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팀북투> 2014년
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 출신의 감독 아브델라망 시코가 제작한 <팀북투>는 지방의 평화로운 일상이 종교적 극단주의에 의해 뒤흔들리는 모습을 그렸다. ‘팀북투(Timbuktu)’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소설 <동행>의 원제는 '팀북투'(Timbuktu)이다. 팀북투란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지명으로, 지친 영혼이 머무르는 피안이라는 뜻이다. 이 땅 너머에 있는, 피곤한 영혼의 오아시스가 바로 팀북트이다. 이 책은 술에 찌든 몽상가, 광기의 시인 윌리 G. 크리스마스와 그의 충견 '미스터 본즈'가 팀북투를 찾아 먼 길을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스터 본즈는 윌리가 이 세상을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그르렁그르렁하는 기침이 벌써 반 년이 넘게 계속되었고, 이제는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난 2월 3일, 처음에는 가볍게 글글거리는 가래 기침으로 시작된 것이 단 한 번의 호전의 기미도 없이 서서히 악화되더니, 한여름엔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끓는 가래를 쏟아 내야 했다. 이것만으로도 사람 혼을 빼놓기에 부족했던지 지난 두 주 동안에는 지금과는 다른 전혀 색다른 소리가 끼여들었다. 무슨 단단한 것이 내리치는 듯한 울림이었다. 그 소리가 이제는 거의 그치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자주 울려 나왔다. 그럴 때마다 본즈는 윌리의 몸이 흉곽을 짓누르는 압박 때문에 금새라도 터지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P7)
이제 이 불쌍한 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본즈는 강아지 시절부터 윌리와 함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주인인 윌리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생각, 모든 기억, 대지와 공기의 모든 입자들에도 윌리의 존재가 스며 있었다. 버릇은 좀처럼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고, 또 사실 노인네에게 새삼스레 새 세상이 어떻다고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옛말도 맞는 말이 아닌가. 당연히 본즈는 앞으로 닥칠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분히 주인에 대한 사랑이나 헌신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존재론적인 공포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서 윌리를 뺀다고? -- 그러면 그것은 이 세상 자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P8)
본즈는 털이 곤두설 만큼 그들의 끔찍했던 삶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바르샤바의 어느 다락 골방에서 숨어 지내야 했던 10일.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계란을 훔치고 헛간 건초 다락에서 새우잠을 자며 파리에서 남쪽의 자유 지역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걸어야 했던 30일 간의 도피 생활, 망드의 난민 수용소, 신변 안전을 위해 뇌물로 바쳐야 했던 돈, 스페인 체류 사증을 발급 받기 위해 마르세이유에서 겪어야 했던 그 지긋지긋한 넉달 동안의 행정 처리...... 그런 다음엔 리스본에서 의식 불명의 환자처럼 꼼짝 않고 지내야 했던 나날들, 1944년의 이다의 사산(死産), 그리고 전쟁은 지루하게 끝날 줄을 모르고 돈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 대서양만을 바라보며 지내야 했던 2년 여의 세월이 이어졌다. 마침내 1946년 윌리의 부모는 미국 브루클린에 발을 내디뎠지만 그들이 시작한 것은 정말 새로운 삶이 아니라 두 번의 죽음 사이에 끼여든 사후의 삶과 같은 것이었다. (P21)
다시 브루클린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윌리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저에게 2 더하기 2는 4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우리가 어떻게 2가 2라는 것을 아느냐? 이게 정말 진정한 물음이죠.”
그 다음날, 그는 자리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 펜을 잡은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깨진 상수도 관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듯이 글이 술술 이어졌다. 윌리 G. 크리스마스는 분명 그 이전의 윌리엄 구레비치보다 더 훌륭한, 더 뛰어난 영감을 지닌 시인이었다. 예전에 부족했던 독창성을 이제는 미친 듯한 정열로 보충하고도 남았다. “살면서 지켜야 할 33가지 규칙”이 그 좋은 예였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네 자신을 세상의 팔 안에 던져 버려라.
그러면 세상의 공기가 너를 잡을 것이요. 네가 망설여도
세상이 뒤에서 너에게 달려올 것이로다.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해도 끝까지 매진하라.
네 발걸음의 음악을 따르고, 불빛이 사라진다고
휘파람 불지 말고 -- 노래하라.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있어도 늘 길을 잃고 방황하리.
네 셔츠, 금은 보화, 신발, 이 모두를
처음 만나는 낯선 이에게 다 주어 버려라.
왈츠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추면
무(無)에서 유(有)가, 엄청난 것이 이루어질 것이니......
