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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Dec 30. 2023

지금 당장 내 시계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납작한 혐오에 등떠밀려 나까지 납작한 멍청이가 되는건 싫어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 생각했다. 혼자라 특별한 것이 아니라 혼자라 외롭고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신교에 푹 빠져 사는 부모님은 틈만 나면 동성애는 죄악이고 트젠도 죄악이라는 말을 수시로 뱉었고 어렸을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다녔던 교회에서도 성소수자는 지옥에 가는 죄인이라고 떠들곤 했다. 그렇다는 것은 나는 죄인이고 내 존재도 죄악이고 나는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이며 아무리 몸부림친다한들 태어남과 동시에 지옥 밑바닥에 처박힐 운명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는 것이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뿐인 멍청이들에게 이런 개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체화만 늦었을 뿐인, 나 자신이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바이로맨틱이라는 사실을 얼추 눈치채고 있었던 내 입장에서는 오로지 기분나쁘고 불쾌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정말 혼란스러웠다. 만약 성소수자가 지옥에나 떨어질 죄인이라면 어째서 섹슈얼 마이너리티의 대는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서 일정 비율로 관찰되냐고 물었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벽을 보고 떠드는 기분이었고 돌아오지도 않을 답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그 외에 다른 문제도 있어서 이어진 결과였지만 그랬기에 나는 개신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퀴어를 혐오하는 분위기는 가톨릭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개신교는 대놓고 혐오를 드러내는가 하면 가톨릭은 음침하게 숨어서 은근히 혐오를 하는 분위기-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와중에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장 눈에 드러나보이지 않지만 숨은 퀴어 가톨릭 신자들을 만나고 그 존재를 알게 되면서 나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며 나만의 어려움도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 이 길을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몇 걸음 물러섰다가 몇 걸음 나아가는 것을 얼마나 반복하게 될까. 제도교회 내에서는 성소수자 낙인이, 다른 성소수자들에게는 그리스도교 신자이니 가짜 퀴어 낙인이 찍히는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하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어찌되었던 지금 내가 할 일은 그저 나아가는 것 뿐이며, 적어도 지금은 멈출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연대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한 앞으로도 버티고 싶다. 설령 내가 살아있는 동안 바뀌지 않을지라도 이렇게나마 가시화를 시켜두면 내 다음 세대 혹은 다음 다음 세대에서 빛을 보는 날이 올 것이니까. 그러기에 내일도 버티고자 한다. 납작한 혐오에 나까지 떠밀려서 납작한 멍청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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