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프카의 굴> 2014년
<변신>에서는 한 인간을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한다. “그레고르는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학술원에의 보고>에서는 원숭이로 변했고, 한 마리 짐승은 <굴>에서 지하의 굴을 파는 존재(두더지)로 변한다.
카프카는 프라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한 보험국 관리로 일하며 밤에는 필사적으로 글을 쓴 사람이다. 프라하와 자신의 그 답답한 생활을 퍽 벗어나고 싶어 했건만 결국 떠나지 못했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 마흔한 살 결핵으로 죽었다. 카프카의 생애와 카프카의 정신 상태를 카프카의 소설 <성>에 빗대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카프카>(1991)는 흑백에서 인간을 실험하는 성 안의 모습은 컬러로 담고 있다. 또 다른 조첸 알렉산더 프레덴크 감독의 영화 <카프카의 굴>(2014)에서는 인간의 실존문제를 다루고 있다. 감독은 불안증에 사로잡힌 프란츠를 감시카메라와 셀프카메라를 통해서 일상을 기록한다. 감독은 영화에서 매우 높은 건물과 시각적으로 강렬한 색을 통해 ‘굴’을 재현하였으며, 밀실 공포증의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불안증을 보여준다. 카프카가 느꼈던 그 시대의 고립, 두려움과 외로움은 여전히 현대에도 진행중이다. 이 영화는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저는 그전까지 출구를 무척 많이 가지고 있었건만 그때부터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겁니다. 제가 아주 들러붙어버렸던 겁니다. 설령 사람들이 저를 못질해 박아놓았다 하더라도 그로써 저으 이동의 자유가 이보다 더 줄어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왜 그럴까? 발가락 사이의 살을 긁어보아라, 그 이유를 찾지는 못할 거다. 등을 쇠창살에 대고, 그게 너를 두 쪽 낼 지경까지 눌러보아라, 너는 그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저는 출구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출구 없이는 살 수 없으니 만들어내야만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이 궤짝벽에 붙어앉은 채 - 저는 어쩔도리 없이 죽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원숭이들이란 하겐벡 상사에서는 궤짝벽에 붙어 있어야 하는 동물이거든요 - 자아, 그리하여 저는 원숭이이기를 그쳤습니다. 제가 어찌어찌해서 배로 짜냈음에 틀림없는 명석하고 멋진 사고의 과정이었습죠. 원숭이는 배로 생각하니까요.
제가 출구란 말을 무슨 뜻으로 쓰는지 똑바로 이해받지 못할까 걱정이 됩니다. 저는 이 말을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빈틈없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저는 일부러 자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방을 향해 열려 있는 자유라는 저 위대한 감정을 뜻하는게 아니거든요. 원숭이였을 때 저는 아마도 그런 감정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인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그때도 오늘날도 자유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자유로써 사람들은 인간들 가운데서 너무도 자주 기만당합니다. 그리고 자유가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로 헤아려지는 것과 같이, 그에 상응하는 착각 역시 가장 숭고한 감정의 하나입니다. 저는 쇼에서 제가 등장하기 앞서 곡예사 한 쌍이 저 위 천장에서 그네식 철봉을 타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훌쩍 뛰어넘고, 그네를 타고, 도약을 하고, 서로가 둥실 떠 서로의 품안으로 떨어지고, 하나가 이빨로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물어 나릅니다. ‘이것도 인간 자유로구나’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돋보이려는 이 안하무인의 율동도’ 신성한 자연을 이따위로 경멸하다니! 그 어떤 건축물도 이 광경을 보고 원숭이다움이 터뜨린 웃음 앞에서는 지탱을 못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자유는 전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의 출구를 오른쪽, 왼쪽, 그 어디로든 간에, 저는 다른 요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출구 또한 비록 하나의 착각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요구는 작았습니다. 착각이 더 크지는 않을 테지요. 계속 나아가자, 계속 나아가자! 계속 나아가자! 궤짝벽에 몸을 눌러 붙인 채 팔을 쳐들고 가만히 서 있지만은 말아야지.
