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나는 ‘어린이’를 생각하면 양가감정이 생긴다. 솔직히 말하면 어린이에 대해 좋은 감정보다 좋지 않은 감정이 더 많다. 물론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이를 볼 때면 마냥 예쁘고 귀엽지만, 떼쓰고 우는 모습을 볼 때면… 바로 채널을 변경한다. 엄마는 거의 20년 동안 어린이집을 운영하셨다. 어렸을 적 용돈을 받고자 어린이집에 갈 때면, 떼쓰고 우는 어린이들을 돌보느라 고생하는 엄마를 보고 자랐다. 어느새 나에게 어린이란 엄마를 괴롭혔던 존재로 각인되어 있음을 느끼곤 한다.
TV 예능 프로그램 중 ‘금쪽 같은 내새끼’를 한동안 즐겨봤다. 금쪽이의 문제 행동이 고쳐지는 과정을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어린이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금쪽이들은 본인의 문제 행동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문제 행동에 대해 어린이의 사연이 담겨있기도 하며, 엄마, 아빠의 힘든 사정을 알고 이해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던 어린이들도 본인만의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었다.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다양한 어린이가 등장한다. 기발한 생각을 가진 어린이, 정중한 어린이, 모험을 즐기는 어린이, 단호한 어린이, 다정한 어린이 등. 저자는 이런 다양한 어린이의 세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나 또한 어린이 시기를 통과하고 어른이 되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어린이 시기의 일들은 까맣게 잊은 어른이 되고 말았다. 책을 읽으며 어린이에 대한 나의 인식과 어린이였던 나에 대해 다시 떠올려 보았다. 열 살 무렵 학교 도서관에서 <열 살이면 세상을 알만한 나이>라는 책을 빌려 읽었다. 세상을 다 알고 있다며 우쭐대며 책을 빌린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만약 어린 시절 저자의 독서 교실에 다녔다면? <열 살이면 세상을 알만한 나이> 책을 빌려 가져 갔다면 저자의 반응은 어땠을까? 세상을 알고 있다며 우쭐대는 나를 존중해주는 저자의 모습이 상상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따뜻한 시선 덕분에 금쪽이 같던 나의 어린 시절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어린이들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내느라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데, 어른으로서 응원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