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2008년
“문제는 이 여자를 여기에 내버려 둘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야. 물론 여기에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의사가 말했다. “그럼 힘을 내야죠.” 그들은 일을 시작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포르투갈 출신 주제 사라마구(1922~2010), 그는 평생의 문학을 통해 “눈을 떠라”라고 설파한 사람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947년 '죄악의 땅' 을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내내 불편하다. 한 남자가 운전 중 신호대기에 갑자기 눈이 머는 사건으로 시작되어 모든 사람이 눈이 멀게 된다. 마치 전염병을 옮듯, 눈먼자들을 만나면 모두가 눈이 멀게 된다. 그리고, 정부는 눈이 멀면서 하얗게 보이는 증상이 전염성일 것으로 판단한 눈먼 사람들과 이들과 접촉한 보균자 들을 정신병동으로 쓰이던 건물에 격리 수용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면서 탈출하려고하면 사살해도 좋다고 한다. 소설의 화자는 안과의사의 아내이고, 모두가 눈이 먼 상황에서 그녀만 눈이 멀지 않고, 남편을 돕기 위해 실명된 척하면서 병동으로 따라 들어간다. 병동은 인간사회의 추악한 면을 목격한다. 과연 눈이 먼 상황이나, 눈이 멀지 않은 상황이나, 우리의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선한 사람들의 희생과 여전히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은 반복한다.
눈이 먼 남자는 초조한 마음에, 얼굴 앞으로 두 손을 내밀어, 그가 우유의 바다라고 묘사했던 곳에서 헤엄치듯이 두 손을 휘저었다. 입에서는 벌써 도와달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절망으로 넘어가려는 마지막 순간에, 눈이 먼 남자는 다른 남자의 손이 자신의 팔을 가볍게 잡는 걸 느낄 수 있었다. (P13)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아내는 일어서서 문을 열러 갔다. 그러나 층계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인터폰을 받아보았다. 알았어요. 금방 내려갈게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남편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대요. 아파트로는 올라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대요. 보건부가 정말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갑시다.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내는 남편이 마지막 몇 계단을 내려가 구급차에 타는 것을 돕고 나서 가방을 가지러 돌아갔다. 그녀는 가방을 혼자 들어올려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어 그녀는 구급차에 올라 타 남편 옆에 앉았다. 구급차 운전사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저 사람만 데려가야 하오. 그게 내가 받은 명령이오. 어서 내려주셔야겠소. 여자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나도 데려가야 할 거예요.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 (P57)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엄마 보고 싶어. 그러나 그 말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마치 어떤 자동 반복 기계가 중단했던 말을 엉뚱한 시간에 다시 불쑥 내뱉은 것 같았다. 의사가 말했다, 방금 그 명령을 들어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군, 우리는 격리된 거야, 과거의 어떤 전염병 환자들보다 더 엄중하게 격리가 된 거야, 이 병의 치료약이 발견되기 전에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겠군. (P69)
시간은 흘러갔고, 눈먼 사람들은 잠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 끝까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진짜 어둠이 흐릿한 해가 되어버린 그들의 두 눈을 완전히 꺼버릴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팔이 닿지 않는 높은 천장에 걸린 세 개의 전등은 침대들 위로 흐리고 노르스름한 빛을 던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림자도 만들지 못하는 빛이었다. 마흔 명이 잠을 자고 있거나, 잠을 자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꿈을 꾸면서 한숨을 쉬거나 중얼거리고 있었다. 꿈에서는 앞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것이 꿈이라면, 나는 깨어나고 싶지 않아,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손목시계는 모두 멈춰 있었다. 태엽을 감아주는 것을 잊었거나, 아니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P106-107)
작가는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척,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으로 윤리가 말살된 세상은 눈이 먼 상황이 아니겠는가? 하고, 만약 모두가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의지하며 도와가면서 살순 없는 건가? 전영의 노래 <모두가 천사라면>이 떠오른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날개가 달려 있겠지 푸른 하늘 위로 새처럼 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 눈먼 사람들, 그것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들처럼, 평소 습관대로 매애 하고 울면서, 그래, 약간 혼잡하긴 하지만 그것이 늘 살아온 방식이니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친밀하게 꼭 붙어서, 서로 숨결과 냄새를 섞으며 차분하게 들어갔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울음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도 있고, 두려움 때문에 또는 격분 때문에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효과는 없지만 무시무시한 협박을 하기도 한다, 너희들 내 손에 잡히기만 하면 눈알을 뽑아버릴 거야. 여기서 너희들이란 아마 군인들일 것이다. (P158-159)
