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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Sep 27. 2023

혐오와 차별을 건너

벽장에서 저 너머로 이어지는 무지개 다리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우주만한 이 세상에는 먼지보다 작은 사람들이 있고 모두가 다른 색채와 모양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그 다른 색채와 모양으로 누군가는 혐오와 차별을 겪고 있는 것도 현재진행형인 일이다.


 전에도 종종 말했지만 나는 개신교 집안 출신이다. 부모님은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교회에 미친 사람들이고 어려서부터 나는 선택권 없이 교회에 끌려다녀야 했다. 그리고 지금 고민해보면 참 웃기지도 않는 말이지만 당시 정말 온갖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성소수자는 죄악이고 불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든 나 자신을 감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도 내내 좋지 않았고 기분도 나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몰랐다. 만약 성소수자가 죄악이면 나는 뭐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죽거나 사라져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도달하자 도저히 교회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몸만 교회에 두고 사는 영혼 없고 껍데기 뿐인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성소수자다. 내가 바로 그 죄악에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는 성소수자다. 정확히 말하면 논바이너리(성별을 특별히 정의하지 않고 이를 거부하는 성 정체성)에 에이섹슈얼(무성애)이다. 그것도 뼛속까지 말이다.


 내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이 남들하고 다르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걸 눈치채고 정체화해야 할 시기에 어떻게 해서든 이를 감추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일반인의 삶에 맞추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확하게는 착각이었지만.


 하지만 노력한다 한들 그게 결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변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노력하면 남들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남자를 만나도 손잡기 이상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역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누가 너도 여자네 이런 말을 하면 단순히 기분나쁜 것을 넘어서 불쾌하게 느껴졌다. 이를 반복하면서 혼란 속에서 살다가 이건 그냥 타고난 것이며 바꿀 수도 바뀔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그냥 그대로 내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받아들이고 퀴어로 정체화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고 나니 내 나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요즘 많은 10대와 20대 초반 퀴어들이 보다 어린 나이에 정체화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상당히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스스로를 퀴어로 정체화한 셈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이 무엇이냐. 이제는 본격적으로 벽장을 제대로 나서고자 하는 것이다. 문을 깨부수고 나와 성소수자도 사람이고 퀴어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으며 이상하거나 특별하거나 별날 것 없는 그냥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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