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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Sep 27. 2022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

영화 <눈먼자들의 도시> 2008년

문제는 이 여자를 여기에 내버려 둘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거야물론 여기에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의사가 말했다. “그럼 힘을 내야죠.” 그들은 일을 시작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포르투갈 출신 주제 사라마구(1922~2010), 그는 평생의 문학을 통해 “눈을 떠라”라고 설파한 사람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947년 '죄악의 땅' 을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우리에게 질문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내내 불편하다. 한 남자가 운전 중 신호대기에 갑자기 눈이 머는 사건으로 시작되어 모든 사람이 눈이 멀게 된다. 마치 전염병을 옮듯, 눈먼자들을 만나면 모두가 눈이 멀게 된다. 그리고, 정부는 눈이 멀면서 하얗게 보이는 증상이 전염성일 것으로 판단한 눈먼 사람들과 이들과 접촉한 보균자 들을 정신병동으로 쓰이던 건물에 격리 수용하고 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면서 탈출하려고하면 사살해도 좋다고 한다. 소설의 화자는 안과의사의 아내이고, 모두가 눈이 먼 상황에서 그녀만 눈이 멀지 않고, 남편을 돕기 위해 실명된 척하면서 병동으로 따라 들어간다. 병동은 인간사회의 추악한 면을 목격한다. 과연 눈이 먼 상황이나, 눈이 멀지 않은 상황이나, 우리의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선한 사람들의 희생과 여전히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은 반복한다.        

작가는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척,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으로 윤리가 말살된 세상은 눈이 먼 상황이 아니겠는가? 하고, 만약 모두가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의지하며 도와가면서 살순 없는 건가? 전영의 노래 <모두가 천사라면>이 떠오른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날개가 달려 있겠지 푸른 하늘 위로 새처럼 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남자는 하얀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심장에 일곱 개의 칼이 꽂혀 있었고, 눈에는 역시 하얀 붕대가 덮여 있었다. 그런 식으로 눈을 가린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성당에 있는 모든 성상들이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조각의 눈에는 하얀 천을 묶어놓았고, 그림의 눈에는 하얀 물감으로 두텁게 붓질을 해놓았다. 어떤 여자는 딸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어떤 남자는 책을 펼치고 있고, 그 위에 어린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또 한 남자의 몸에는 많은 화살이 박혀 있었는데, 그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불이 켜진 등을 들고 있는 여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손과 발과 가슴에 상처가 있는 남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사자와 함께 있는 남자는 사자와 남자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양과 함께 있는 남자도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독수리와 함께 있는 남자도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머리에는 뿔이 달리고 발에는 발굽이 달린 남자가 쓰러져 있고 창을 든 남자가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는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저울을 든 남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하얀 백합을 든 늙은 대머리 남자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또 다른 노인은 칼집을 벗긴 칼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그도 눈을 가리고 있었다. 비둘기와 함께 있는 여자는 그와 비둘기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까마귀 두 마리와 함께 있는 남자는 셋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눈을 가리지 않은 여자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파낸 두 눈알을 은쟁반에 받쳐들고 있었다. 의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당신한테 이야기해주어도 믿지 않을 거에요. 이 성당에 있는 모든 성상들은 눈을 가리고 있어요. 그거 이상한 일이군. 왜 그럴까.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어쩌면 자신이 남들과 마찬가지로 눈이 멀 것임을 깨닫는 순간 믿음이 심하게 흔들린 사람이 한 일일지도 모르죠. 혹시 이 동네 사제가 한 일일지도 몰라요. 눈먼 사람들이 성상들을 볼 수 없다면, 성상들도 눈먼 사람들을 볼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죠. 원래 성상들은 못 보잖아. 그렇지 않아요. 성상들은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봐요. 다만 이제 실명이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되는 바람에 성상들도 못 보게 된 거죠. 당신은 여전히 볼 수 있잖아. 점점 안 보이고 있어요. 설사 내가 시력을 잃지 않는다 해도, 나를 봐줄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나도 점점 눈이 멀어갈 거에요. 사제가 성상들의 눈을 가린 거라면 좋겠군.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에요. 그게 말이 되는 유일한 가설이야. 그게 우리의 수난에 어떤 위엄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가설이지. 난 눈먼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이 안으로 들어온 그 사제를 상상하고 있어. 그는 결국 그 세계로 돌아가야겠지, 그 자신도 눈이 멀기 위해서 말이야. 난 닫힌 문들, 텅 빈 성당, 그 안의 정적을 상상하고 있어. 난 성상들, 그림들을 상상하고 있어, 그가 성상이나 그림을 하나씩 찾아가는 모습이 보여. 제단에 올라가 붕대를 두르고, 저절로 풀어져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매듭을 두 번 단단히 묶는 모습이 보여. 그림들이 맞이한 백색의 밤이 더 짙어지도록 하얀 물감을 두 번 칠하는 모습이 보여. 그 사제는 모든 시대와 모든 종교에서 최악의 신성 모독을 저지른 사람임에 틀림없어. 그러나 그 신성 모독은 가장 공명 정대하고 또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것이기도 해. 그 사람은 궁극적으로 신은 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선포하러 여기에 온거야. 

<눈먼자들의 도시, P448~450>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 <눈뜬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lucidez)>,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 세 권을 같이 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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