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비스 Oct 29. 2023

성소수자와 종교

아직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조합이지만


 퀴어 퍼레이드 당일 아침 습관처럼 모 sns를 접속했다가 어떤 글을 발견했다. 글의 내용은 명확하게 적을 수 없지만 대충 퀴퍼에 종교 부스를 왜 하냐, 종교는 나대지 말아라, 이런 식의 내용이었다. 그 글을 보았을 때 나는 가톨릭 예비신자였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알만큼 알고 있어서 내가 성당에 다니면서 동시에 성소수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심지어 비신자인 지인들과 일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할 때 그 쪽에서 먼저 너 성당 언제 끝나?라고 물어볼 정도가 되었다. 내가 이렇다는 것을 앤간한 주변인들은 알고 있기에 나 역시 그걸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다. 성당에 가서 당당하게 저는 논바이너리 에이섹슈얼 바이로맨틱인 퀴어 성소수자에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와 가깝게 지내는 친한 사람들은 내가 퀴어이면서 동시에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거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내가 퀴어이면서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예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맞닥뜨리곤 한다.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도 신경쓰지 않는다.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렇구나 하고 지나간다.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절반은 그러하고 절반은 나와 멀어지지만 내가 그거에 대해 연연하거나 굳이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상관 없다. 문제는 아예 나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종교계 내에서 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퀴어인데 그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하곤 한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흔들리기보다는 이 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고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으며 뭐가 어찌되었던 나는 이 나라의 시민권자이니 나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 종교의 자유는 종교를 가지지 않을 자유 뿐만 아니라 종교를 가질 자유 역시 포함되기 때문에 너가 종교를 원하지 않고 갖지 않을 자유도 있지만 내가 종교를 가질 자유 역시 있다, 그러니 내가 너의 자유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듯이 너도 내 자유를 존중해달라. 라고 말하곤 한다.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하고 혐성도 부려보았지만 이젠 기도할 뿐이다. 이 세상에는 나처럼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과 함께 내 종교와 신앙을 동시에 지키길 원하는 성소수자도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말할 수 있기를. 그리고 성소수자에게도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그 종교의 자유가 당연히 보장받기를. 더불어 우리를 혐오하는 종교 세력이 있는 만큼 반대편에서 우리와 연대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 주시고 도와주시는 이런저런 종교의 성직자 분들과 수도자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를.




이전 01화 혐오와 차별을 건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