눈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 그와 세계를 갈라놓던 문을 열어주고,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가라, 너는 자유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그는 길 한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정신병원이라고 정의된 곳에서 살았다. 사실, 그 합리적인 미로에서 사는 것과 도시라는 미쳐버린 미로로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P307)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남자는 하얀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심장에 일곱 개의 칼이 꽂혀 있었고, 눈에는 역시 하얀 붕대가 덮여 있었다. 그런 식으로 눈을 가린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성당에 있는 모든 성상들이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조각의 눈에는 하얀 천을 묶어놓았고, 그림의 눈에는 하얀 물감으로 두텁게 붓질을 해놓았다. 어떤 여자는 딸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어떤 남자는 책을 펼치고 있고, 그 위에 어린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또 한 남자의 몸에는 많은 화살이 박혀 있었는데, 그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불이 켜진 등을 들고 있는 여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손과 발과 가슴에 상처가 있는 남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사자와 함께 있는 남자는 사자와 남자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양과 함께 있는 남자도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독수리와 함께 있는 남자도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머리에는 뿔이 달리고 발에는 발굽이 달린 남자가 쓰러져 있고 창을 든 남자가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저울을 든 남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하얀 백합을 든 늙은 대머리 남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또 다른 노인은 칼집을 벗긴 칼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그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비둘기와 함께 있는 여자는 그와 비둘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까마귀 두 마리와 함께 있는 남자는 셋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눈을 가리지 않은 여자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파낸 두 눈알을 은쟁반에 받쳐들고 있었다. 의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당신한테 이야기해주어도 믿지 않을 거에요. 이 성당에 있는 모든 성상들은 눈을 가리고 있어요. 그거 이상한 일이군. 왜 그럴까.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어쩌면 자신이 남들과 마찬가지로 눈이 멀 것임을 깨닫는 순간 믿음이 심하게 흔들린 사람이 한 일일지도 모르죠. 혹시 이 동네 사제가 한 일일지도 몰라요. 눈먼 사람들이 성상들을 볼 수 없다면, 성상들도 눈먼 사람들을 볼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죠. 원래 성상들은 못 보잖아. 그렇지 않아요. 성상들은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봐요. 다만 이제 실명이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되는 바람에 성상들도 못 보게 된 거죠. 당신은 여전히 볼 수 있잖아. 점점 안 보이고 있어요. 설사 내가 시력을 잃지 않는다 해도, 나를 봐줄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나도 점점 눈이 멀어갈 거에요. 사제가 성상들의 눈을 가린 거라면 좋겠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에요. 그게 말이 되는 유일한 가설이야. 그게 우리의 수난에 어떤 위엄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지. 난 눈먼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이 안으로 들어온 그 사제를 상상하고 있어. 그는 결국 그 세계로 돌아가야겠지, 그 자신도 눈이 멀기 위해서 말이야. 난 닫힌 문들, 텅 빈 성당, 그 안의 정적을 상상하고 있어. 난 성상들, 그림들을 상상하고 있어, 그가 성상이나 그림을 하나씩 찾아가는 모습이 보여. 제단에 올라가 붕대를 두르고, 저절로 풀어져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매듭을 두 번 단단히 묶는 모습이 보여. 그림들이 맞이한 백색의 밤이 더 짙어지도록 하얀 물감을 두 번 칠하는 모습이 보여. 그 사제는 모든 시대와 모든 종교에서 최악의 신성 모독을 저지른 사람임에 틀림없어. 그러나 그 신성 모독은 가장 공명 정대하고 또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것이기도 해.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신은 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선포하러 여기에 온거야.
<눈먼자들의 도시, P448~450>
그럼 계속 눈이 안 보일까요. 아냐. 다시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그래서 모든 게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가 수술을 해줘야지. 몇 주 뒤면 볼 수 있을 거야.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의사의 아내는 일어나 창으로 갔다.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한 거리,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P461)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 <눈뜬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lucidez)>,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 세 권을 같이 보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