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의 소리山の音> 1954년
성(性), 죽음, 꿈의 하모니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즈의 무희>(1926), <설국>(1937), <천마리 학>(1952), <산소리>(1954) 등의 소설을 남겼고, 1968년 일본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영화 <산의 소리>(山の音/ Sound of the Mountain, 1954)는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이야기다. 소설 <설국>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1939년, 1965년 만들어졌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01년 유민이 출현한 영화 <신설국>도 있다.
“나는 말이지, 요즘 머릿속이 매우 멍해져서 해바라기를 보아도 머리만 생각나, 저 꽃처럼 머리가 맑아질 수 없을까? 아까 전철 안에서도 머리만 세탁하거나 수선을 맡길 수 없을지 생각했어. 머리를 싹둑 자른다고 하면 거칠긴 하지만, 머리를 잠깐 몸통에서 떼어내 세탁물처럼 ‘자, 이걸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며 대학 병원에 맡길 수 없을까? 병원에서 뇌를 씻어내거나 나쁜 곳을 수선하는 동안 사흘이든 일주일이든 몸통은 푹 자는 거야, 뒤척이지도 않고 꿈도 꾸지 않으면서 말이지.” (p47-48)
1. 성(性)
천진한 꿈이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얘기하려고 마음먹고 신고는 빗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잠이 들었는데, 이윽고 사악한 꿈에서 다시 깨어났다.
신고는 뾰족한 느낌의 늘어진 유방을 만지고 있었다. 유방은 부드러웠다. 그것이 부풀지 않는다는 건 여자가 신고 손에 반응할 마음조차 없다는 뜻이다. 뭐야, 시시하잖아.
유방을 만지고 있는데도 신고는 상대 여자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모른다기보다 누구인지 생각하려들지 않은 것이다. 여자의 얼굴도 몸도 없고 단 두 개의 유방만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제서야 처음으로 누군지 떠올려보니 슈이치의 친구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신고에게는 양심의 가책도 흥분된 자극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아가씨의 인상은 미약했다. 역시 모습은 희미했다. 유방은 출산을 겪지 않은 여자의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처녀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순결의 흔적을 손가락으로 느끼던 신고는 깜짝 놀랐다. 난처했지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운동선수였던 걸로 하는 거야”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투에 놀라서 신고의 꿈은 깨져버렸다.
“뭐야, 시시하잖아.” 그건 모리 오가이가 죽을 때 한 말이라는 게 생각났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음란한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오가이가 죽을 때 한 말을 먼저 떠올리며 꿈속의 말과 결부시킨 건 신고의 자기변명일 것이다.
꿈속의 신고에게는 사랑도 기쁨도 없었다. 음란한 꿈에 음란한 생각조차 없었다. 완전히 ‘뭐야, 시시하잖아’였다. 그리고 시시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p318-319)
2. 죽음
친구라곤 해도 대학 동창으로, 그리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
벌써 꽤 쇠약해졌지만 병실에는 곁에서 시중드는 간호사밖에 없었다.
신고는 그 친구의 아내가 살아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미야모토와 만나나? 못 만나더라도 전화로 그걸 부탁해주게나.” 친구는 말했다.
“그거라니?”
“설날 동창회 때 얘기했던 것 말이야.”
청산가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신고는 짐작했다. 그러고 보니 병자는 자신이 암이라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신고처럼 예순을 넘긴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노쇠의 고장과 병사(病死)의 공포가 이러니저러니 화제가 되기 마련이므로, 미야모토의 공장에서 청산가리를 사용하고 있으니 만일 치료가 어려운 암에라도 걸리면 그 독약을 전해주자고 누군가 말을 꺼냈다. 끔찍한 병을 오래 끌어봤자 비참해진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죽음을 선고받을 바에야 스스로 죽음의 시기를 선택할 자유를 갖고 싶다는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산소리, P367-368>
상대 남자를 쓸쓸하게 생각한 것이었는데 이윽고 그 쓸쓸함은 신고 자신 안에 침전되어갔다.
호도가야역과 도즈카역 사이인 나가초바였다. 가을 하늘이 저물었다.
남자는 신고보다는 젊었지만 쉰 중반은 지나 보였다. 요코하마에서 내린 여자는 대충 기쿠코 나이 정도일까? 기쿠코 눈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달랐다.
근데 그 여자는 왜 이 남자의 딸이 아닌 것일까, 하고 신고는 생각했다.
신고의 불가사의함은 더욱 깊어져갔다.
세상에는 부모와 자식으로밖에 볼 수 없을 만큼 닮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 아가씨에게는 어쩌면 이 남자 한 사람뿐이고, 이 남자에게는 그 아가씨 한 사람뿐일 것이다. 서로에게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아니면 두 사람 같은 경우는 이 세상에 단 한 쌍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아무런 인연도 없이 살아가고 상대의 존재를 꿈에도 모른다.
그 두 사람이 문득 전철을 같이 타게 되었다. 처음으로 우연히 만났고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긴 인생 중 단 삼십 분이다. 말도 주고받지 못하고 헤어져버렸다. 옆에 앉았어도 서로 얼굴도 유심히 보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닮은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기적을 만난 사람이 자신의 기적을 알지 못하고 가버렸다.
불가사의하게도 감동을 받은 것은 제삼자인 신고였다.
그러나 두 사람 앞에 우연히 앉아서 기적을 관찰한 자신도 기적에 참가한 것일까, 하고 신고는 생각했다.
부녀지간처럼 닮은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일생 중 삼십 분만 우연히 만나게 하여 그것을 신고에게 보여준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
더구나 젊은 여자는 기다리던 사람이 오지 않아 아버지로밖에 볼 수 없는 남자와 무릎을 나란히 하고 한자리에 앉았다.
이런 것이 인생인가, 하고 신고는 중얼거릴 뿐이다.
전철이 도즈카에 멈추자, 자고 있던 남자는 당황해 일어나더니 짐칸 위의 모자를 신고 발 언저리에 떨어뜨렸다. 신고는 모자를 주워주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남자는 먼지도 털지 않고 쓰고 갔다.
“이상한 일도 있구나, 생판 남이었어.” 신고의 목소리는 해방되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산소리, P400-401>
3. 꿈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잠이 깨었을 때는 아직도 꿈속에 나온 두 개의 하얀 알이 보이는 것 같았다. 벌판에 모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에 알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한 개는 타조 알인데 상당히 컸다. 한 개는 뱀 알로 크기는 작았지만, 껍데기가 조금 깨져 귀여운 새끼 뱀이 머리를 내밀고 움직이고 있었다. 신고는 귀엽다고 생각하며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기쿠코와 기누코의 일을 생각하던 중이라 이런 꿈을 꾼 게 분명했다. 어느 쪽의 태아가 타조 알이고, 어느 쪽의 태아가 뱀 알인지는 물론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뱀은 새끼를 낳았던가, 알을 낳았던가?” 신고는 혼잣말을 했다. (p376-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