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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Jan 09. 2020

사진에 관한 짧은 단상

2. 우리는 왜 사진을 찍는가?

파이닝거(Feininger)는 말한다, “당신은 무엇을 보며,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가 안된다. 왜냐하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신이 ‘그것에서 무엇을 보느냐’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떻게 찍느냐는 왜 그것을 찍느냐보다 덜 중요하다. ‘왜’는 ‘어떻게’에 대한 열쇠이다. 왜 어떤 피사체를 찍고 싶은지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 그 방법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곧, ‘왜’와 ‘어떻게’는 인과(因果) 관계인 것이다.      


우리는 왜 사진을 찍는가? 사진으로 우리는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언어를 통해서, 다시 말해서, 말로 이야기를 나눈다. 사진은 시각언어이다. 사진은 메시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한다. 사진이 디지털화되면서 사진은 이제 전문가들의 특수한 언어가 이제는 아니다. 디지털로 대중화된 사진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어디든 넘쳐난다. 기록이든 표현이든 사진은 메시지로서, 언어로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보도사진은 하나의 메시지이다이 메시지의 총체는 송신원전달경로그리고 수신처로 구성되어 있다송신원은 신문의 편집으로전문가 집단의 일부가 사진을 찍고일부는 사진을 선별하며구성하고처리하며또 다른 일부는 인화설명논평한다수신처는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다그리고전달경로는 신문 그 자체로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그 주변은 원고제목설명문조판 형태로 구성되는 경쟁 메시지들의 복합체이며보다 추상적인 그러나 <생기를 불어넣어주는것이 아닌 것으로 신문의 제명 자체다(왜냐하면 이 제명은 엄밀한 의미로 메시지 해독을 강력하게 방향 전환시키는 앎을 구성하기 때문이다하나의 사진은 <오로로Aurore>1)에서 <위마니테Humanite>2)로 옮겨 가면서 그 의미가 바뀔수가 있는 것이다이러한 검증작업은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1) 보수계열의 신문 2) 공산당계열의 신문

사진은 하나의 메시지이며, 사진(寫眞)이란 용어에서 보듯이 진실을 묘사하는 언어로서 얼마든지 그 의미는 전달과정을 통해서 왜곡되고, 곡해에서 사용되곤 한다. 과연 사진은 진실을 전달하는 메시지로서 가능한 것인가? 사실(Fact)과 진실(Truth)의 차이는 관점에 차이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과연 사진은 진실을 모사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던진다. 정치적인 민감한 주제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해석하곤 한다. 


사진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인가사진은 무엇을 송신하는가정의상으로장면 그 자체문자 그대로의 현실이다대상에서 그 이미지까지에는분명히 비율원근색채의 축소가 있다그러나이러한 축소는 그 어떤 경우에도(용어의 수학적 의미에서의변형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8일(현지시간)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 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세월호 유족에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그에게“‘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중립이란 무엇일지?     


사진을 한지도 27년이 지났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면서 항상 질문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객관적 시각에 대한 물음이었고, 기록에 기반을 둔 사진이 객관적 시각이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지에 대해서. 항상 어느 편도 아닌 객관적 시각을 가지려 항상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정공법적인 접근 방식을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결코 중립적인 시각이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객관적 시각이라 주장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와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에 의해서 언제나 변질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기록자로서, 증언자로서, 목격자로서,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접근하고 가야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가고, 많은 담론과 이야기들이 잊혀져간다. 기록을 넘어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다그러나이미지는 적어도 유사물analogon이며또한 사진을 정의하는 것은 상식선에서 바로 유사적 완벽함이다이와같이 해서사진 이미지의 특수한 본질규정이 명백해진다그것은 코드없는 메시지이다이는 곧바로 중요한 필연적 귀결을 끌어내야만 하는 명제이다그것은사진 메시지는 연속적 메시지라는 것이다코드없는 또 다른 메시지는 존재하는 것인가언뜻 보기에는 그렇다그것은 소묘회화영화연극과 같은 바로 현실의 모든 유사적 재생들이다그러나 사실상이 각각의 메시지들은유사적 내용 그 자체(장면대상풍경이외에즉각적이며 분명한 방식으로일반적으로 우리가 재생의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인 보충적 메시지를 발전시킨다거기에서는 이차적 의미가 문제되는데그 시니피앙은 제작자의 영향으로 이미지의 어떠한 <처리>이며그 시니피에는 미적이든 이데올로기적이든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어떠한 <문화>를 가리킨다요컨대이 모든 모방적 <예술들>은 두 가지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다그것은 유사물 그 자체인 외시적(外示的)3) 메시지와어느 정도까지는 사회가 생각하는 것을 읽게 해주는 방식인 공시적(共示的)4) 메시지이다. 5)


3) denotation. 외연에 의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의미를 가리킴

4) connotation. 기호의 제1차적 의미가 제2차적 의미의 시니피앙이 되어 그것이 다시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 간단히 말해서, 하나의 단어나 진술이 내포하는 암시적 의미를 가리킴

5) 이미지와 글쓰기, 롤랑 바르트 이미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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