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창틀을 찢을 듯한 바람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지던 날이었다. 동남아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태풍이 갑작스레 한반도로 방향을 틀어, 빠르게 북상 중이라는 예고가 티브이 화면 아래 붉은 자막으로 연신 내보내고 있었다.
"세화야. 아빠 금방 갔다 올 게." 상근이 작업복 지퍼를 올리며 말했다.
"아범아, 운전 조심해라." "걱정 마세요. 근방이니까 잠깐이면 됩니다."
한 해안가 펜션의 창문이 문제가 생겼다는 긴급 호출이었다.
휴일에는 웬만해서는 가족과 있으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펜션 사장님이 사정사정하는 통에 상근은 미간을 좁힌 채 한참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태풍이 얼마 안 가 상륙할 텐데, 한 객실 창문에 문제가 있는지 바람 소리가 심하다며 한 번만 제발 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의뢰는 상근에게 익숙했다. 분명 한 가족 또는 연인이 태풍이 미처 올지 모른 채로 펜션에 입실했을 것이다. 고단한 운전이었기에 짐을 풀고 잠깐 쉬어 볼까 싶어 티브이를 켰다. 그런데 웬걸 채널에서는 연신 돌연 북상한다는 태풍 얘기뿐이다. 이내 걱정하는 가족들 앞에서 손님은 사뭇 불안해져 이것저것 펜션 측에 컴플레인을 걸고 있을 터이다.
그때 상근의 통화를 가까이서 엿듣던 지은이 상근의 등을 툭 친 뒤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상근도 지은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 보이고는 금방 가겠다,라고 짧게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뒤 상근이 지은을 껴안으며 말했다.
"지은아, 금방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늦어도 10시 전에는 돌아올 게." 지은을 안심시키려 한 손으로 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근은 이내 정자와 세화에게 인사하곤, 차 키와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
상근이 나간 뒤, 정자는 현관을 말없이 바라보고는 이내 뉴스로 채널을 돌렸다. 뉴스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리포터를 비추고 있었다. 아마 신참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 리포터는 거센 비바람 속에서는 우산을 써봤 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손으로는 망가진 우산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마이크를 손에 꽉 쥔 채 다급한 목소리로 현장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웃음기 없이 뉴스에 집중하던 정자는 베란다 창문이 흔들릴 때마다 시선을 옮겼다.
한편 부엌에서는 멸치 육수 냄새가 진동했다. 직업 특성상 비바람 부는 날에 더 분주한 남편을 위해, 지은은 으레 뜨끈한 수제비를 준비했다. 보글보글 끓는 육수 위로 지은이 뜬 고운 모양의 반죽과, 세화가 만든 삐뚤삐뚤한 반죽이 떠올랐다.
지은이 국자로 국물을 휘젓던 그때였다.
콰르릉-! 천둥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깜짝 놀란 지은이 쥐고 있던 국자로 냄비 모서리를 쳤다. 펄펄 끓는 국물이 튀어 올라 손등에 튀었다.
"아악!"
"엄마! 괜찮아?"
거실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던 세화가 놀라 달려왔다. 하지만 지은은 벌겋게 부어오는 손을 잡은 채 굳어 있었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늘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식탁 위 수제비는 이미 퉁퉁 불어 터졌다. 거실 시곗바늘이 밤 11시를 조금 넘겼다. 지은이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이제는 연결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에 온몸이 떨려왔지만 진정시키려 애썼다.
정자도 더는 티브이를 보지 못하고 거실을 서성였다.
딩동-
거실에 긴 시간 울려 퍼지던 비바람 소리를 뚫고 초인종이 울렸다.
“아빠다!” 소파에 누워 졸던 세화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지은과 정자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분명 상근이 현관 열쇠를 깜빡하고 두고 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초인종을 누를 리 없으니까. ‘현관 열쇠를 두고 갔나 보다, 많이 젖어서 추웠을 텐데…’ 지은은 상근이 감기라도 걸릴 세라 욕실로 타월을 가지러 들어갔다.
"아빠! 왜 이렇게 늦…"
세화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문밖에는 상근이 없었다. 대신 우비를 입은 낯선 경찰관 두 명이 빗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곤혹스러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 혹시, 김상근 씨 댁 맞습니까?"
세화의 등 뒤로 다가오던 정자의 다리가 꺾였다. 열린 문틈으로, 차가운 비바람이 집 안의 온기를 집어삼켰다.
처음엔 경찰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지 않았다. 금방 다녀오겠다던 상근이 해일에 휩쓸려 갔다는 말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경찰의 말은 이러했다.
상근이 긴급 출장을 나간 펜션에 큰 해일이 덮쳤고, 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다행 중 불행인 것인지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다행히도 인명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수리를 하던 펜션 직원 2명과 상근은 해일을 피할 수 없었고, 그대로 바다로 휩쓸려 갔다고. 이것이 현재까지 알아낸 사실이며, 현재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당장에는 바람이 너무 강해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다라고.
둘 중 상관으로 보이는 경찰이 해당 사실을 무뚝뚝하게 알렸으나, 상근의 가족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진 못했다.
