 연대해주시고 앨라이-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라는 이유로 신부님이 죄인 취급받는 이 상황이 정말 마음아프다. 신부님은 사제로서 올바른 일을 하셨고 사회에서 혐오와 미움과 냉대를 받는 우리와 연대하셨을 뿐인데 신부님이 욕먹고 죄인 취급을 받는다니.


 이 상황을 보며 눈물도 나고 환멸도 느껴진다. 솔직히 그간 성소수자로서 그리고 동시에 가톨릭 신자로서 툰도 그리고 하면서도 느꼈지만 제도교회는 우리의 말을 들으려는 의지조차 없음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보인다. 종교도 나라도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아 다 떠나버리고 버리고 싶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걸까. 제도교회는 우리의 말을 들을 준비도 의지도 없고 멋대로 상상하고 적폐망상회로를 돌리고 주보에는 막말로 개소리를 싣는 이 상황에서 성소수자 그리고 가톨릭 신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가진 나로서는 회의감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뭘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실 자신도 없다. 이게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증거일까.


 지금 상황을 보며 이들은 성소수자는 사람 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하기야 그러니까 퀴퍼 같은 곳에서 마이크 들고 동성애는! 정신병이다! 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것일까. 그들에게 정신질환 당사자는 인간도 아닌 존재이니. 근데 그렇다면 성소수자이면서 정신질환 당사자인 나는 대체 뭘라나.



 세상의 냉대와 혐오, 종교의 잘못된 이해로 인해 고통받고 마음아파하는 성소수자와 앨라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종교가 무지의 오류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상처주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그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일임을 깨닫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한다는 이유로 항의와 비난을 받는 라파엘 신부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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