문학적인 노력과 세상을 사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윌리의 시가 분명 더 좋아졌을 지는 몰라도 그것이 윌리 자신이 과연 진정으로 변화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인지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해답은 아닐지 모른다. 그는 정말 새로운 인간이 된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충동에서 성자가 되겠다며 한번 그렇게 뛰어든 것인가? 과연 그는 제 분수도 모르고 지켜 내지도 못할 일에 헛되이 덤벼든 것인가? 아니면, 오른팔 이두박근의 문신과 뽐내며 사용하는 우스꽝스러운 새 이름말고도 그의 거듭 태어남에 관해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단 말인가? 솔직히 그 대답은 <예스>일 수도 있고 <노>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인지도 모른다. (P36-37)
저 세상은 사람들이 죽은 뒤에 가는 곳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땅에 묻히지만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은 다음 세상으로 빠져 나간다. 지난 수주일 동안 윌리는 이 사실을 계속해서 되뇌었고, 그래서 이제 본즈는 그 다음 세상이라는 곳이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다음 세상은 <팀벅투>라는 이름의 세상이었다. 본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지식을 다 동원해서 그 <팀벅투>라는 곳이 뉴욕이나 볼티모어에서 멀리 떨어진, 그리고 그들이 여행 중에 방문했던 <포랜드>나 그밖의 다른 도시에서도 멀리 떨어진 어느 사막 한 가운데 존재하는 지역이라고 짐작하였다. 언젠가 윌 리가 그곳을 <영혼들의 오아시스>라고 부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 언젠가 윌리는 <이 세상의 지도가 끝나는 곳. 그곳에서 팀벅투의 지도는 시작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니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선 광활한 열사(熱砂)의 왕국, 영원한 무(無)의 공간을 가로질러야 되리라. 본즈는 그 여행이 무척 힘들고 내키지 않는 여행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윌리는 그렇지 않다고. 눈 깜짝 할 사이에 도달할 수 있는 세계라고 본즈를 안심시켰다. 일단 그곳에 들어서면, 즉 그 안식처의 경계를 건너기만 하면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 등을 걱정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윌리의 말이었다. (P72)
그렇지만 말야. 우리가 잊어선 안 될 게 있어. 우리가 이 세상에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 말야. 절대 잊어선 안 돼. 노하우엔 국경이 없어. 바다 건너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그 많은 상품들. 그런데 그것들이 자네 콧대를 꺾고 자존심을 망가뜨릴 수가 있다고. 터키 산(産) 터키(칠면조)나 칠레산 칠리처럼 눈에 분명히 띄는 것들만 얘기하는 게 아닐세. 프랑스에서 들어오는 팬츠, 스페인에서 몰려오는 페인(고통), 이태리의 피티(연민), 체코슬로바키아의 첵스(좌절), 그리고 그리스의 플리스(양털), 애국심이라는 거, 그거 어떤 때는 쓸모가 있기도 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꼭 꼭 잘 숨겨 두어야 하는 감정이야. 그래, 우리 양키들은 이 세상에 지퍼와 지포 라이터를 주었어. 지퍼 달린 싸구려 물건과 제포 막스도 물론이고, 그런데 말야. 이 세상에 수소폭탄과 훌라 후프를 확산시킨 책임도 우리가 져야 돼. 그래야 결국엔 균형이 맞잖아. 안 그래? 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니, 자네가 자네 스스로를 탑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자네는 저 밑바닥 개만도 못한 존재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거야. 아, 본즈, 미안하군. 그렇다고 자네가 저 밑바닥의 하찮은 존재라는 건 아냐. 내 말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이해하면 잘 알겠지만 난 그냥 개를 비유로 들었을 뿐이네. 짓밟히고 억압받는 존재들의 상징으로 말야. 물론 자네는 그런 비유에 절대 해당되지 않아. 저기 오가는 사람들하고 자네는 똑같은 존재야. (P82-83)
왜 이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가? 왜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흙먼지 속을 뒹굴고, 어떻게 평생 파멸을 향해 기어가야 한단 말인가? 당연하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도. 나도 수도 없이 그런 질문을 던졌어. 그런데 찾아낸 유일한 대답이 뭔지 아나? 무대답이야. 나도 그걸 원했어. 달리 선택이 없잖아.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렇다고 변명할 필요는 없어. 늘 허점투성이의 인간으로 살아왔고, 모순과 자가당착을 안고 수많은 충동에 이끌려 살아온 놈이야. 어찌 보면 순수한 가슴과 선함을 지닌 자. 산타의 충실한 조력자이고, 또 어찌 보면 목소리만 큰 미치광이, 니힐리스트, 술 취한 어릿광대지, 시인? 시인은 그 중간쯤이겠지 뭐. 성자(聖者)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건방진 말이나 떠벌리는 술주정뱅이도 아닌 것이, 안 그렇겠어? 머릿속에 자기 목소리를 담고 있는 인간, 때로는 돌과 나무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또 가끔은 구름의 음악을 언어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사람, 이게 시인이지 뭐. 내가 더 좋은 시인이 못 된 게 안타까울 뿐이야. 아, 그런데 내가 그 연민이 생산되는 이태리에 가 본 적이 없구나. 비행기 삯이 없으면 그냥 집에나 있어야지 뭐. (P87-88)