오늘 저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지극히 큰 내면의 평정이 없었더라면 제가 결코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는 걸 말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학술원에의 보고, P110-111>
소설 <굴>은 카프카가 죽기 전인 1923년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이주해 쓴 미완성 단편으로 예술가로서의 고독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굴을 팠는데 잘된 것 같다. 밖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커다란 구멍 하나뿐이나, 이 구멍이 사실은 그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아 몇 걸음만 지나면 단단한 자연석과 맞닥뜨리고 만다. 이런 꾀를 의도적으로 짜냈다고 뻐기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허사로 돌아간 많은 굴파기 시도의 하나의 잔재였으나, 결국 이 구멍 하나를 무너뜨려버리지 않고 두는 것이 나에게 유리해 보였다. 물론 꾀라는 것이 허다히 제 꾀에 넘어가 제 목을 조름을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느니만큼 도무지 이 구멍으로써 여기 무엇인가 찾아내 볼 만한 것이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게 하는 것은 확실히 대담하기까지하다. 그렇지만 내가 비겁하고, 아마도 오로지 비겁했던 탓에 굴을 파기 시작했다고 믿는 사람은 나를 잘못 안 것이다. 이 구멍에서 천 걸음쯤 떨어져, 걷어낼 수 있는 이끼층에 가리어져, 굴로 통하는 진짜 통로가 있는데 그 통로는 도무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안전하게 되어 있었다. 분명, 그 누군가 이끼를 짓밟거나 밀어붙이면 들어올 수는 있고 그러면 거기에 나의 굴이 다 드러나고, 내킨다면 -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흔치 않은 어떤 능력이 필요함을 잘 알아두셔야겠지만 - 밀고 들어와 모든 것을 영영 짓부수어놓을 수 있다. 그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나의 인생이 그 절정기에 있는 지금에조차도 완전히 평정된 시간이라고는 거의 한 순간도 없고, 저기 저 어두운 이끼 속의 자리에서 언젠가 나는 죽어야 할 것이며, 자주 꿈에 잠겨 탐욕한 코를 킁킁거리며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또한 언제든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새로이 출구를 만들 수 있게끔, 위는 단단한 흙이 얇은 층을 이루고 밑은 푸석한 흙으로 된 이 입구 구멍을, 내가 스스로 정말로 무너뜨려 막아버릴 수도 있으리라고들 생각하리라. 그렇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름이 아니라 신중함이 내가 즉시 도망갈 수 있는 가능성을 요구하고, 다름이 아니라 신중함이 유감스럽게도 퍽이나 자주, 생명을 건 모험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정말이지 고달픈 헤아림이니 이따금씩은 명석한 두뇌가 스스로에게서 느끼는 기쁨이 계속 헤아려 나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즉시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더라도 전혀 예기치 못한 쪽에서 공격받을 수도 있을 것 아닌가? 내가 나의 집 가장 깊은 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사이 천천히 그리고 소리없이 적수가 그 어디선가 나를 향하여 뚫고 들어오고 있다. 나는 나의 적수가 나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어쩌면 내가 그를 모르듯 그 역시 나를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덮어놓고 흙을 마구 파 뒤집는 우악스러운 강도들이 있는 법이다. 나의 굴이 엄청나게 기니까 그들도 어디선가는 나의 길과 맞닥뜨릴 가망이 있다. 물론 나는 내 집에 있으며 모든 길과 향배를 다 잘 안다는 이점(利點)이 있다. 강도 쪽에서 나한테 사로잡힐 공산이 크다. 달톰하고 맛있는 먹이로. 그러나 나는 늙어가고 있으니 나보다 원기왕성한 자가 많고 적수는 무수히 있으니 내가 어떤 적 앞에서 도망치다가 다른 적의 올가미로 달려들어 가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 그 무슨 일인들 못 일어나겠는가! 아무려나 나는 밖으로 나가기 위하여 더 이상 작업하지 않아도 되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완전히 열린 출구가 그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이 꼭 있어야겠다.
<프란츠 카프카, 굴, P119-121>
내가 굴을 내 자신을 위하여 팠지 방문자를 위하여 판 것이 아니니, 아마 그를 들어오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나를 굴로 들어가게 해준 대가로도 나는 그를 들여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자면 내가 그를 혼자 들여보내든가 우리가 같이 내려가야 하는데, 그를 혼자 들여보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같이 내려간다면 그가 나에게 가져다 주어야 할 바로 그 이점(利點), 내 뒤에서 망을 봐준다는 이점은 사라지고 말 테니까. 그리고 신뢰는 어떤가? 마주 보고 믿는 사람을 보지 않고도, 이끼 덮개가 우리를 갈라놓는데도 내가 믿을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을 같이 동시에 감시하거나 적어도 감시할 수 있을 때 누구를 신뢰하기란 그런 대로 제법 쉬우며, 어쩌면 누군가를 멀리서 신뢰하는 것까지도 가능하겠지만, 굴 안에서 그러니까 하나의 다른 세상으로부터 바깥에 있는 그 누군가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것, 그건 내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까지는 도대체 필요치도 않다, 내가 내려가는 도중에나 내려간 후에 인생의 무수한 우연들이 신뢰한 그 사람의 의무의 이행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과 그가 눈곱만큼이라도 제지를 받는 날에는 그것이 나에게 그 얼마나 예상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나는 내가 혼자이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전혀 한탄할 일이 아니다. 그럴 사람이 없다고 분명 이점을 잃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손실을 면하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내 자신과 굴뿐이다.
<프란츠 카프카, 굴, P136-137>
‘불안, 소외,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카프카 자신의 내면세계나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필연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다만 이미지들과 이름들에만 이를 수 있으며, 성을 빙빙 돌며 입구를 찾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가끔 전면을 스케치하고 있다. 이 세상은 아무리 탐구해봐도 사물의 진정한 내적 본질에는 이를 수 없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