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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09. 2020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1.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    

  

사진을 대학에서 전공하였고 사진의 관계된 일을 하고 있지만 항상 머릿속에 근원적인 물음을 가지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 사진은 왜 찍고(Why), 무엇을 찍으며(What), 어떻게 보여주려(How) 하는지 항상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 대한 답은 항상 변하고, 알 수 없는 물음으로 남아 있는 것인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근원적인 질문이 남아있다. 이런 질문들은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진행되는 문제이고, 고갱도 처절한 자기 고민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원제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우리는 누구인가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이다이 작품은 고갱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건강 악화와 빈곤딸의 죽음으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던 고갱은 이 작품을 한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완성하였다제목은 자신이 직접 붙였으며 습작 데생을 거치지 않고 직접 캔버스에 작업하였다고갱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며스스로 이 작품을 자신이 그린 모든 작품을 능가하는 역작이라고 말했다. 1)


1) 프란시스 쉐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897년, 141×376㎝, 캔버스에 유채, 보스턴 미술관 소장


그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누워 있는 어린 아기를 통해 우리의 과거를 묻게 되고, 그림 중앙에 서서 익은 과일을 따는 젊은이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보게 된다. 또 화면 왼쪽 아래 웅크리고 귀를 막아 닥쳐올 고통을 괴로워하는 늙은 여인의 모습에서는 우리의 미래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즉, 인간의 탄생, 삶 그리고 죽음의 3단계를 표현한 것이다.     


완전한 자유를 찾고자 그의 가족도 버린 채 타이티(Tahiti) 섬으로 떠나, 귀족적 야만인들 속에서 그것을 찾으려 했던 프랑스 화가요 루소의 추종자인 고갱이 직면했던 딜레마를 생각해 보라. 타이티에서 얼마 동안 살고 난 후에야 그는 귀족적 야만인 생활의 이상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그림에서 인간은 그 자신 속에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소원하기만 한 것일까? 루소의 자율적인 자유의 개념을 다르게 보았던 사람은 칸트였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으로 동일한 문제를 다르게 설명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연과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판단하고 살아간다. 칸트는 이런 세계를 실체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로 말한다. 실체의 세계는 의미와 가치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현상의 세계는 무게를 달 수 있고 측정이 될 수 있는 세계, 외적인 세계, 과학의 세계로 보고 있다. 칸트는 또한 이 두 세계를 합치려고 노력했고, 결국 자유의 개념에서 이성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문주의자의 딜레마는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는 현상의 세계와 실체의 세계를 하나로 묶을 길이 없었다.     


헤겔을 거쳐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이성은 항상 염세주의로 흐른다는 관념을 절정에 도달하게 했다’ 즉, 이성을 능가해서 ‘상위의 수준’은 신앙의 도약을 통해서만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루소에게는 자발적인 자유/자율적인 자연, 칸트에게는 실체의 세계/현상의 세계였고, 키에르케고르에게는 비이성=신앙-낙관주의/이성=염세주의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근원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한 해답이 많지 않다. 낙관주의자이든, 염세주의자든,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처럼 실존주의자이든 우리는 삶의 경험을 통해 이성과 감성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내려가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라그러면 세가지 말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인간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그리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 세가지를 알게 되는 날 너는 하늘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2)


2)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랑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게 될 때가 많고 가치기준 없이 바삐 돌아간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돈과 시간 모두 넘쳐나는 그런 행복은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 이루어지는가. 신문지상이나 해외 토픽에서 종종 로또 복권 당첨은 비극적 사건(자살을 하거나 심장마비, 도박으로 탕진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 현대사회가 아무리 소비사회이고, 황금만능주의라도 사랑과 행복은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중인가요? 우리는 어디에서 사진을 찍고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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