윌리가 작가들의 그 개똥같은 허영심에 신경이나 쓸 인물은 아니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행위이지 글을 쓰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레이하운드 터미널 물품 보관소에 보관해 둔 공책들도 윌리에게는 고약한 냄새만 나는 방귀나 빈 깡통 만한 가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것들을 다 불태워 버리든지, 쓰레기와 함께 내버리든지, 터미널 화장실에 들어간 어느 피곤에 지친 여행객의 똥구멍이나 닦도록 하든지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그것들을 볼티모어까지 가지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한 순간의 나약함,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벌어진 자아의 천박한 게임 -- 누구든 패배하고 말 뿐 결코 승리하지 못하는 게임 -- 이었다. 순간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괴로움에 저도 놀란 듯 윌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자기 자신과 자신이 그렇게 사랑했던 세상을 철저히 조롱하면서 긴 웃음을 터뜨렸다. (P96-97)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본즈가 바라는 것은 철저한 파멸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윌리의 죽음을 경험한 이 땅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등을 깔고 다리를 양옆으로 쫙 벌리고 누워 하늘에 목구멍, 배, 성기, 그 모두를 내맡기는 것이었다. 그런 자세라면 무슨 공격을 받아도 속수무책일 것 같았다. 강아지 새끼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벌러덩 누워 하나님이 죽음의 타격을 가하기만을 기다렸다. 주인이 가버린 지금, 또 하나의 제물로 제 자신을 바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P136-137)
주인이 죽은 후로 처음 본즈는 가슴 저미는 슬픔의 감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정말 처음으로 본즈는 추억이라는 것이 하나의 장소, 즉 누구든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실재의 장소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잠시 머무는 것이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 아니 오히려 그런 것이 실제로는 더 큰 위안과 행복의 단초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는 잠이 들었다. 여전히 윌리가 그의 곁에 있었다. (P164)
본즈의 생애에 새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잔디밭을 떠나기 직전 딕이 몇 마디 간섭을 하고 나섰다. 어떻게 보면 한쪽에서 불리한 일종의 불평등 계약 조건이었다. 가족들 모두가 기뻐하니 마음이 좋긴 하지만 당분간은 <시험적>으로 본즈를 데리고 있어 보자는 것이 딕의 요구였다. 그리고 만일 자신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시는 그 즉시 거래는 끝나는 것이라고 딕은 덧붙였다. 이러러면 그는 앨리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내세운 조건은 이러했다. 첫째,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를 집안에 들여서는 안됨. 둘째, 수의사에게 철저한 검진을 받아야 함. 만일 몸에 이상이 발견될 시에는 즉시 내보낼 것. 셋째,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아무 때나 애완견 미용사와 약속을 해서 머리 손질도 하고, 털도 씻기고, 매니큐어도 칠하게 할 것. 진드기, 벼룩, 이가 없도록 철저히 청결을 유지하도록 할 것. 넷째, 생활에 잘 적응을 시킬 것. 다섯째, 음식 챙겨 주는 일은 앨리스가 맡을 것. 그런 일로 인해 용돈 올려 주길 기대하진 말 것. (P194)
의식을 잃고 있던 동안에 그는 다시 윌리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꿈은 예전의 꿈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 꿈에서는 윌리로부터 격려와 위안의 말을 들었으나 지금은 야단치는 소리만 잔뜩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열기였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팀벅투>에 있는 윌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날 밤 꿈에 본즈에게 나타난 사람은 지난 8년여 동안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가 알아 왔던 윌리가 아니었다. 복수심에 불타고 빈정거리며 야유나 보내는 윌리, 악마적 속성을 지닌 윌리, 연민의 감정이나 다정함은 모두 내던져 버린 윌리,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본즈는 이 사람에게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강아지 티를 벗은 이래 정말 처음으로 저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이 거짓된 윌리가 진짜 윌리와 모습은 똑같다는 점이었다. 