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비스 Nov 09. 2023

나의 퀘스처닝 선생 이야기

대충 어려움과 약간의 부정으로 버무려진 나의 퀘스처닝


 퀘스처닝(questioning)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는 퀘스처너리라고도 말하지만 퀘스처너리는 영어권 퀴어 용어로 쓰이지 않는 표현이고 상당히 어색한 말이기에 퀘스처닝이라 말하는 것이 맞다.


 사람에 따라 퀘스처닝 기간은 다르고 어떤 사람은 퀘스처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정체화하는가 하면 누구는 정체화를 했다가 다시 퀘스처닝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좀 더 정교하게 찾아가고 나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은 아니지만 그 외의 다른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기도 한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퀘스처닝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퀘스처닝을 통해 나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정체화함과 동시에 나 이외의 다른 성소수자를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퀘스처닝에 부가적으로 시간을 많이 쓴 경우다. 성 정체성은 6살 즈음, 성적 지향은 13살 즈음 알게 된다고들 하는데 나이 먹을대로 다 먹고 나서야 뒤늦게 퀘스처닝을 시작했는데 거기다가 퀘스처닝에서 대략 2년 정도 시간을 썼다. 이렇게 된 것에는 학업을 완전히 끝낸 이후로 내 정신건강이 멀쩡했던 적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또 나에게 주어진 정보가 정말 한정적이었던 것도 있다. 그 시기에도 트위터를 하고 있었지만 트위터를 하더라도 퀴혐(퀴어 혐오)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나쁜 짓이다 이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뭘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과거 교회에서 들었던 동성애는 세상에서 제일 질 나쁜 죄라는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기에 퀘스처닝 2년의 기간은 거의 대부분이 어려움과 부정으로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고난의 연속인 퀘스처닝이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무려 2년이나 잡아먹은 퀘스처닝 끝에 나는 나 자신을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바이로맨틱이라 정체화했다. 바이로맨틱 성향은 있지만 에이섹슈얼 성향이 너무 강해서 어떻게 보면 그레이에이로맨틱같기도 한데 우선은 바이로맨틱으로 일단락짓기는 했다.


 그러면 여기서 내 퀘스처닝은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바이로맨틱으로 끝난 것인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을거다. 그러하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세세한 이름표도 중요하지만 그거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퀴어로서 내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이니.



이전 02화 성소수자와 종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