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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Mar 01. 2024

커밍아웃 쓰지 마세요

커밍아웃은 성소수자의 언어지 절대 밈이 아닙니다


 커밍아웃. coming out. 원래 의미는 자신의 사상이나 지향성을 드러낸다는 뜻이지만 주로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이나 사회에 밝힌다는 의미로 쓰인다.


 커밍아웃이라는 표현이 있다.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억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며 성소수자 인권에서 결코 빼놓고 말할 수 없는 단어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라면 커밍아웃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come out은 어디서나 쓰이는 단어지만 coming out은 독점적으로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목적으로 쓰이는 표현이니 커밍아웃이란 성소수자 용어라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 생각없이 병밍아웃, 덕밍아웃 이런 식으로 밈처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무슨 재밌는 유행어처럼 커밍아웃을 변형시켜 써먹지만 이 단어에서 당사자인 성소수자들은 이를 그닥 좋지 않게 보고 있다. 밈처럼 소비되는 x밍아웃으로 남은건 당사자들의 진짜 커밍아웃이 아니라 밈처럼 굳어진 x밍아웃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 나 역시 커밍아웃을 밈처럼 쓰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소수자의 언어를 뺏어서 대체 무슨 이득을 얼마나 보려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괜찮은 밈화는 결코 아니라 생각한다. 그 단어가 어떤 표현에서 유래된 것인지도 모르고 정작 성소수자가 커밍아웃을 하면 이에 대해 신기함 또는 혐오감으로 보는 경우가 대다수인 현실에서 비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의 언어를 밈화시켜 노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재밌는 것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그 단어를 대체할 다른 표현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해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고 비성소수자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해 심리적 답답함이나 사회적 고립감을 쉽게 느끼곤 한다. 비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연애사나 가족 이야기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나눌 수 있지만 성소수자에게는 그게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우울, 불안을 느낄 확률이 더 높고 그래서인지 성소수자들 중에는 정신과 진료나 심리상담을 받는 경우도 어쩌면 이게 성소수자라면 기본 소양인건가 싶을 정도로 훨씬 많다. 이 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변인들에게 인지시키고 사회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커밍아웃은 성소수자의 행복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꼭 정서적인 부분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동성 파트너가 있는 경우라던가 의료적 트랜지션과 성별정정을 하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이에 해당된다. 여전히 동성커플은 현행법상 남남이기에 함께 살았음에도 유산 등에 일절 권리를 갖지 못하니까.- 커밍아웃은 성소수자에게 정말 중요하고 거의 생존과 직결되다시피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커밍아웃을 밈화 또는 인터넷 용어처럼 남발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불편하다. 이 사람들이 과연 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쓰는 것일까 싶기도 하다. 심지어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발간한 '커밍아웃 스토리'라는 책의 표지를 책 제목만 자르고 가져다 쓰면서 커밍아웃을 전혀 엉뚱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보며 마음같아선 화를 백 번도 내고 싶어진다. 그 표지를 가져다 쓸 정도면 어느정도 안다는 의미일텐데 그러면서도 커밍아웃을 완전 엉뚱한 의미로 밈처럼 소비하는 것을 보며 화도 나고 한숨만 푹푹 나온다.


 밈으로 많이 쓰이면 그만큼 친숙해져서 성소수자의 커밍아웃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현재 x밍아웃이 밈화되어서 남은건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뭣모르고 커밍아웃을 밈으로 쓰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고 저게 알고나 쓰는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정말이지 사회적 소수자의 언어를 빼앗아서 뭐 얼마나 즐거운 재미를 보려고 그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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