꿈에 나타난 그는 지난 일곱 번의 크리스마스 때마다 진짜 윌리가 입었던 것과 똑같은 너덜너덜한 산타 클로스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경은 달랐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지하철 같은 곳이 꿈의 배경이었지만 지금은 바로 본즈가 밤을 지내고 있는 보관소의 방이 꿈의 배경이었다. 본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꿈속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때 약 6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한쪽 구석에서 창살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는 윌리의 모습이 보였다. 윌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한테 해줄 얘기가 있어 왔네. 그러니 아무 말 말고 그냥 듣기만 하게. 자넨 아주 우습게 변했어. 구역질이 나. 다시는 나를 자네 생각 속에 끌어들이지 말게. 잊어선 안 돼. 아예 이 궁전같은 자네 방문 앞에 문패라도 만들어 달아 두게. 절대 잊지 말자고 말야. 정말이지 다시는 내 이름을 사용하지 말게. 공상을 할 때나 사랑을 할 때나, 그 언제라도 내 이름을 거론하지 말게. 나는 이미 죽은 몸이고, 이젠 평화롭게 지내고 싶네. 자네가 터뜨리는 불만과 불평, 잔소리.... 내가 못 들었을 것 같나? 이젠 정말 듣기 싫네, 지긋지긋해. 아마 이번이 자네가 꿈속에서 나를 보는 게 마지막 순간일 걸세. 무슨 말인지 알겠나? 이 바보 같은 친구야, 나를 제발 좀 그냥 내버려두게. 여유를 좀 줘. 이젠 나한테도 친구가 생겼다네. 그래서 더 이상 자네가 없어도 돼. 알겠지? 제발 내 일에 관여하지 말고 떨어지게. 자네하고 난 이제 끝장이야.” (P234-235)
그런데 한 가지 슬픈 사실은, 그런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만일 몸 상태가 제대로이고 힘도 넘친다면 그가 생각대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은 그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차에서 뛰어내린 직후부터 잡히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에 기력이 이미 다 빠진 상태였다. 사실 10마일이 긴 거리는 아니었다. 석 달 반 전의 그 기나긴 여행을 생각하면 이 10마일쯤이야 별 것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속이 텅 빈 상태에서, 연료가 다 떨어진 상태에서, 순전히 의지력 하나만 가지고 가야 했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그가 그 빈사 상태 속에서도 거의 2마일을 지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그는 쇠 덩어리처럼 무거운 발을 질질 끌고 왔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 마침내 또 한 발자국을 내디디려는 순간 저절로 그는 힘없이 땅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기 시작했다.
이틀 밤 내리 그는 윌리의 꿈을 꾸었다. (P243)
눈을 맞은 몸은 추웠지만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한 속은 뜨거웠다. 전날처럼 온몸이 떨리고 마비될 정도의 심한 열이었다. 그는 자기 몸에 붙은 눈을 흔들어 털어 내기 위해 일어서려 했지만 네 다리가 마치 스펀지처럼 아무 힘이 없었다.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중에, 나중에 해가 뜨고 날이 좀 따뜻해지면 일어설 수 있으리라. 그는 그대로 누운 채 눈을 살펴보았다. 1인치도 안 되는 작은 물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온 세상을 딴 세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얀 눈, 그 안에 뭔가 기이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었다. 먹을 것을 찾아 눈 덮인 땅바닥을 여기저기 쪼며 다니는 참새와 박새를 지켜보던 본즈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뭉클하고 치밀어 오르는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잘것없는 경박한 날 것들에게도 이젠 마음이 쓰였다. 자신도 모르게 겪는 마음의 변화였다. 어쩌면 눈이 그들 모두를 한 데 묶어 주었는지도 몰랐다. 난생 처음 그는 새들을 귀찮은 존재가 아닌 동료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은근한 형제애, 새를 바라보며 본즈는 <견공 안식처>로 돌아가라는 윌리의 말을 떠올렸다. (P248-249)
트럭이나 자가용들이 그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도 있었다. 동시에 그 차량들은 그의 뼈를 짓뭉개 영원히 그의 숨을 끊게 만들 수도 있었다. 멀리 내다볼 수 있으면 모든 게 분명해지는 법. 본즈는 때가 오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도로로 들어서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그는 <팀벅투>로 들어가는 것이다. 언어와 투명한 토스터의 땅, 자전거 바퀴와 이글거리는 사막이 있는 땅, 개들이 인간과 똑같이 말을 할 수 있는 땅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아마 처음엔 윌리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P251)