태풍이 지나간 지 하루, 이틀 하고도 삼 일이 더 지났다. 상근의 가족은 주위 친척 몇몇과 함께 현장 인근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대기소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정자와 지은을 대신해, 친척들이 기자들과 시청 관계자들을 상대했다.
닷새째 되던 날 아침, 함께 해일에 휩쓸려갔던 펜션 직원 1명이 결국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대기소는 울음바다가 되었고, 직원의 가족은 시신이라도 찾아서 다행이라며 슬픔 속에 장례를 치르겠다고 결정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자와 지은은 차마 그들을 위로할 수도, 그들의 절망에 동참할 수도 없었다.
이제 남은 실종자는 다른 직원 1명과 상근뿐이었다.
해경 수색이 난항을 겪자, 대기소에 남아있던 친척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수님... 아무래도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슬슬 장례라도…"
정자는 그 말을 듣고 고함을 질렀다. "허튼소리 마라! 내 아들이 죽긴 왜 죽어!" "형수님, 제 말은 현실적으로…" "경찰 선생님들이 찾고 있다 안 하냐! 상근이가 어떤 앤 데, 걔가 날 두고 먼저 간단 말이냐! 산 사람한테 무신 제사상이란 말이냐? 썩 나가라!"
정자는 울부짖으며 친척들을 내쫓았다. 그것은 고집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보였다. 장례를 치르는 순간, 아들의 죽음이 사실이 될까 봐 두려운 모습이었다.
친척들이 물러가자 정자는 떨리는 손으로 세화의 어깨를 잡았다. 눈동자가 텅 비어 있었다. "세화야. 아빠는 저기… 멀리 창문 많은 빌딩 고치러 간 거다. 워낙 큰 공사라 늦는 거다. 밥 잘 먹고 있으면 온다. 알았지?"
이미 중학생이 된 세화는 할머니의 말이 터무니없음을 알았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지은은 쪼그려 앉은 채 눈물을 훔치며 바닥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지은은 알고 있었다. 어부의 딸인 그녀는 바다가 한번 삼킨 것을 돌려주는 법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태풍이 지나간 바다는 말이 없었기에 본능적으로 결말을 감지했지만,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별 소득 없던 해경은 결국 수색을 종료하였고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임시 가족 대기소도 폐쇄하였다.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족은 상근이라는 든든한 뿌리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보험 설계사였던 지은은 휴직계를 냈다. 사람들에게 "가족의 미래를 대비하라"라고 설득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었다. 지은은 마지막 고객 상담을 기억했다.
"설계사님, 혹시 실종 사망 보험금은 언제 나오나요?"
지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매뉴얼대로라면 일반 실종은 5년, 재난 실종은 1년 후 법원에 청구하여 수령할 수 있다,라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말을 뱉으려는 순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남편이 실종 처리된 지 1년째 되는 날이 계산되었다.
“헙…” 지은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죄송해요, 다른 상담사로 바꿔드릴게요” 지은은 묘한 혐오감을 느껴 도망치듯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그 일로부터 얼마 안 가 지점장에게 당분간 일을 쉬겠다고 말하고 휴직계를 제출했다. 지은의 사정을 알고 있던 지점장도 이번 기회에 푹 쉬고 오라며 흔쾌히 휴직계를 수리해 주었다.
일을 쉬게 된 지은은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식구 눈에 띄는 시간에는 나오지 않았다.
똑똑. "엄마! 문 좀 열어봐." 걱정된 세화가 문 앞에서 몇 번이고 지은을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신경질적으로 본인은 괜찮으니 제발 내버려 둬,라는 대답이었다.
대답을 듣던 세화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알코올 냄새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나직한 흐느낌에서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나도 아빠를 잃은 불쌍한 딸인데... 왜 내가 엄마까지 위로해야 하지?'
세화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다. 속으로는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편으로는 본인의 처지가 더 처량하다고 생각했다. 방에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꼈다. 스마트폰을 켜자 배경 화면 속 환하게 웃는 아빠가 그리웠다. 한편으로는 그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가 미웠다. 한참을 울다가 배경화면을 바꿀까 싶었지만, 아빠와의 마지막 약속이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바꿀 수 없었다.
세화의 눈에는 할머니도 엄마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매일 아침이면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식탁에는 정자가 차려둔 밥이 있었지만, 딱히 가족들에게 얼굴을 비추어 주진 않았다.
정자에게도 두 모녀를 챙길 여유는 없었다. 그녀의 일과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의무적으로 식사를 차려두고는 버스를 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 절을 찾는 일이었다.
정자는 절에 도착해 초를 켜고 무릎을 꿇은 뒤 한참을 기도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불쌍한 우리 상근이 얼른 어미 품으로 돌아오게 해 주시옵서서… 관세음보살…”
시간은 각자의 그런 모습으로 한 달하고도 며칠이 흘러갔다. 한 달하고도 며칠이 흘렀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가족보다는 타인에 가까워 보였다.
(2화 끝 / 3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